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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경림
1947년 경북 문경 출생. 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
『토씨찾기』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상자들』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급! 고독』 등이 있음.
poemsea56@hanmail.net
콜팩스1, 혹은 만수동?
기억 18
콜팩스 공원의 나지막한 목책을 타고 장미 한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건 콜팩스 한 무리가 가고 있는 거라고
온몸이 발톱인 콜팩스들이 새빨갛게 지나가는 중이라고 너는 말했다
노랑머리 사내아이가 보드를 타고 콜팩스 속으로 사라졌다
각기 다른 색깔의 지붕을 뒤집어쓴 장난감 집들 속에는
꿈처럼 휘황하고 안개처럼 모호한 것들이 있었다
아시다시피,
모든 콜팩스는 콜팩스만의 알록달록한 발톱을 가지고 있다
고 너는 말했다
노랑 장미의 독향 같은
빨간 부겐베리아 연한 이파리 같은
황금 선인장의 누런 꽃 같은
어디선가 밥 타는 냄새가 지나간다
2021년 10월 18일 인천 만수동의 컴컴한 골목길을
흰 마스크를 쓴 한 무리의 콜팩스들이 지나간다
대륭시장 김말년 여사의 자진모리 한자락
金安子傳
국숫집 국밥집 사진관 리발소…… 온갖 간판들이 최대한 육니오식으로 늘어서 있는 장거리를 기웃거리다 문득 뒤편 공터 들마루에 앉아 중얼거리는 쬐그만 노파를 만난다
닐사후퇴 때드랬디 세살배기 에미나이 하나만 들쳐 업고 함흥부두에서 배를 탔지비 열아홉 쑥맥 에미는 그거이 무신 밴지 어드메로 가는 밴지 물어볼 재간도 없었지비 고저 사람들이 죽기 살기 기어올라 타니끼니 나도 매달렸지비 칠흑 같은 밤이뎄지 자정이 조금 지났을 게야 크지도 않은 배에 올매나 마이 탔는지 기우뚱기우뚱 곰방이라도 가라앉을 태세로 배가 떠가는데 거가 어데쯤이 뎄는지 에미나이가 울기 시작하능 기야 배가 고팠던 게지 멕일 게 무에 있간? 아무리 달래도 그티딜 않자 요기조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데 나는 심장이 콩알만 해데서는 에미나이 주뎅이를 목도리로 틀어막았지비 그래도 소용이 없어, 고때 한 영감태이가 쥐죽은 듯 말했어 ‘바다에 던지비리라’ 기다렸다는 듯 요기조기서 ‘암, 저 세살배기 에미나이 하나 땜시 다 죽을 순 없디 않네?’ 쑤군거리며 난리도 아닌데 문득 이 에미나이 거딧말처럼 됴용해지능 기야. 죽었나 맨뎌보니 몸띠이가 돌띠이같이 굳어서리 푸들푸들 떠능 기야 눈이 말갛고 숨을 쉬는 걸 보니 뒈지진 않갔어, 그래 우와기로 푹 덮어 안고 어찌어찌 그 바다를 건넝 기야, 생각해보니 그 어린 것이 제 죽음을 알아챈 게야 그후 에미나이는 내 등에 달린 혹이었지비 난 주야장창 곱사뎅이가 되어 열아홉 청춘에 안 해본 짓거리 없었지비 그리 그리 자리 잡은 곳이 종로 낙원시장이라, 야야, 저 에미나이 애비에 대해 묻디 말라우 사실 난 첩새이뎄어야 끼니거리도 없이 이 딥 저 딥 일 거들어주고 얻어먹던 울 오마니가 다섯 새끼 중 젤루 낯빤데기가 반반한 나를 밥술이나 뜨는 딥 영감태이한테 한달에 쌀 두어말씩 받기로 하고 팔아먹은 게지 환갑이 넘은 그 영감탱구 냄새는 왜 그리 나던지 딘절머리가 나던 참에 육니오 사변이 난 게야 차라리 잘됐다 이참에 어디든 튀자, 주섬주섬 보티이를 싸는데 그래도 에미라고 저 에미나이를 죽어도 못 베리고 오겠능 기라, 그래, 어데 간들 두 입이야 못 살랴 업고 튀었디, 생각하믄 열아홉 어린 것이 무신 배짱이었는지 몰라. 그래도 저 에미나이 누굴 닮았는지 핵교 보내노니끼니 줄창 닐등만 했어야, 시장사람들 모두 무신 복이냐구 난린데 스무댓살 철부지 에미년은 밤마다 사내 생각이 굴뚝같은 기야. 기래 시장 네편네들 하고 밤마다 뺑뺑이 돌러 다녔지비, 게우 국민핵교 댕기는 아홉살 어린것을 한평 반 가게 텬댱 물건 쌓는 다락에 재워놓고 텰딱서니 에미년은 밤새 뺑뺑이 틴 게야. 긴데 이 에미나이 아는지 모르는지 말 한마디 없뎄어, 아침이믄 지 혼자 찬밥뎅이 찾아 먹고 꾸벅꾸벅 핵교 가고 심심하믄 상장 타오고 그렇게 고등핵교 졸업하더니 그 어렵대는 S여대 약대에 덜컥 합격했지 머이갔네, 앗다 낙원시장에 합격 축하 깃발이 펄럭거리고 한바탕 댠티가 벌어뎠디비, 그후로 이 에미나이는 낙원시장의 딸이 됐어. 헌데 대핵교 삼학년 어느날 난데없이 한 사내를 델코 오지 안았깐? 키가 작달막하고 눈썹이 진한 놈이 보통 놈은 아이갔다 싶은데 혼인 시켜주믄 약국도 채려주갔다 살림딥도 장만하갔다 해서 졸업하기 무섭게 혼인시켰지.
