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야스다 고이치‧카나이 마키 『전쟁과 목욕탕』, 이유출판 2022
목욕탕에서 전쟁과 폭력을 찾아가다
이인혜 李仁慧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inhye.lee85@gmail.com
현대인은 씻지 않고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찝찝함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은 말할 필요도 없고,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이 서로의 손을 타고 전염되어 결국에는 생존에 위협을 받을 것이다. 산업화로 인해 인구 과밀에 시달리는 도시나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 시기 제한된 공간 안에 사람을 몰아넣고 혹사하는 군대, 공장 기숙사 같은 곳에서 씻는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전쟁과 목욕탕』(戦争とバスタオル, 2021, 정영희 옮김)은 일본의 침략과 관련된 목욕탕과 목욕문화를 답사하며 전쟁이 남긴 상흔을 찾아본다. 저자인 야스다 고이찌(安田浩一)와 카나이 마끼(金井真紀)는 대담에서 이 책의 저술을 위한 조사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전세계를 여행하며 대중탕을 답사한다는 장대한 계획이었지만, ‘산속의 노천탕’으로 알려진 태국의 한 온천에 이끌려 찾아가 일본군이 남긴 참상을 보고 책의 방향성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한다.
태국 중부 깐차나부리에 있는 힌다드 온천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저자들의 가벼운 마음이 느껴진다. 힌다드 온천은 원래 작은 웅덩이였으나 일본군이 사흘 만에 큰 탕으로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저자들은 일본군이 포로들을 동원해 부설한 타이멘 철도를 타고 이곳을 방문한다. 철도의 유래를 아는 그들은 어느새 뭐라 표현하기 힘든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고 관광지로 유명한 꽈이강의 다리 앞에서도 완전히 즐거워하지 못한다.
책을 따라 읽는 독자의 마음도 이내 혼란으로 바뀐다. 저자들은 태국 사람들과 온천욕을 즐기면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즐거움이니 세계평화니 하는 말을 언급하는가 하면 연합군 묘지에도 방문한다. 목욕탕 답사와 전쟁의 참상 사이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지만, 저자들의 ‘나이브’함은 힌다드 온천을 개발하는 젊은 일본군을 상상하는 부분에서 더욱 크게 터져나온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하면서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노래를 부르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피식민지였던 국가의 독자로서는 본능적으로 눈을 모로 뜰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오끼나와로 넘어간다. 원래 독립국인 류우뀨우(流球)왕국이었던 오끼나와는 1879년 일본에 병합되었으며 1945년 패전 이후 미국 군정이 통치하다가 1972년 반환되었다. 오끼나와에서는 종전 후 수용소 수감자들의 귀향으로 인한 인구 증가, 전후 부흥기의 분위기와 맞물려 목욕탕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 초에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970년대 주택의 현대화와 가정용 욕조의 보급, 1973년 오일쇼크로 인한 연료비 급등으로 점차 쇠퇴해 현재는 이 책에 나오는 나까노탕 하나만 남아 있다. 저자들은 이곳의 주인인 시게 할머니의 인생을 통해 현대사적 흐름 속에서 오끼나와 사람들의 삶을 설명한다. 오끼나와 사람들과 미군과의 갈등, 미군 내부에서 발생한 인종 문제, 미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 등은 나까노탕 안에서도 이어진다. 전쟁이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되는 일임을, 전부 연결되어 있음을 비로소 저자들은 목도한다.
오끼나와로 향했던 관심은 한국의 목욕탕으로 옮겨간다. 한국에서도 한증막이나 온천욕 등 자생적인 목욕문화가 존재했지만 오늘과 같은 형태의 대중목욕탕은 식민지시기 전후로 도입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 정한 탕옥영업취체규칙에는 12세 이상의 남녀 혼욕 금지, 입욕료는 욕객이 보기 쉬운 곳에 게시할 것 등 방침이 기재되어 있었다. 여기에 때밀이나 사우나, 찜질방 등의 요소가 가미되어 한국의 독특한 목욕탕 문화가 형성되었다. 일본과 다른 한국의 목욕문화를 일본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저자들은 한 인물의 입을 빌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사람들을 조명한다. 식민지시기를 보낸 사람들은 한국인인 동시에 특정 시기 동안 일본인이었으며, 전쟁으로 뒤섞이게 된 정체성은 종전을 맞았다고 해서 곧바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었음이 그 이야기 속에 생생히 전해진다.
피식민자와 식민자의 혼재된 정체성 문제는 본토, 즉 식민을 자행했던 국가의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는 문제다. 카나가와현, 히로시마현 등지의 군수공장에서 종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된 사례를 볼 수 있다. 종전 후 수많은 귀환자를 받아들인 사무까와정에는 귀환자 주택이 있었다. 그곳에 개업한 스즈란탕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던 저자들은 귀환자들이 거주하던 기숙사 건물이 실은 사가미 해군 군수공장의 기숙사 건물이었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독가스를 제조했다는 내용을 듣게 된다.
저자들은 내친김에 군수공장에서 일했던 사람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한다. 군수공장에 동원될 당시 16세였던 이시가끼는 그런 무기에 관여할 수밖에 없도록 국가가 강요했음을 지적하며 독가스로 인한 피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고 구술한다. 토끼섬이라 불리는 오꾸노시마에 이르면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흰 쌀밥에 고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14살에 오꾸노시마로 들어온 후지모또는 승전을 위해 독가스를 만드는 것이 영웅적인 일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루이사이트를 제조했다. 그는 전쟁과 국가가 자신을 괴물로 만들었으며 독가스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증언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외친다.
분명 목욕탕에서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저자의 말대로 점점 목욕탕에서는 멀어지고 전쟁이 남긴 상처만 주위에 가득하다. 후지모또가 뱉어낸 절규만 귓가에 계속 울린다. 전쟁에 관해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전쟁을 주도했던 자들의 공식적인 사과는 지금껏 없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교묘하다. 보통의 일본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목욕탕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전쟁의 폭력적이고 음울한 면까지 끄집어낸다. 목욕탕을 답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욕탕의 역사와 함께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상흔을 서술하고 있어 책을 덮지 않고 끝까지 읽어내게 만든다. 저널리스트인 야스다의 사실 중심적인 글과 일러스트레이터인 카나이의 그림 및 감성적인 글이 어우러져 단맛과 짠맛이 교차하는 것처럼 대조를 이룬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현지를 담아내는 일러스트도 지도도 귀엽지만, 두 저자의 미묘하게 다른 입장 차이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