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박선우 朴善友

1986년 서울 출생.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 등이 있음.

shuduririrara@gmail.com

 

 

 

햇빛 기다리기

 

 

신년을 맞아 해돋이를 보러 가자.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네가 12월 31일 오후에 서울을 떠나 부산에서 이틀을 묵고 돌아오자 제안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일출이었으니까. 저 멀리 수평선 위로 진홍색 불덩이처럼 떠오르는 해, 잿빛 구름 사이로 어지러이 활공하는 갈매기들, 일정한 간격으로 귓가에 밀려들고 부서지는 해조음,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이 일제히 눈을 감고 올리는 기도, 새 인생, 새 출발, 뭐 그런 것들.

그러나 아니었지.

늘어선 고층 건물들 사이로 해운대의 밤바다가 한아름쯤 내다보이는 호텔 디럭스룸에서였다. 자정을 10초인가 남겨두고 텔레비전 속 연예인들이 일제히 카운트다운을 외친 직후였지. 해피 뉴 이어! 그 밤 우리는 샤워가운 차림으로 서로를 부둥켜안았고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베이커리 옵스에서 사 온 조각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새해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했지. 그런 다음에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각자 화장실로 향하거나 물을 마셨다. 나는 창가에서 야경을 좀 구경하다가 네온사인의 휘황한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커튼을 쳤어. 침대에 누웠고 머리맡의 동그란 다이얼을 돌려 방 안의 조도를 높였다가 낮추기를 반복했다. 순전히 별 뜻 없이. 그러다가 네가 종종걸음 치며 이불 속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휴대전화 알람을 설정하며 말했다.

일출이 7시 36분이라니까, 7시에는 일어나자.

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해 뜨는 거 보려고?

응.

아, 그런 계획이 있었어? 너는 손바닥으로 베개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 위로 쓰러지듯 눕더니 한 손을 뻗어 전체 소등 버튼을 탁 하고 눌렀지. 일순 사위가 캄캄해졌다. 알았어, 7시에 일어날게.

귀찮으면 안 봐도 돼. 그제야 나는 눈치채고 말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네 옆얼굴이나 어깨의 윤곽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방 안이 어두웠다.

그런 건 아닌데. 어쩐지 네 목소리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해돋이를 보려고 일찍 일어난 적이 없어서 그래.

지금껏 새해 일출을 본 적이 없어?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짐짓 놀라는 투로 물었다.

응, 태어나서 한번도 없어.

그렇구나. 나는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싫으면 정말 안 봐도 돼.

싫은 건 아니고. 너는 헛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내가 맞춰주면 되는 거니까.

뭘 맞춰줘. 순간 나는 뾰족한 기분이 들었으나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도톰한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려 덮었고 한숨처럼 들리지 않도록 숨을 아주 천천히 들이쉰 뒤 내뱉었다. 들이쉬고 내뱉고 들이쉬고 내뱉고…… 그래, 뭐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사귄 지도 어느덧 800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달콤한 애정에 눈이 멀어 서로의 새치나 뾰루지마저 어여쁘게 여기던 시기를 지나—이것 좀 봐, 왠지 맛있어 보이네—이제는 만날 때마다 뇌리를 스치는 의구심이랄까 의아함을—얘는 왜 이러는 거지?—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가령 내게는 지극히 당연하기만 한 일이—새해에 바다까지 와서 해돋이를 안 봐?—네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우—해 뜨는 걸 뭐 하러 봐?—일 수 있다는 것.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당황하여 말문이 막혀도 가능한 한 그것을 서로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알면 알수록 너와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마치 둘 사이에서 쉬쉬해야 할 터부인 것처럼 굴었지. 그러므로 내가 일출이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아마도 너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관계를 원만하게 지속할 수 있을지, 내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지를 먼저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군소리 말고 해 뜨는 걸 보러 가야겠네, 귀찮지만 일찍 일어나야겠구나, 하고 무던히 체념하면서도 부지불식중 솟는 자존심이랄까 반감을 완전히 꺾어버리지는 못해 ‘맞춰주겠다’는 식의 다소 거슬리는 어휘를 사용하고 말았겠지. 그러니 나 역시 그 정도의 빈정거림은 너그러이 받아넘기는 것으로 이 상황이 괜한 말다툼으로 번지지 않게끔 노력해야 하고……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렇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새해랍시고 아침 댓바람부터 너를 끌고 나가 해돋이를 보는 일 따위가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지. 나는 그저 네가 원하는 일을 했으면 했다. 원하지 않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내게 말해주었으면 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솔직했으면 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연인일 테니까. 그렇지만 네가 일출 따위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고, 귀찮으니 형이나 보러 가라고 내게 가감 없이 털어놓았을 때 과연 내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느냐를 묻는다면…… 그건 또 자신 없었다. 틀림없이 실망하겠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람도 변했니, 하면서 주접을 떨게 될지도. 하, 그럼 이제 나는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만 보면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일은 너와의 연애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나는 점점 더 무능해지고 있었으니까. 무감해지고 무기력에 젖어들고 있었으니까. 내가 이토록 광범위한 영역에서 열없고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된 건 9개월 전 난생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방문하면서였다.

