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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순원 朴淳元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2005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 『주먹이 운다』 『그런데 그런데』가 있음.
coolone2@hanmail.net
컬러TV 시대가 열렸는데
교복자율화 두발자율화 시대가 열렸는데 매월 첫째주 월요일에는 교련조회를 했다 열병 분열 우리는 얼룩덜룩한 교련복에 각반을 차고 요대를 하고 교모의 턱끈을 길게 늘여 턱에 걸치고 키 큰 친구들은 앞에 작은 친구들은 뒤에 순서대로 오와 열을 맞추어 정렬했다 나는 맨 뒤에 서 있었다 각 반에는 향도가 있었고 기수가 있었다 반장이 소대장이었다 연대장이 받들어총 구령을 붙이면 받들 총이 없는 우리는 맨손으로 추웅성 경례를 했다 밴드부가 빰빠라빰빠빰빠바밤 군악대처럼 연주를 하고 운동모자를 쓰신 교장 선생님도 엉거주춤 거수경례를 하셨다 교단 아래 도열하신 선생님들도 거수경례를 하셨다 스커트를 입고 나온 여자 선생님은 계면쩍게 먼 산을 쳐다보셨다 다음은 분열
우리는 줄을 지어 행진하며 교단 앞을 지날 때 우로봣 구령에 맞추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맨 오른쪽 줄은 그냥 똑바로 앞을 쳐다보고 걸었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이 어떻게 인사가 되고 경례가 되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련은 일주일에 두시간씩 있었다 우리는 플라스틱 총으로 제식훈련도 하고 앞에총 우로어깨총 좌로어깨총 세워총 차렷총 쉬엇총 총검술도 배웠다 찔러 길게찔러 때려 비켜우로찔러 비켜우로베고찔러 돌려쳐 막고돌려차 우리 반에는 방위를 제대하고 뒤늦게 진학한 동천이 형이 있었다 숙달된 조교였다 숙달된 조교는 시범만 보이면 땡이었다 동천이 형은 이가 고르지 않아 웃으면 무척 촌스러웠는데 그 형이 있어서 우리 반은 선배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다 교련 선생님은 두분이었다 한분은 한국전 때 대구까지 피난 갔다 덩치가 커서 열여섯 어린 나이에 군대에 끌려갔다 대위까지 진급하신 역전의 용사 또 한분도 육군보병학교 출신으로 베트남전에서 참전하신 역전의 용사 두분 다 하루에 몇번씩 전투화를 신었다 벗었다 하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 줄 아느냐고 투덜투덜
생물 선생님이 교무주임이셨다 시험시간에 민방위훈련이 걸렸는데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민방위훈련과 시험시간이 겹치게 시간을 짠 스스로를 원망하며 이게 웬 개지랄이냐고 짜증스럽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그 말이 가느다란 바람을 타고 흘러흘러 흘러흘러 컬러TV 시대가 열리고 TBC는 KBS와 합병되고
대마초 출연정지에서 풀린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로 가요계를 휩쓸고 강변가요제 이선희 대학가요제 이용이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우리는 두발자율화는 됐는데 교복자율화는 다음해부터 한다고 시커먼 교복에 머리는 산발을 하고
욕실에서
내 칫솔은 초록색이다
참 예쁘다 도마뱀 같다
손에 쥐고 있으면 파닥
파닥 움직이는 것 같다
치약은 또 얼마나 달콤한가
비누는 매끄럽고 향기롭고
면도크림 샴푸 린스 샤워젤
풍성하게 거품이 인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면 내가 중산층 같다
내 칫솔은 초록색이다
참 예쁘고 도마뱀 같다
손에 쥐고 있으면 파다닥
빠져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