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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성미정 成美旌
1967년 강원 정선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 한 상자』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등이 있음. witwist@naver.com
나,무위의 집
몇번인가 책을 정리했다
몇번인가 그릇도 정리했다
아침이면
찬장에 남아 있는 하얀 그릇을 꺼내
야채로 만든 반찬 두어개로
식탁을 차리고
저녁이면
은테 안경을 끼고
살아남은 책들을 읽고
화분에서 자란 작은
꽃들을 유리병에 꽂고
봄날 나비처럼
초여름 산들바람처럼
그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살고 싶다
여전히 피터팬인 그와
팅커벨 같은 그 아이의 곁에서
조용히 미소 지으며
수천년 시달려온
불안과 불면을
잠시 잊은 척하며
나,무위의 집에 살고 싶다
해탈과 허탈 사이 미묘한 경계에서
더이상 발을 헛딛지 않고
한발 한발 정중하게 걷고 싶다
벚꽃, 벗꽃
꽃잎이
별빛이
흰 눈발처럼
하얀 점점으로
피어나 하얀 점점으로
살다가 하얀 점점으로
이별하는 하루
충만하고 충만하여
상복처럼 검은 봄밤
떠오르는 하얀 얼굴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지는
하얀 점점으로
돌아오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