노파가 두 여인의 생을 전속력으로 뱉어내는 동안
늙은 느티나무 그늘이 수초처럼 일렁인다
긴디 말야 대기업 무슨 과댱이라는 그 사우새끼 삼년을 월급 한푼 안 갖다주능 기야. 속에서 니따만한 어처구니가 불쑥불쑥 치밀어올랐지만 에라, 기집 둘만 사는 딥에 그래도 사내 하나는 버티고 있능 기 낫디 않겠나 싶어 참았디. 긴디, 알고 보니 그 간나새끼 빚투성이에 달랑 기거 두쪽만 찬 거렁뱅이 아이갔네? 니기미씨부럴 기래도 기왕 혼인이라고 했으니끼니 약국 샛다라도 내려주는 놈이 있능 기 낫겠다 싶어 또 참았디, 기리니끼니 이 에미나이는 그때부터 니십년을 다섯평 약국 안에 갇혀 돈 버는 기계가 된 거이야. 오년 벌어 그 댜식 빚 갚아주고, 삼년 벌어 딥 사고 또 십년 벌어 세 들었던 약국의 삼층 건물을 샀디 뭐이간, 그년 독헌 거 그 피난길 배 위에서 알아보긴 했디만 니십년을 청바지 하나 안 사 입고 버틴 년이야. 기동안 그 우라웅뎅이에 열두번은 빠져 뒈질 놈은 동네 유지가 되어 라이온스클럽이라나 머라나 회장이라고 끄떡거리고 댕기데니 어느날부턴가 어째 좀 수상쩍은 기야. 기때 알아봤어야 하능 긴데, 니기미씨부럴, 에미년은 일자무식이지 딸년은 공부밖에 모르던 맹추라 그것도 남편이라고 전재산을 그놈 이름으로 턱 해놓았디 뭐이네? 어느날이뎄어 놈이 매칠 여행 갔다 온다 해서 그런가부다 했지비, 헌데 니튿날 어떤 자들이 들이닥쳐 약국 건물을 둘러보데니 언제 언제까지 비워달라능 기야, 아니 그기 무신 말 따위가? 남의 딥에 와서 이 무신 행패가? 달려들었디만 이미 놈은 날라삐리고 우리 모녀 딥도 절도 없이 거리로 쫒겨났지비 이런 육실할 놈이 시상에 또 있간? 그날부터 이 에미나이 물 한모금 안 마시고 열흘을 견디더니 어느날 바람같이 사라졌어야, 기리고는 꼭 닐년 만에 뒈져 나타난 거이야, 에고 에고 이거 보라, 이 육실헐 에미나이야, 내래 참 더런 에미였다만 기래도 시장 좌판에서 양말이니 삔 나부랭이 팔아 약대 보낼 때 약 먹고 뒈지라고 보냈갔냐, 이 모질고도 모진 모진 년아,
몇 바다를 다 건너온 바람이 검불처럼 쓰러지는 노파의 백발을 스쳐간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눈이 풀 묻은 한지처럼 내리덮인다.
—여그가 년백시장을 고대로 만든 거인디 넷날하고는 딴판이여
—고롬 고롬
황해도 사투리의 노인 둘이 쇠리쇠리한2 저녁 해 속을 늙은 소처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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