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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도종환 都鍾煥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1984년 『분단시대』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등이 있다. djhpoem@hanmail.net
해장국
사람에게 받지 못한 위로가 여기 있다
밤새도록 벌겋게 달아오르던 목청은 식고
이기지 못하는 것들을 안고 용쓰던 시간도 가고
분노를 대신 감당하느라 지쳐 쓰러진 살들을
다독이고 쓰다듬어줄 손길은 멀어진 지 오래
어서 오라는 말 안녕히 가라는 말
이런 말밖에 하지 않는
주방장이면서 주인인 그 남자가 힐끗 내다보고는
큰 손으로 나무식탁에 옮겨다놓은
콩나물해장국 뚝배기에 찬 손을 대고 있으면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어디서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랴
떨어진 잎들이 정처를 찾지 못해 몰려다니는
창밖은 가을도 다 지나가는데
사람에게서 위로보다는 상처를 더 많이 받는 날
해장국 한그릇보다 따뜻한 사람이 많지 않은 날
세상에서 받은 쓰라린 것들을 뜨거움으로 가라앉히며
매 맞은 듯 얼얼한 몸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한 숟갈의 떨림에 가만히 눈을 감는
늦은 아침
오래된 성당
오래된 성당에 들러 오르간 소리를 듣자
성당 바닥에 낮게 깔리던 합창의 저음 옆으로
가만히 끼어들어가보자
바람도 고요를 흔들지 못하는데
굵은 황초의 촛불을 흔드는 이는 누구일까
처음 기도를 배우던 시절 두 손 깍지 끼고 올리던
기도의 문장들을 떠올리자
나는 그때의 그 간절함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걸까
기도문 다섯째 줄에 이르면 염원은 더 절실해지고
성가 이삼절을 따라 부르는 동안
눈물 한줄기가 내 앞에서 나를 데리고 가던 곳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에 나를 다시 맡기는 일
채색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나를 지켜보던 햇살
묵상하던 짧은 시간에 떠올리던 사람들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이도 물론 있지만
그들도 가끔 용서와 순명(順命)의 시간 중에
나를 생각하곤 할까
영성체를 모시러 가던 긴 줄 끝에
어색한 채 떠밀리듯 한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던 그곳
내 안의 오래된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