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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주희 『레이디 크레딧』, 현실문화 2020

불법/합법의 구별을 넘어 성매매를 사유하기

 

 

황유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yo1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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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장안동 유흥업소 밀집지역을 방문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이후 손님이 너무 많아서 업주들이 여성들에게 한번만 가게에 출근해달라고 사정한다는 말이 과연 들은 대로 사실이었다. 룸마다 가득 찬 손님에 여성들은 대기실에서 쉴 시간도 없었다. 그런가 하면 유흥업소 집합금지 명령 당시에 일수 빚을 갚지 못한 여성들이 연달아 자살했다는 소문도 사실일 것이다. 성매매에 있어 “모든 문제는 돈의 순환 회로 밖으로 나오면서, 즉 일을 쉬기 시작하면서”(348면) 발생하고, 다시 일을 하면 해결된다. 성매매를 하면 빚이 생기지만 빚을 해결하려면 성매매를 해야 한다.

성매매는 ‘보통’의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어둡고 위험한 세계의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규모 30조원에 육박하는 성매매 산업은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일탈적인 경제영역이 아니라 ‘묵인된’ 시장경제의 일부였다. 미군에게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한 기지촌, 남성 외국인 관광객을 호객하고 역시 외화를 벌기 위해 창조한 기생관광, 중산층의 등장과 함께 강남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소비 진작과 화폐 유통 활성화를 꾀한 유흥산업까지, 정부는 경제발전을 이유로 성매매를 관리하고 양성해왔다.

김주희의 『레이디 크레딧: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는 2020년 지금, 한국의 합법적인 시장경제와 불법적인 성매매 경제가 서로를 보완하며 연결되어 있음을 분석한 책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성매매를 ‘우리’와 관계없는, 특정한 여성들만의 문제로 구별 지었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에 대한 착취는 별 탈 없이 지속될 수 있었다. 또한 경제행위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일로 간주했기 때문에 성매매를 경제의 영역에 배치할 때 여성에 대한 착취는 비가시화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거듭 강조하듯이 젠더와 착종되지 않은 경제행위는 없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레이디 크레딧’(신용 부인)은 경제 주체인 ‘남성’이 현명하게 관리하고 통제해야 하는 ‘여성’으로서의 신용을 묘사한 캐릭터의 이름이다. ‘레이디 크레딧’은 젠더와 경제의 착종이 어떻게 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성매매는 경제적 행위이면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착취이지만, 성매매 담론은 전자를 강조하면 후자가 삭제되고 후자를 강조하면 전자를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무엇보다 성매매를 자유로운 성인 간의 동등한 거래 정도로 여기며 ‘자발’과 ‘비자발’을 구별하고 ‘자발적 성매매’를 처벌해온 한국사회의 역사 속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를 가능하도록 하는 성별 권력관계를 강조하고 성매매 역시 젠더 폭력의 연장선 위에 있음을 설명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러나 젠더 폭력과 경제적 행위, 빈곤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구체적인 탐문 없이 성매매가 어떻게 30조원에 가까운 수익을 창출하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으며, 무수히 많은 여성들을 연쇄적으로 인입시키는지를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왜 성매매 여성들은 가난한가?’ 『레이디 크레딧』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성매매 산업에는 거액의 돈이 흘러 다니지만, 여성들은 채무자가 되어 이자 갚는 것만도 역부족이다. 2004년 제정된 성매매처벌법 제10조 “불법원인으로 인한 채권무효” 조항(‘성매매’라는 불법행위를 근거로 한 채권은 갚지 않아도 되는 무효채권이라는 조항)은 성매매 산업과 대부업의 공모가 오래된 이야기임을 방증한다. 전통적으로 성매매 산업에서 채무관계는 업주에 의한 선불금과 성매매 산업의 경계에서 돈을 빌려주는 사채/일수 빚을 의미했다. 저자 역시 성매매 여성을 가난하게 만드는 장치로 선불금과 사채/일수 빚을 꼽는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제공되는 ‘빚’이 한국사회의 합법적인 금융 시스템의 한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한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이루어진 성매매 경제의 재편과 금융위기 이후 가속화된 신용의 민주화는 서로 연결되어 작용해왔다. 성매매 산업을 운영하는 경제 논리는 시장경제 전반의 논리와 어긋나지 않는다. 돈을 빌렸으면 채무자는 어떻게 해서든 빚을 갚아야 하고, 채권자는 돈을 빌려줬기 때문에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는 경제적 도덕률이 성매매 경제의 여성착취를 정당화한다. 그렇게 불법과 합법의 구별 짓기는 흐릿해지고 여성을 착취하는 성매매 산업의 이윤창출 전략은 ‘합법적인’ 근거를 획득한다.

이 책에는 호의, 신뢰, 두려움, 공포 같은 감정의 언어가 부채라는 회로 속에서 여성을 압박하고 참여를 추동하는 힘으로 등장한다. 돈 없는 자신에게 담보 없이(저자는 금융산업에서는 여성 자체가 담보임을 지적하지만)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여성들은 100퍼센트가 넘는 연이자율을 감당한다. 내가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느니 내 몸의 한계까지 밀어붙여 빚을 갚거나 다른 빚으로 보충하는 게 더 ‘속 편한’ 선택인 이유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의 지독한 혐오와 낙인 때문이다. 돈을 받아내기 위한 금융 테크놀로지도 별다를 게 없다. “채근, 협박, 위협, 괴롭힘, 인격적 모독, 물리적 폭력과 같은 전통적인 폭력의 기술”(191면)이 있기에 ‘여성 전용 대출’이 성업한다. 공포와 두려움을 자극하는 추심은 기술이라기보다 여성의 취약한 위치성을 활용한 폭력에 가깝다. 더욱이 파산을 하거나 만세를 부르느니(빚을 못 갚겠다는 선언을 성매매 산업에서는 ‘만세를 부른다’라고 표현한다) 어떻게든 빚을 갚겠다는 결정은 시대의 도덕률을 따르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저자의 말처럼 “민주적으로 확대된 신용을 활용하여 자신의 빈곤 문제를 스스로 타개하고 경제주체로 거듭나는 것만큼 시대의 강력한 도덕률은 없어 보인다.”(270면)

성매매 산업과 대부업의 관계는 한국 성매매 산업의 가장 특징적인 면이다. 돈이 필요한 여성에게 아무도 돈이나 그에 버금가는 자원을 제공하지 않을 때, 성매매 산업만 여성에게 돈(빚)을 제공한다. 돈(빚)은 여성이 연쇄적으로 성매매 산업에 참여하는 이유이자, 성매매를 중단할 수 없게 만드는 한국형 족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이를 천착한 성매매 연구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레이디 크레딧』은 최초로 그 길을 낸 저작이라는 것만으로 의미가 크다. 한편 저자는 현재 담론의 한계를 지적하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형태를 제시하지 않는다. 일상화된 지배담론의 영향력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어떤 시도든 지배규범에 재포섭될 여지가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탈성매매를 위해 움직여온 실천이 있었기에 운동을 점검하고 한계를 직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다다랐다. 실패가 누적되더라도 끝내 변화를 이룰 것이라는 믿음으로 『레이디 크레딧』이 성매매 현실을 바꿔나갈 더 많은 계기를 독자들과 널리 나누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