그즈음 나는 몇시에 잠자리에 들든 세시간쯤 후에는 반드시 깨어나 동틀 무렵까지 불면에 시달리는 증세를 앓고 있었다. 눈이 떠지면 다시금 잠을 청해도 15분에서 20분 간격으로 재차 깨어나기 일쑤였고, 심할 적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짤막한 분량의 비연속적 꿈인지 망상인지 모를 것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그 속에서 나는—실제의 ‘나’라기보다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나’는—언제나 사력을 다해 도망 다니고 있었다. 잭나이프를 든 연쇄살인범이,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해골 악마가, 좀비 떼가 나를 죽이겠다고 뒤쫓아오는 상황에서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쳤지. 그렇게 한달 남짓 밤마다 도망 다니는 시기를 보내자 수면 부족으로 구내염과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누적된 피로와 집중력 저하로 회사에서는 자잘한 업무 실수가 이어졌지. 출판계약서를 엉뚱한 사람에게 발송한다거나 저자와의 미팅을 잊어버려 뒤늦게 허겁지겁 뛰쳐나가곤 했다. 쥐고 있던 펜이나 물컵을 놓쳐 떨어뜨리는 일도 잦았고…… 출퇴근길에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면서는 구를까, 여기서 확 굴러버릴까, 하는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그러다가 오후 4시쯤 참을 수 없이 졸음이 쏟아질 때면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겠다며 사무실을 이탈했다. 산업스파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다른 층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고 변기 뚜껑을 내린 뒤 그 위에 걸터앉아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찧어가며 토막잠을 잤다. 지옥이 따로 없었지.

선생님, 저는 그래요. 자다가 새벽에 눈이 스르륵 떠지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켜요. 그리고 화장실부터 다녀와요. 심기일전의 자세로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서요. 침대에 눕기 전에는 길게 심호흡을 해요. 그런 다음 태아가 엄마의 배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마치 그런 기분으로 이불 속에 들어가 모로 눕죠. 알아요. 좀 특이한 표현이라는 거. 하지만 느껴지시죠? 제 절박함이요…… 물론 그러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죠. 자세를 바꾸기로 해요. 천장을 향해 반듯한 자세로 누웠다가 인터넷에서 본 라마즈 호흡법을 따라 하다가 혹시 내가 두 팔과 다리를 지나치게 벌리고 있나, 오른쪽 어깨가 좀 비뚤어져 있나, 하면서 아주 미세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요. 꿈틀꿈틀. 마치 수면을 위한 최적의 자세라는 것이 존재하고 내 육신의 모양을 그것에 얼결에라도 맞추면, 퍼즐 조각을 끼워 넣듯이 딱 들이맞추면 기절하듯 잠들 수 있을 것처럼요. 하지만 움직일수록 내 발등에 닿는 이불의 촉감이랄지 손목과 대퇴부의 존재 자체가 참을 수 없이 거슬리기 시작하면서 팔다리가 아주 없어졌으면 하는 기분까지 들어요. 정말 이상해. 왜 이렇게 몸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 같지? 어째서 좌우가 딱, 반듯하게, 평형을 이루고 있지 않은 것 같지? 매트리스를 바꿔야 하나? 템퍼에서 파는 3백만원짜리 같은 걸로? 그러다가 반쯤 체념한 상태로 벽을 향해 돌아누워요. 어스름 속에서 눈꺼풀을 들어 한동안 벽지의 패턴을 응시하죠. 무한히 반복되는 그것은 비산하는 나비 떼처럼 보이기도, 애꿎은 발길질에 쓰러진 눈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해요. 가끔은 손을 뻗어 그 벽을 밀쳐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늘 밀려나는 건 나고…… 망했네, 하면서 몸을 일으켜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톡 치면 언제나 3시 51분이거나 4시 27분이거나 하는 식이죠. 혹시 제가 말을 너무 빨리 했나요?

 

상담 첫날, 내가 이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자 신경정신과 의사는 550개인가 그보다 많은 질문이 담긴 검사지 한뭉치를 내밀었다. 답을 작성한 뒤 분석 결과가 나오면 마저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복도 끝 쪽방에 갇혀 한시간이 넘도록 테스트에 응했다. 그중에서 빈 괄호를 채워 넣어야 하는 주관식 문항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                 )

정말 행복해지려면 (                 )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을 볼 때 (                 )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                 )

평생 하고 싶은 일은 (                 )

언젠가 나는 (                 )

그런데 주관식 문항에 이르렀을 즈음 나는 객관식 오지선다형을 5백개 넘게 체크한 뒤여서 거의 탈진 상태였다. 목이 말랐고, 신경정신과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품었던 긴장감이 사뭇 느슨해진 상태였기에 대체 이 빌어먹을 테스트가 무슨 소용이람? 그냥 수면제를 주면 되잖아? 이러니까 부자들이 프로포폴을 맞으러 다녔지, 하면서 살짝 울화가 치밀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렇다 할 궁리 없이 빈 괄호를 채워나갔다. 가급적 고민하지 말고 속도감 있게 답을 작성해달라던 의사의 당부도 한몫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꽤 발랄했던 것 같은데)

정말 행복해지려면 (뭘 어떻게 할까요)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을 볼 때 (그런가보다 한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살아 있다는 것일지도)

평생 하고 싶은 일은 (그런 게 어딨어)

언젠가 나는 (죽겠지)

일주일 후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의사는 내게 기분부전장애인 것 같다고 소견을 밝혔다. 일종의 만성적 우울증인데, 따로 항우울제를 복용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제가 우울해서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의사는 온화한 목소리로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내면에 뭔가 해소되지 않는 불안 같은 게 있으신 것 같아요. 그게 좀 오래된 것 같고요.

