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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윤빈 崔允斌
1991년 경기 광명 출생. 2018년 『비유』로 작품활동 시작. cunbn@naver.com
장마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친구는 잠꼬대처럼
욕조가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한다
물에 잠긴 친구에게는 하루가 길고
나의 오늘은 실수가 길다
나는 오래 물을 엎지른다
컵은 물을 엎지르며
비어가고
이불이 창밖으로 엎질러진다
벌어지고 나서야
알던 일이 되는 예감들처럼
창틀에서 친구의 고양이가
마른세수를 하고 있다
잠이 든 친구 옆에
컵을 엎어놓으면
마르지 않는 소파 위로
친구가 비어가고
욕조에는 한 사람의 구멍
입을 벌린 컵이 조용한 오늘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다
서정리
그는 내가 사는 동네에 오면 꼭 우동을 먹고 간다
살아 있는 게 부끄럽다는 그와 나란히 앉아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수술을 하면 왼쪽으로도 들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도 잘 살았다고 한다
옆 테이블의 아이들은
우산 두개를 나란히 상에 기대놓는다
먼 곳의 지명을 떠올리다
그의 왼편에 앉는 나를
너무 돌아만 보면 고개가 아프다며
그는 이해하고
저녁을 헤아리느라
한바퀴를 돌아본다
아이들은 우동가락을 우물거리며 집으로 간다
머리가 조금 젖은 채로
지난밤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내게
그는 쓰고 있던 모자를 덮어주었고
서정리로 가는 버스를 배웅하고
집으로 걷는데
집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