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 24인 신작시선

 

신경림 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6년 『문학예술』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농무』 『새재』 『달 넘세』 『가난한 사랑노래』 『길』 『뿔』 『낙타』 『사진관집 이층』, 장시집 『남한강』 등이 있음. skyungrim@hanmail.net

 

 

 

새떼

 

 

1.

수천수만마리 새들이 갯벌에 앉아 있다.

번갈아 날아올라 쏜살같이 물속으로 자맥질해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기도 하고,

낮은 하늘에서 둥글게 원을 그려 튼실한 날개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해가 기우뚱 수평선에 걸리고 서쪽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면

수천수만마리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춤을 춘다.

 

멀리서 보면 똑같은 작은 새요 더 멀리서는 그냥 점들이다.

수천수만개의 크고 작은 점들이 갯벌에 앉아 있고

크고 작은 점들이 춤을 춘다. 하지만

 

어떤 새는 아직도 깃털 속에 백두산 두메 양귀비의 향내를 묻히고 있고, 또

어떤 새는 부리에 바이칼호의 물고기 비린내를 물고 있을 것이다.

사막의 모래가 발톱에 묻어 있는 새도 있고 초원의 마른 풀냄새가 몸에 배어 있는 새도 있을 것이다.

먼 길을 날아오는 사이 눈 하나가 멀어버린 새도 있고 발톱이 빠져버린 새도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돌아갈 곳도 제 각각이리.

북쪽나라 추운 물가가 그리운 새가 있고 고량밭 한가운데 자리잡은 늪을 꿈에 보는 새가 있으리.

먼 길을 날기에는 날개가 덜 회복된 새가 있고 몸이 가뿐해 잠시도 가만있을 수 없는 새가 있으리.

멀리서 보면 똑같은 점들이다.

수천수만개의 크고 작은 점들이 갯벌에 퍼져 있기도 하고 하늘을 맴돌기도 한다.

 

 

2.

생각도 다르고 생김새도 달라서

매일처럼 입에 침을 튕기며 서로 발길질하고 주먹질하는 우리들도

멀리서 보면 한갖 수천수만개의 크고 작은 점들일까.

누가 옳고 무엇이 바른지도, 누가 잘나고 무엇이 비뚤어졌는지도 구별되지 않는

수천수만개의 크고 작은. 멀리서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