그런 건 누구나 있지 않아요?

의사는 결과지에 적힌 숫자들을 가리키며 내가 평균치보다 높은 비관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검은색 막대그래프를 차례로 짚으면서는 천성이 예민하고 독립적이며 성마른 까닭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류에 나타난 객관적 수치 외에는 자신의 모든 견해를 ‘같다’라는 말 뒤에 숨어서 밝혔다. 그것이 참으로 약 오르면서도 현명한 태도로 느껴졌다.

처방받은 수면유지제—명세핀정 3mg—를 복용하기 시작하자 새벽에 두어번 깨어나긴 해도 어렵지 않게 도로 잠들 수 있었다. 수면의 질과 양이 향상되면서 컨디션도 점차 회복되었다. 대신에 거의 멍청이가 되었다. 단순한 업무 처리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약간이라도 창의성이랄지 통찰력이 요구되는 일—도서 홍보 문안을 작성하거나 보도자료를 쓰는 일 따위—앞에서는 머리를 싸매고 한참을 끙끙거려야 했다. 그래도 편집자로서 작성해야 하는 글은 대부분 형식과 방향이 정해져 있어 기존 문안들을 참고하고 적당히 변용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맡은 바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작업은, 소설 쓰기는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그 무렵 나는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을 내어 뭔가를 조금씩 쓰기는 했으나 진심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이라곤 단 한줄도 쓰지 못했다. 열흘이 넘는 동안 가까스로 반 페이지를 채워놓고는 이튿날 저녁에 미쳤나봐, 하면서 파일째 삭제해버리기를 몇차례나 반복했다. 약을 끊어야 할까. 그렇지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로 소설 쓰기는 불가능했다. 사면초가. 번민 끝에 나는 3개월 후로 예정되어 있던 앤솔러지 소설집 마감을 미리 펑크 내기로 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분명 얼토당토않은 글을 시한에 쫓겨 쓰고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발표하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장문의 사과 메일은 어째서인지 순식간에 쓸 수 있었다. 소설가로서는 처음 쓰는 것이었지만 편집자로서는 수십번을—송구하고 저어되나 모쪼록 너른 혜량을 구합니다 등등—써본 덕이었겠지. 그런데 메일을 발송하고 일주일이 지나도, 보름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수소문해보니 원래 그곳이 일을 좀 그런 식으로 처리하더라는 말을 듣고 안심했는데…… 한달을 훌쩍 넘겨 난데없이 담당 편집자의 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작가님, 힘드신 줄은 알겠습니다만 저 역시 못지않게 힘겨운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다. (편집자로도 근무하고 계시니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한때 저는 아내의 출산이 임박했다는 소식에도 회사에 출근하여 단행본을 마감했고, 훗날 이혼 소송에 휘말렸을 때도 조정 과정에 참여하는 대신 자정이 넘도록 문예지 지원사업 신청서와 작가 인터뷰 촬영안을 작성했습니다. 하나뿐인 딸의 생일을 잊어버려 아빠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쓰잘데기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조직 개편에 선후배들이 항거의 의미로 회사를 떠났을 때도 홀로 야근을 거듭하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습니다. 지난한 세월이었지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 모든 역경이 저를 성장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고요. 그러니 작가님께서도 포기하지 마시고 소설을 써주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돌아오지 않으시면 필시 후회할 일이 생길 겁니다.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소설로 꼭 응답해주세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그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노트북을 열어 한번 더 메일을 작성해 보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제가 어찌해볼 수 없는 흐름의 결과가 아닐지 싶습니다. 뭐가 됐든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고요.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 소설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창작에 한하여 이미 응급실에 실려 가 있는 상태와 마찬가지입니다. 의식이 명료하지 못한 채 깨어나고 쓰러지길 반복하는 환자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당분간 그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좀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작가로 데뷔한 이래 가장 후회하는 일은 어떠한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쓰지 말아야 할 글을 썼던 것입니다. 급기야 그 글을 발표했던 것입니다. 밥을 먹어야 할 때는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할 때는 잠을 자고, 쓰지 말아야 할 때는 쓰지 않는 것. 이것이 기어코 써버리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저는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뿐입니다. 부디 이런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보름에 한번씩, 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게 되면서 나는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의사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게 되었다. 정해진 상담시간은 15분 정도였는데, 매번 나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흡사 셰에라자드와 같은 태도로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어떻게 15분을 채우지, 하며 걱정해놓곤 막상 자리에 앉아서는 별의별 이야기를 다 꺼내놓았다. 진료라기보다 네이트판에 익명으로 올리는 사연이랄까 고해성사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가끔은 주야장천 우울한 인간들만 상대하고 있을 의사가 걱정되어—대체 왜?—부러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의사가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껄껄 웃더니—왼 볼에 보조개가 있는 줄 그때 알았다—넥타이를 매만지며 이내 헛기침을 했다. 수줍은 소년의 얼굴이 되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같은 어조로 상담을 이어나갔다. 그날 이후 나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불현듯 이런 욕망을 느끼곤 했다. 어떻게 하면 의사 선생님을 또 웃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와 함께하는 15분을 즐기도록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다른 환자보다 나를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 수 있을까……

