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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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張怡志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안국동울음상점』 『연꽃의 입술』 『라플란드 우체국』 등이 있음. poem-k@hanmail.net

 

 

 

월훈(月暈)

 

 

달의 눈가가 짓물러 보인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젖어 있다.

 

시들어가는 여자의 눈 밑 그늘이 또 한겹 는다.

연하의 애인은 아직 젊은 것이다.

그녀의 어지러운 귀밑머리에

꿈의 깃을 접은 장끼가 추운 발을 숨긴 채 졸고 있다.

밤바람이 수풀의 어두운 곳을 뒤지고 다니자

수지(樹脂)의 향이 짙어진다.

 

깊은 밤의 끝으로 의심의 우주선은 뿌옇게 날아간다.

베개를 돋워 고인다. 이불을 고쳐 덮는다.

 

남자의 빈 눈은 어둠 속에서

적막한 배후(背後)를 본다.

여자의 떨리는 손이 허리에 감긴다.

슬픈 일이 있으리라고

그것은 말한다.

 

손 위에 남자의 헤식은 손이 포개어져도

달무리 진 하늘이 조금

내려온다.

 

 

 

시칠리아노

유월

 

 

산딸나무 흰 이마가 눈부셔

그 아래 누우면

마음은 자주 자책한다.

 

나뭇가지들에 찔린 초하(初夏)의 하늘

슬픔은 검게 멍들어가고

흰 별들이 금강석처럼

부술 수 없는 음악의 음표로 돋아난다.

 

아득히 저편 겨울 산의 그림자 아래로

양털옷 입은 소녀의 온유한 꿈이 작은 자수정 알갱이들로 엉긴다.

자줏빛 주렴(珠簾)의 눈이 내리고 있어서

옷 위로 눈이 반짝이고 있어서 더 아련하다.

 

여기는 소녀가 없는 유월, 플루트의 은하가 이르는 곳……

 

산딸나무 흰 이마가 어둠 속에서도 눈부셔

마음은 자주 자책한다.

 

유월에도

유월에도 이마 위의 면사포가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