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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강혜인·허환주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후마니타스 2021
편한 세상의 이면에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병훈 李秉勳
중앙대 교수, 사회학 bhlee@cau.ac.kr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어떤 편한 세상에 대하여』의 부제와 머리말 제목을 합성하면 “우리의 편한 세상을 위해 ‘심부름 거인’이 자라나고 있다”라고 간추려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혁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하여 경제의 신흥거인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 ‘공유와 공생’으로 미화된 플랫폼 경제에 개미처럼 모여들어 그 거인들의 몸집 불리기에 헌신하는 플랫폼 노동자들 및 대행업체와 자영업자들, 그리고 ‘3천원의 편리함’에 빠져든 소비자들에 대해 두 기자가 다양한 방식의 협업과 탐사보도를 통해 섬뜩한 현실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책은 코로나19라는 질병재난을 배경 삼아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플랫폼 중개의 경제와 노동 그리고 소비생활에 주목하여 우리가 요즘 하루하루 경험하는 새로운 세계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아픈 사건들과 부조리한 현실을 속속들이 선명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조미료 치듯 관련 팩트, 사상과 문학의 명문장, 영화 장면 등을 인용하거나 자신들의 일상생활 경험을 드러내는 등 다채로운 삽화들을 재치있게 제시하는 실력도 발군이다. 무겁고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날렵히 터치해나가는 기자들의 글 솜씨가 책 읽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준다.
두 기자의 르뽀는 청년들의 늘어나는 ‘사업장 외 교통사고 사망’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2019년 가을부터 2년 반 동안 탐사한 플랫폼 세계에 대해 점-선-면의 입체적인 구성으로 ‘리얼하게’ 서술하고 있다. 플랫폼 세계의 ‘점’에 대한 첫 이야기는 배달대행업체 소속 베테랑 라이더의 동행 취재에서 시작하여 필자들이 직접 자동차·자전거·도보로 겪어본 배달노동의 체험담으로 이어진다. 플랫폼 배달노동의 숨 가쁜 노동과정과 일상적 사고위험, 무권리의 수수료 노동, 일감주문형 노동의 확산, ‘보이지 않는 손’ 알고리즘의 부당한 재촉 배차와 무능한 내비게이션 안내 그리고 살벌한 평점 통제 등이 생생하게 와닿는다. 점의 다음 이야기는 열여덟살 배달노동자 정수씨와 ‘돌고 돌아 배달’ 이성희씨, 그리고 적잖은 수의 여성 플랫폼 노동자를 대표하는 B마트 선희씨, N잡러 연두씨와 지연씨, 대리기사 현정씨, 청소앱 노동자 선향씨 등 다양한 플랫폼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로서 ‘사장님’ 노동의 고단하고 위태로운 단면들을 짧은 비디오 메들리처럼 연이어 들려준다. 말미에 플랫폼 기업 ‘우아한형제들’ 사무실 안팎의 화려하고 깔끔한 모습과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배달앱 화면의 ‘있어 보이는’ 구성과 광고에 혹해본 사람이라면 그 대비가 더욱 날카롭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점의 또다른 이야기로 ‘사라진 청년’ 배달노동자 26인의 죽음에 대해 살펴본 필자들은 그 가운데 어설프게 사건이 종결된 것으로 보이는 18세 서빙알바 민준 사망사고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유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역 경찰과 노동청을 심층취재한 내용을 전해주며, 청년 배달노동자 산재사고에 대한 불분명한 책임 소재와 솜방망이 처벌 그리고 안전망 사각지대 등과 같은 갑갑한 현실문제를 통렬히 질타하고 있다. 점의 마지막 이야기는 진상고객의 악성리뷰에 시달린 김밥가게 이영숙씨의 억울한 죽음, 10년간의 프랜차이즈 피자가게 운영으로 빚잔치에 무일푼 신세로 전락해 배달노동에 뛰어든 김동우씨, 배달앱 갑질 횡포에 시달려온 닭갈비집 박현철씨 사례를 차례로 집중 조명하며 배달앱에 가입하여 생업을 유지하는 자영업자들의 목줄을 조이는 부조리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빼어난 점은 자신들의 생생한 플랫폼 노동 체험을 비롯해서 플랫폼 앱에 접속해 일하고 소득을 올리는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의 절절한 사연으로 채워지는 많은 점들을 선과 면으로 이어 입체적 실상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음식배달 및 모빌리티(택시) 중개의 국내외 사례를 다채롭게 살필 수 있다는 점도 요긴하다. 이를 통해 필자들은 플랫폼 경제의 거인, 아니 탐욕스러운 괴물인 플랫폼 기업들을 찾아낸다. 플랫폼의 광고비와 수수료 등으로 영업이익 정체 또는 적자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들과 달리 플랫폼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 규칙을 수시로 만들어 강요하고, 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가파른 성장세를 과시하면서 신흥경제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필자들은 플랫폼 기업들이 디지털 특수고용 형태로 ‘사장님’과의 위탁계약을 맺어 날로 늘어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관계법과 사회보험의 적용 의무를 면제받고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노동자보호제도의 사각지대를 크게 늘릴 뿐 아니라 그 제도적 실효성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비판의 바탕에는 플랫폼 노동시장의 낮은 문턱으로 진입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사회 초년생인 청년들이거나 1, 2차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유휴 노동자들이라는 현실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다수의 취약한 노동자가 ‘남의 가죽’을 벗기는 디지털 기술혁신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플랫폼 경제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하여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국내에서 카카오·쿠팡·배민·타다 등이, 그리고 해외에서는 아마존·우버·메이퇀·어러머 등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거대한 괴물로 성장하고 그 오너들을 신흥갑부로 탄생시키고 있음이 낱낱이 드러난다. 아울러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도된 플랫폼 노동자의 제도적 보호를 위한 ‘AB5’ 법안의 입법이 글로벌 플랫폼 기업인 우버와 리프트의 정치적 공작에 가로막혀 무산된 사례를 들어 그 괴물들의 막강 파워를 확인해주기도 한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도 고민하고 대비해야 할 일일 것이다.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선사해준 플랫폼 세계의 이면에 노동과 자영업의 약자들을 갈취하는 부조리한 입체구조가 존재하며 살벌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샅샅이 밝혀주어 ‘찐한’ 감명을 받았으니 이 책에 충분히 후한 평가를 주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탐사팀 기자들답게 필자들이 예리한 시각으로 플랫폼 경제의 어두운 치부를 선명하게 드러내 고발하고 있기는 하나, 그 문제 현실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정책 해법을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 않는 점이 한가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문제 현실의 진단과 고발을 넘어 정책 대안과 실천 전략을 찾는 일은 플랫폼 자본주의의 공정한 발전을 꿈꾸는 사람들의 몫으로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