 

딱 한번, 의사를 웃게 만든 그 이야기는 첫 소설집을 출간한 뒤 소회를 쓴 에세이로 발표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청탁서에 기재된 내용을 따라 소설 집필과정과 후기에 해당하는 글을 쓰려 했는데 도무지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이나 감정이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아 상담시간에 그럴듯하게 꾸며냈던 사연을 대신 쓴 것이다. 써놓고 보니 오히려 이게 맞지 않나 싶기도 했고…… 그중 일부를 옮기자면 이렇다.

 

놀랍게도 형은 내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20권을 구매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20권이나 샀다고?

—어.

—뭐 하러?

—그냥. 회사 사람들한테 나눠주려고.

그렇구나…… 나는 형이 내 책을 구매했다는 소식보다 그것을 별로 친하지도 않은 직장동료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소식이—이것 좀 보세요. 제 동생이 소설을 썼다네요—당황스러웠다. 그 책이 어떤 책인 줄 알고. 내가 뭐라고 써놓은 줄 알고 그걸 회사 사람들한테……

—어디서 샀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알라딘에서 5권, 예스24에서 5권, 교보문고에서 10권이길 바랐다. 주요 서점들의 판매지수가 고르게 상승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쿠팡에서 샀는데.

—쿠팡? 쿠팡에서 책도 팔아?

—어.

그렇구나…… 나는 쿠팡에서 내 소설집을 검색해보았다. 연관 추천 상품으로 엉겅퀴 전초 300그램과 환경친화 성분 페인트 같은 것이 왜 뜨는 걸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일이 있고 한주가 지났을 때였다. 밤 11시 즈음 형이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기서 하나 일러두어야 할 점. 평소 우리는 메시지든 뭐든 일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다. 혹여 전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엄마를 통해서 했다. 내 기억에 우리는 태어나서 단 한순간도—정녕 한순간도—친밀한 사이였던 적이 없다. 보통 형제라는 게 그렇지 않나? 그러므로 나는 형이 또 책이라도 샀나 하는 기대감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메시지와 함께 이미지 파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클릭해보니 내 소설집 말미에 수록된 ‘작가의 말’ 일부를 찍은 것이었다.

—야, 너 어디야.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잠시 호흡을 골랐다.

—어디긴 집이지. 그리고 뭐긴 뭐야. 쓰여 있는 대로지.

내 메시지에 달린 숫자 1이 사라지고 7분 후에야 형의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설마 이 상황을 엄마도 아시는 건가?

나는 이불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카디건을 걸쳤다.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쥔 채 엄마가 잠들어 있을 안방 문 앞을 지나 현관을 나섰다. 까치발로 층계를 디디며 빌라 옥상으로 향했다. 녹슨 철문을 열어젖히자 부드러운 바람이 볼을 스치며 지나갔다. 초여름의 밤공기가 맑고 시원했다. 철제 난간 너머로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쉰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연결음을 듣는 동안 내가 형과 마주 보고 서서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걸핏하면 그랬던 것처럼. 기어이 내가 형에게 따귀를 얻어맞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정신없이 가방을 꾸리는 모습도 상상했다. 자식들을 말리기는커녕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만 있을 엄마의 모습도.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출을 하게 된다. 커다란 백팩을 멘 채 낯선 밤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게 된다. 어디로 가야 하지? 뭐부터 하지? 통화연결음이 흐르는 그 짧은 동안 나는 가족에게 의절당한 35세 호모섹슈얼의 미래를 가늠해봐야 했다. 당장에 융통 가능한 현금과 며칠간 신세를 질 수 있을 만한 지인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기도 했다. 이제껏 막연하게 예감만 했을 뿐, 육박해오는 미래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 그래. 형은 평소처럼 말끝을 늘어뜨리며 전화를 받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벌써 책을 다 읽었어? 나는 부러 다른 화제를 꺼냈다.

다 본 건 아니고…… 앞에 좀 읽다가 작가의 말부터 봤지. 그런데 이거 진짜야? ‘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고맙다’가 정말 그 남자친구한테 하는 말이야?

그럼 다른 남자친구도 있어?

아니, 그냥 남자인 친구한테…… 도움받은 게 고마워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나는 형이 다짜고짜 화를 내기보다 당혹하여 얼버무리고 있음에 다소 마음이 놓였다. 그 성질머리에 곧바로 차를 몰고 집까지 쳐들어온 게 아니라는 사실도 나를 안심시켰다. 형, 그거 진짜 남자친구야.

