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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민영 閔暎
1934년 강원도 철원 출생.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단장(斷章)』 『용인 지나는 길에』 『냉이를 캐며』 『엉겅퀴꽃』 『바람 부는 날』 『유사를 바라보며』 등이 있음.
이 가을에
용마산 꼭대기에 흰 구름이 떠 있다.
하늘은 파랗게 개어 산들바람 불어오고
강물은 티 없이 맑아
두루미 서너 마리가 춤추듯이 날아간다.
이 가을에
아버지는 저 멀리
북간도 땅에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저 산 너머
용인 땅에 누워 계시다.
이제 며칠 후면 추석이라는데
오래도록 잊고 살아온 두분의 모습이
불현듯이 떠오른다, 눈앞에!
1956년 봄 만주 화룡역에서*
눈이 내린다.
장백산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이
화룡평야 넓은 들판에 아우성을 울리며
눈이 내린다.
부흥촌과 개산골 간척민 부락을 지나
국경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여기까지 왔으나, 화룡에서 용정을 지나
도문으로 가는 차는 조금 전에
기적 소리를 울리며 떠난 뒤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휑뎅그렁한 대합실에는
낯선 중국 여자가 난로 옆에서
발을 구르며 서 있었고,
하루에 한번밖에 오지 않는 기차는
하루가 지나야 올 것이므로
이 을씨년스러운 역사 안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모한 노릇,
다시 걸어서 마을로 돌아가야 하나?
화룡에는 지금 누가 살고 있나,
내 어린 시절의 보금자리였던
이곳으로 날 데려온 아버지는
지난해에 돌아가시고, 쉰이 넘은
어머니가 혼자 창밖을 내다보고 계실 것이다.
휘몰아치는 설한풍에 굽은 소나무와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는 가로수를 지나서
얼마를 가야 집에 닿을 것이며,
아버지가 생전에 말씀하시던
내 고향 철원에는 언제 갈 수 있단 말이냐!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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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和龍)은 옛 만주국 간도성에 있는 소도시. 내가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가서 살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