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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장석남 張錫南
1965년 인천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등이 있음.
sssnnnjjj@hanmail.net
법의 자서전
나는 법이에요
음흉하죠
허나 늘 미소한 미소를 띠죠
여러개예요 미소도
가면이죠
때로는 담벽에 붙어 어렵게 살 때도 있었지만
귀나 코에 걸려 있을 때 편하죠
나는 모질고 가혹해요
잔머리 좋은 종들이 있거든요
설쳐댈 때가 많지만 만류하진 않아요
그 짓 하려고 어린 시절 고생 좀 한 것들이거든요
만인 앞에 나는 평등해요 헤헤
음흉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죠
원칙이 있지만 아주 가끔만 필요하죠
이득과 기득을 좋아해요 지킬 만한 가치죠
그에 위배되면 원칙을 꼭 알리죠
나는 물처럼 맑고 평등하다고 말하죠
유죄도 무죄도 다 나의 밥이죠
너무 바빠요 너무 불러대니 쉴 틈이 없죠
나는 법이에요
양심 같은 건 우습죠 이득 앞에서
그깟 것 금방들 버려요 시류에 어긋난 소리죠
아 이만하기도 참 다행이죠
한때는 참 어려운 시절도 있었죠
너무 많은 살생을 해야 했으니
황혼이 오네요
저게 제일 싫어요
속속들이 황혼이 오네요
저 지축 속에 숨은 당당한 발소리
나는 귀를 막아요
잘 못 듣는 귀지만 다시 막지요
나는 벌벌 떠는
법이에요
겨울 골짜기
참담한 풍경을 사랑했으므로
겨울 골짜기를 찾는다
바람 무리가 땅을 차며 불어간다
별자리들이 가락을 바꾸는 때마다
꼬인 창자가 아프다 하늘의
창궐한 싸움을 엿보다
그만 눈동자에 금이 간다
한 시절 꽃 비치던 물 꽝꽝 얼어
피 묻은 돌멩이 무더기들 물고 있다
남풍에 대해 묻고 싶으나
물으나마나
가재 눈 뜨고
수선화 올라오나
예쁜 것 보지 말자
노래여 아직
올라오지 말아다오
말아다오
흥얼흥얼 올라오지 말아다오
불 켜고 소매 여미고
가장 오래인 법전을 펼쳐놓고
귀신을 부른다
호오이 호오이
겨울 골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