진짜 남자친구야?

그렇지만 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었을 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형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돌변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넉살 좋게 허허 웃다가도 느닷없이 상을 뒤집어엎으며 고함을 질러대는 사람이었으니까. 죽은 아버지와 꼭 닮은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대답하지 않고 버티자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의외로 차분한 어조였다. 이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언제부터 그런 거야?

나는 형이 쏟아내는 질문들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그중에는 내가 처음으로 게이임을 깨달았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형의 물음에 가급적 사실대로 대답했으나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형은 기억조차 못할 테니까. 어느 명절날 밤, 통영 고모가 선물해준 어린이 내복을 똑같이 입고선 나와 형과 사촌형—몇해 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이 골방에서 뭣도 모르고 저지른 손장난 같은 걸 기억할 리 없을 테니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형이 그날 밤의 일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지워버렸기를. 그래서 일말의 혼란이나 자책감 없이 살아갈 수 있기를.

여하튼 나는 지난 수년간 지인들에게 했던 커밍아웃 레퍼토리를 거의 그대로 반복하는 셈이어서 대화를 이어갈수록 긴장이 누그러졌는데, 형은 내가 꺼내놓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적잖이 충격을 받는 듯했다. 그렇구나. 넋 나간 사람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구나.

다를 건 없어. 수화기 너머로 심란해하는 기색이 느껴져 나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그냥 내가 남자랑 사귀는 것뿐이야. 그게 다야.

혹시 나중에 외국 나가서 살 거야?

뭐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나가지도 못하잖아. 그럴 형편도 안 되고.

그렇구나. 형은 우물거리더니 말했다. 뭐…… 너만 잘 살면 됐지.

나만 잘 살면 돼?

그래, 이게 다 뭐라고. 한결 가라앉은 음성으로 덧붙였다. 알아서 잘해.

우리는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눈 뒤—알고는 계셔, 들은 적도 없다는 듯이 굴지만—통화를 마쳤다. 그런데 전화를 끊기 직전에 나는 형에게 꼭 한마디를 전해야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형.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고마워.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말 같았다.

 

의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좀더 긴 버전이었다.

그러고 나서 일년쯤 지났을 거예요. 회사에서 일하는데 형이 대뜸 저한테 메시지로 묻더라고요.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느냐고요. 저는 망설이다가—뭐야, 피싱인가—무슨 일이냐고 되물었죠. 그랬더니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에 저를 가족으로 등록해놓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결혼할 때 축의금이 나올 거라면서요.

처음에 저는 그 말이 동성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형의 조크 같은 것일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서른여섯해를 사는 동안 형이 저한테 그런 식으로 농담을, 그러니까 농담 비슷한 거라도 걸어온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형은 어릴 적부터 유머감각이라곤 없었어요.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남자. 그러니 저는 형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했죠. 그 인간은 제가 머지않아 결혼할지도 모른다고 본 거예요. 동성혼은커녕 생활동반자법도 없는 이 나라에서 제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배우자를 등록할지도 모른다고요(혹시 형의 말을 끝끝내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혹시 제가 평균치보다 높은 비관적 성향을 지녀서 형을 오해하고 있는 걸까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날 저는 채팅 창에 질문이랄까, 형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할 만한 선에서 거절의 멘트를 써보려고 몇번이나 노력했어요. 그러려면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하나. 아니, 어째서 이 짓을 또 하고 있나. 끝난 일 아니었나. 연말정산도 아니고 무슨 커밍아웃을 해마다 새로 하나. 일년에 한번이면 그나마 다행인가. 별것도 아닌 일로 형과 심하게 다투던 어린 시절 같았으면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면서 길길이 날뛰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즈음의 저는 채팅 창에 이런저런 문장을 써보던 끝에 기운이 쑥 빠져나가는 걸 느꼈죠. 마치 육체에서 영혼이 쑥 빠져나가는 듯한…… 맞아요. 한창 불면에 시달리던 때였으니까.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하나하나 겨루는 일에 지쳐버렸던 거죠. 넌덜머리가 났고, 도무지 무엇을 위해 이런 실랑이를 되풀이해야 하는지 그 의미조차 알고 싶지 않은 지경이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냥……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줬어요.

 

그 와중에도 녹다운된 권투선수에게 인정사정없이 주먹을 내리꽂는 듯한 뉴스는 들려왔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리서치 결과, 대통령 당선 확률 34.8퍼센트를 얻은 후보 A, “차별금지법, 일방통행식 처리 바람직하지 않아”

—대통령 당선 확률 38.9퍼센트를 얻은 후보 B, “차별금지법, 신중히 검토해야…… 평등만 강조하면 안 돼”

—대통령 당선 확률 1.7퍼센트를 얻은 후보 C, “동성혼은 축복받을 일, 차별금지법 후퇴 비겁해”

—저 인간은 왜 자꾸 기어 나오는 걸까 싶은 후보 D, “동성애, 찬반 사안은 아니지만 결혼은 반대”

 

