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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정경숙 『완월동 여자들』, 산지니 2020

‘완월동’에서 ‘여자들’로서 연대하기

 

 

변정희 卞禎希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2012fellowshi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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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동 여자들: 살아남아 사람을 살리는 여성 연대의 기록』은 15년간 부산에서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활동한 저자의 기록을 담은 책으로 역시 부산의 지역 출판사인 산지니에서 펴냈다. 부제가 말해주듯 저자의 주된 활동 무대인 ‘살림’은 성착취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살리고, 이 사회를 살리는 의미를 담은 여성단체이다. ‘살림’이 터를 잡은 부산 서구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한반도 최초의 유곽으로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착취 집결지 ‘완월동’이 있다.

한때는 미도리마찌였고, 한때는 완월동이었다가 지금은 다른 행정지명이 된 완월동은 118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식민지와 분단, 한국전쟁과 독재정권으로 이 땅이 겪은 몸살을 여전히 앓고 있다. 이는 부산의 원도심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일본 영사관 앞 소녀상, 부산역 맞은편 미군 기지촌으로 악명 높았던 초량 텍사스 등이 완월동과 함께 식민지 및 전쟁의 기억과 참상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은 집필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나왔는데 출간 시점이 흥미롭다. 같은 시기에 대구여성인권센터의 신박진영이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봄알람)을 펴냈고, 그보다 조금 이른 시점에 ‘살림’에서 활동했던 박혜정의 『성노동,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열다북스)가 나왔다. 2019년 말에는 20여년간 성착취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 봄날의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반비)이 출간됐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반(反)성착취 현장 활동가의 저작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은 전에 없던 현상이다.

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한국에는 성착취 문제에 관한 많은 담론이 생겨났다. 그중 ‘성노동론’은 성매매를 노동의 한 형태로 보며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가 아닌 성노동자로 호명했다. 주로 학계와 페미니즘 연구자들이 주도해온 기존 성노동 담론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대중적으로 열린 것은 ‘강남역 10번 출구’로 상징되는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를 거치면서부터다. ‘불편한 용기’ 시위와 ‘미투 운동’ 등 새로운 여성운동의 물결은 사이버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고 ‘n번방’ 성착취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여성들은 폭력과 착취의 현장을 증언하는 경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성산업이 폭력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반성착취 현장 활동가의 저작들은 이러한 시대와 호흡하고 있으며 『완월동 여자들』도 그 연장선에 있다.

기존의 성노동 담론이 성착취 현장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개별적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했다면 반성착취 현장 활동가들은 성착취 문제를 보편적인 여성의 문제로 바라보며, 피해여성들에게도 같은 여자로서 다가간다. ‘완월동 여자들’이라는 제목은 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성착취 현장의 여성들, 즉 ‘언니’들과 현장 활동가들이 모두 ‘여자들’이라는 말에 공통적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현장 활동가들 또한 ‘유리방’ 안에 있으면 성구매 남성의 ‘초이스’ 대상이 된다. 즉 성착취 문제는 그 현장 속에서 같은 여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평자가 경험 당사자로부터 들은 일화도 있는데, 집결지에서 탈출하기 위해 처음 ‘살림’을 찾았던 그는 활동가에게 “나를 왜 도와줘요?”라고 물었다. 당연한 듯 “에이, 언니, 같은 여자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 그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성매매’ 행위를 하는 여성이 존재하고 이들을 ‘창녀’로 구분 지음으로써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눠왔던 지금까지의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개별적으로 흩어지는 ‘여자’가 아닌 ‘여자들’이라는 복수형 속에서 새로운 연대를 이루어나가는 모습을 이 책의 제목을 통해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총 4부로 구성된 『완월동 여자들』에는 장면마다 언니들과 활동가의 만남이 녹아들어 있다. 저자는 친숙한 언어와 실감나는 묘사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듯 여자들 간의 우정과 치유의 과정을 잘 그려낸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단체를 설립해가는 모습이나 포주와 대치하거나 검·경찰과 싸우면서 사건을 지원하는 에피소드들은 하나의 성장서사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성착취 구조와 한국사회의 부조리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유리방에 전시되는 여성들, 거리의 현장 활동가들에게도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으며 여성들을 관람하고 ‘초이스’하는 구매자들, 방관하는 경찰과 그들의 존재에 아랑곳 않고 호객행위를 하는 ‘나까이’들…… 언니들과 활동가들이 비애감과 모멸감에 찬 현장에서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에 대한 묘사가 고통스럽다.

몇가지 아쉬움은 있다. ‘살림’의 성장 과정과 완월동의 현장을 보여준 1, 2부와는 달리 3, 4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잘 연결되지 못하고 나열에 그쳐 완성도가 떨어지는 인상을 준다. 또 여자들의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인 문제와 연결시키는 과정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저자 개인의 삶에 대한 진솔하고 충실한 해석의 과정이 드러나지 않은 것 역시 아쉽다. ‘살림’의 활동이 동시대의 다른 여성운동과 함께하며 만나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다. 실제 저자 자신도 부산여성단체연합 대표를 지내고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 등에 동참하면서 다층적인 해석을 해왔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아쉬움보다 앞으로 이어질 현장의 목소리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각자의 목소리로 성매매 현장을 증언하는 기록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휘발되는 현장의 언어들에 아쉬워해온 평자와 같은 활동가라면 이 책의 기록을 반갑고 고맙게 여길 것 같다. 성착취 구조로부터 서로를 살리고 일상을, 삶을 함께하자는 의미가 드러나길 바란다는 저자의 말은 주디스 허먼(Judith Herman)의 『트라우마』(한국어판 열린책들 2012) 속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는 회복의 과정에서 공통성(common)을 느끼며 이는 자신의 고뇌에 대해서도 ‘바다 위에 떨어진 하나의 빗방울’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의 공통성을 이루어내고, 고뇌에서 벗어나 쉴 수 있으며, 이제 생존자 앞에 펼쳐질 것은 생존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언니’와 ‘나’의 경험이 같은 바다에 떨어져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파도를 만든다. 책의 표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내민 손을 그렇게 맞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