그러고 보니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너와 나눈 적 있었다. 대통령선거를 석달쯤 앞두었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소나기가 내린 직후여서 한낮이었음에도 서늘하고 어둑한 날이었다. 우리는 혜화역 근처에서 재개봉한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관람한 후 까페이자 서점인 ‘어쩌다 산책’을 찾아갔다. 대체로 소란한 대학로 분위기와 다르게 차분하고 고즈넉한 장소라는 평을 들어서였다. 그런데 주말이어서인지 까페 쪽에 빈자리가 없을 만큼 붐볐다. 대개 남녀 커플이었고 한두 테이블만 여자 친구들 모임처럼 보였다. 주말에 게이들은 다 어디에서 놀고 있을까. 종로3가 송해길이나 해방촌에 모여 있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곁에 서 있던 네가 내 어깨를 살며시 붙들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나는 좀 기다려볼 심산으로 매장 왼편의 서가를 돌아보자 제안했다. 의외로 금세 자리가 날 수도 있잖아? 희미한 우디향을 따라 유리벽 안으로 들어서자 원목 책장으로 에워싸인 장방형 공간이 나타났다. 언뜻 보기에도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이의 큐레이션이라는 인상을 주는 서가였다. 그곳을 나란히 살피던 중 네가 한쪽 매대를 가리켰을 때—저기 좀 봐, 형네 회사 책이야—나는 부러 못 본 척하며 그 앞을 지나갔다. 그래야 네가 웃음을 터뜨린다는 걸 알았으니까.

서가를 한바퀴 둘러보는 동안에도 빈자리는 나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오기가 발동했고, 순전히 시간을 더 끌어볼 요량으로 너에게 이사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 주제가 언제나 너를 단숨에 집중시킨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런데 내년에 정말 집을 살 생각이야?

너는 들여다보던 문고본을 덮어 선반에 올려두며 말했다. 응, 그럴까 하네. 나와 눈을 맞추더니 엷게 웃었다. 아마도 서울 외곽에 있는 오래된 빌라를 사야지 싶어. 서울에 올라와 산 지도 벌써 10년이야. 1, 2년마다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일에 완전히 지쳐버렸어.

집을 사기에 괜찮은 시기인가, 지금이?

글쎄. 너는 눈을 굴리더니 말했다. 나도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는데, 더이상 그런 거 따지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서.

죽도 밥도. 나는 그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았다. 그럼 나는 죽인가 밥인가. 서른여섯살에 엄마 집에 얹혀사는 중이고 주택청약예금은커녕 이렇다 할 적금도 없이 독립 계획조차 없이 죽도 밥도 아닌 쌀알의 형태로 용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이를 들키고 싶지 않아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빌라보다는 아파트를 사는 게 낫지 않아?

음, 그렇기야 한데…… 알아보니까 아파트는 대출이 70퍼센트까지 나오고 빌라는 건물 상태에 따라 60퍼센트 정도인 것 같더라고. 그런데 아파트는 70퍼센트를 전부 대출받아도 내가 나머지를 채울 수가 없어. 30퍼센트가 최소 2, 3억이니까.

그렇구나. 나는 목을 긁적였다. 당장 1억도 없는데.

나도 없어.

그럼 빌라는 살 수 있어?

이것저것 끌어모아 보태고, 30년 상환 조건으로 겨우 살 수 있을 듯.

30년이라. 나는 그 세월의 너비를 헤아려보았다. 그러니까 올해 서른살인 네가 태어나서 살아온 세월만큼을, 딱 그만큼을 한번 더 살아가는 내내 빚쟁이 신세로 지내야만 그 빌라가 오롯이 네 소유가 된단 말이지. 그런데 현 시점에서도 ‘오래된’ 빌라가 향후 30년간 무탈히 제구실을 다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네가 중병을 앓거나 직장을 잃지 않고 무사히 빚을 갚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순간 내 머릿속에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 홀로 앉은 네 모습—60세의 네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진즉에 절연하였으므로 찾아오는 부모나 형제도 없이, 자식도 없이, 심지어 나도 없이 혼자서 콜록콜록 밭은기침을 쏟아내고 있는 네 모습이. 별안간 그런 이미지가 오류를 알리는 팝업 메시지처럼 수십개씩 겹쳐 떠오르는 바람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막막한 상황에 처하면 늘 그랬듯 엉뚱한 방향으로 대화를 틀었다.

뭐 어쨌든, 나중에 내가 엄마한테서 쫓겨나면 네 집에 들어가 살 수도 있으니까, 최소한 투룸으로 알아봐주길 부탁해.

형, 어차피 방이 하나뿐인 빌라는 없어…… 그런 건 원룸이라 부르지.

이왕에 집을 살 거면 내부는 북유럽식 인테리어로 꾸미면 어떨지 싶네. 거실에는 정원이 훤히 내다보이는 통창이 있었으면 좋겠고. 안방 침대는 퀸 사이즈로. 주방은 스칸디나비아식으로 시원시원하게. 앤티크한 분위기의 서재도 있었으면 좋겠어. 네가 좋아하는 골든레트리버랑 내가 좋아하는 치즈태비 고양이도 한마리씩 기르는 거야. 어때?

너는 또 시작이다, 하는 눈빛으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러더니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이 불렀던 버전으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하이라이트를 흥얼거렸다.

레나 박, 너무 좋아.

내가 감탄하자 너는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형, 박정현게이였구나.

나는 정정해주었다. 아니야, 정확히 하자면…… 이소라게이야.

그렇게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어도 빈자리는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와 동숭동 골목을 헤매고 다닌 끝에 커피빈 지하층에 안착했다. 유독 쓴맛이 강한 콜드브루를 홀짝이며 어째서 커피빈은 음료값이 비싼가에 대해 토론하다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에 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우리는 질 거라고, 언제나 그랬듯 패배할 거라고, 여태껏 승리한 역사가 없으니 앞으로도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리라는 예측을 심상하게 나누었다. 그러다가 결혼 이야기도 잠깐 했지.

동성혼만 가능하면 이번 기회에 합치는 건데.

너는 놀란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금 이거 프러포즈야?

사실 나는 이혼도 한번 해보고 싶거든.

아이고, 말을 마세요.

장난처럼 유야무야 덮긴 했지만 사실 그즈음 나는 너의 보금자리 마련에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법적으로 묶이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너에게 주택 마련을 위한 현금을 증여하거나 함께 빚을 갚아나가기로 약조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좀…… 사랑을 압도하는 지점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돈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요구하기도 뭣하고…… 어째서 나는 이렇게도 속물일까. 사랑한다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연인에게 그냥 전재산을 내어줄 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혹시 나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해서 이렇게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대는 것일까. 내 안위를 가늠하고, 파국을 넘겨짚고, 골치 아픈 문제들을 외면하고자 우스갯소리만 늘어놓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나는 이러한 속내를 네게 한번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녹다운된 권투선수에게 야유를 보내는 듯한 뉴스는 들려왔다.

—법원 “혼인은 남녀 간 결합”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소송 패소. 그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왔다. 그렇지만 2019년 지인들을 초대해 동성 결혼식을 올린 ○씨에게는 피부양자 자격을 불허, 보험료 부과 처분을 내렸다.

 

생각해보니 네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또 있다. 이것은 몇달 전에 회사에서 벌어졌던 일. 당시에 나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정황들을 거쳐 징계를 받게 되었다. 왜 말할 수 없는가. 사과문과 시말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돌아온 밤, 나는 수면유지제로도 유지할 수 없는 잠에서 몇번이고 깨어나며 생각했다. 새벽 2시에 책상 스탠드를 켜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도 생각했다. 끝내 뭔가를 쓰지 않을 수 없었고 창밖으로 먼동이 밝아올 무렵까지 원고지 31매 분량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전부 삭제했다.

편집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첫 회사 면접 때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다른 면접자들은 성실함, 출판을 향한 열정, 책이라는 물성을 향한 탐구 같은 답변을 꺼내놓았다. 실로 진심이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맨 끝에 앉아 있었던 나는 그들과 차별화될 만한 답변을 궁리한 끝에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인내심이겠죠. 일하면서 어떤 상황을 겪더라도 참고 버텨낼 수 있어야 할 테니까요. 딱히 진심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취업에 성공했다.

7년 남짓 근무하다가 돌연 퇴사하고 2년 만에 재입사했던 선배 S가 떠오른다. 그가 영국 유학을 핑계로 두번째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 무슨 연유에선지 근무시간에 벌떡 일어나 소리친 적 있었다. 한국문학 편집자, 진짜 극한 직업이다! 그 말에 팀원들 모두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 그리고 침묵.

 

그 와중에도 녹다운된 권투선수에게 큰 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듯한 뉴스는 들려왔다.

—후보 B, 전국 득표율 47.8퍼센트…… 제2×대 대통령 당선

—대선 이후 강남 아파트 평균 4억씩 뛰었다 “규제 완화 기대감 작용”

—인수위 “여성가족부 폐지, 탈원전 백지화” 그다음은?

—퀴어축제조직위 법인 신청 불허한 서울시 “성소수자 권리, 헌법에 어긋나”

 

쑤전 쏜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뉴스란 “뭔가 알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매우 짧고 굵게만 방송되는 것이 고작”이라고 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벌어진 전쟁들 중에서도 고작 몇개만이 추려내질 뿐”이라고.

 

지겨워.

 

그렇게 마음이 밑바닥까지 가라앉을 때면 나도 모르게 떠올리는 풍경이 하나 있다. 회차 지역에서 도통 출발할 생각을 않는 지선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던 날이었다. 영하의 날씨였으나 바람 한점 불지 않아 그리 춥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고개를 들어 늦은 오후의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겨우내 이파리를 모두 떨군 가로수 위로 부산스레 날아다니는 새들이 보였다. 종달새인가. 녀석들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검붉게 퇴색한, 새끼손톱만 한 열매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면서 신이 난 듯 목청껏 지저귀었고 쉼 없이 파들거리며 날갯짓을 했다. 역광으로 내리비치는 햇살은 마치 그 풍경을 진한 먹물로 옮겨놓은 수묵화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불현듯 나는 저 새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심히 돋아난 자리에 한철이 지나도록 남아 있는, 그렇게 아무도 원하지 않게 된 것들만을 긍휼히 얻고 삼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감희하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한순간 날개를 파닥거리며 높이 치솟아 올라 이 땅으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 떠나버릴 수 있을까 하고.

 

그날 버스가 도착하기는 했던가.

내 앞에 문을 열어주기는 했던가.

 

그런 의문인지 회한인지가 잔물결처럼 어른거리다가 스러졌을 때, 나는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목뒤로 푹신한 베개의 감촉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창가 쪽 커튼 사이로 어슴푸레 비쳐드는 서광이 보였다. 실낱같이 가느다랗고 푸르스름한 빛이었다. 그 한줄기 빛을 얼마간 바라보고 있으니 방 안의 모든 것이 차츰 분명한 윤곽으로 나타났다. 너르게 막을 드리우고 있던 밤이 서서히 물러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몇시쯤 되었을까.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전화를 찾아 쥐었다. 6시 56분. 나는 곤히 잠든 너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벌거벗은 그대로 창가에 다가섰다. 양손으로 커튼을 쥔 채 벌어진 틈새로 머리만 쏙 집어넣었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늘진 건물들 사이로 연보랏빛 수평선과 진홍색 너울이 한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바다에는 희부연 운무가 자욱했고 이따금 갈매기 떼의 실루엣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장난감처럼 떠다니는 고깃배와 연안 끝에 우뚝 선 등대도 눈에 들어왔다.

해는 어디쯤에서 떠오를까. 나가서 찾아봐야 할 텐데…… 혼자서라도 가볼까.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토록 일출을 보려 했던 것일까. 아마도 소원을 빌고 싶었던 거겠지. 무슨 소원? 어쩌면 우리가 평생을 함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 어쩌면 네가 양지바른 동네의 빌라를 매입하고 내가 그 빚을 함께 갚아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 어쩌면 내가 약을 끊고 소설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을 쓰고, 그다음 문장도 쓰고, 결코 삭제하지 않을 문장들을 쓰고 또 쓰면서, 그렇게 한 단락씩, 한 페이지씩 서서히 내 몸과 영혼이 개방되는 감각 속에서 마침내 무엇인가 왈칵 쏟아낼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

그러다가 무심코 시선을 내려뜨렸을 때, 나는 골목과 대로변에서 일제히 한 방향으로 뛰다시피 걷는 사람들을 보았다.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아가는 쪽으로 눈길을 던지니 그제야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사람들이 검은 점처럼 보였다. 해변 곳곳이 점투성이였다.

이윽고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놀란 마음에 나는 침대맡으로 다가가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불 속에 파묻혀 있던 너는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미처 두 눈을 뜨지 못한 채 고개만 쏙 내밀었다.

잘 잤어?

너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응, 잘 잤어,라고 대꾸했다. 형은?

나는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그럭저럭,이라고 둘러댔다. 우리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그냥 더 잘래?

내 물음에 너는 대꾸 없이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짧게 하품을 깨물었고, 그런 상황에 처하면 늘 그랬듯 내게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되물었다. 뭘 또 나보고 정하래, 싫으면 싫다고 하든가, 도대체 얘는…… 하고 속이 끓었으나 나는 애써 담담한 투로 답했다. 모르겠어. 뭘 어찌해야 좋을지. 그러면서 네 옆자리에 에라, 하며 드러누웠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이 어느새 천장까지 번져 물결처럼 일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불을 끄기 직전에만 해도 당연히 일출을 보러 가야지, 7시에는 일어나야지, 했는데 막상 깨어나 해안가에 모여든 인파를 보니 저게 다 뭐 하는 짓일까 싶었다. 이대로 잠을 더 자두는 편이 남은 여행 일정을 소화하기에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 관계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날 말은 안 했는데 형이 억지로 끌고 나가서 짜증 났어, 배려심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 사람이구나 싶었지, 맨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그때 헤어지기로 결심했어,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고……

관두자.

비로소 마음먹었을 때였다.

난 말이야. 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뭐가 됐든 형이 내키는 대로 했으면 좋겠어. 내가 정말로 바라는 건 그뿐이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네 쪽을 건너다보았다. 마냥 떠넘기는구나, 뒷짐 지고 물러서는구나, 연하는 원래 다 이런가, 싶었는데 실은 무엇이든 함께해줄 심산이었구나. 내가 원하는 것을 너는 기꺼이 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구나.

그날 나는 팔을 뻗어 말없이 너를 끌어안았다. 두 눈을 감은 채 네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왜 이래, 간지럽게. 너는 핀잔을 주다가 이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네 체온은 내 살갗 위로 뭉근히 번져왔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너의 몸. 그렇게 네 가슴에 한쪽 귀를 얹고 있으니 심장박동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쿵쿵. 쿵쿵.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나른한 감각이 엷은 베일처럼 우리 몸 위로 살며시 내려앉는 듯했다. 그대로 가라앉히는 듯했다. 나는 설핏한 잠 속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네 심장박동에 맞추어 내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타나고, 다시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마치 명멸하는 빛처럼.

 

나는 눈을 떴다.

찰나였으나 일출을 본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