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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시영 李時英
1949년 전남 구례 출생.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만월』 『무늬』 『사이』 『조용한 푸른 하늘』 『호야네 말』 『하동』 등이 있음.
roadwalker1@hanmail.net
추억에서
꿈에 고행렬과 함께 화엄사 계곡을 건너는데 물이 하도 맑아 징검다리 아래 빠가사리는 물론 지리산에서 떠내려온 장정들의 머리통만 한 돌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곳이 아마 이 세상의 계곡이었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초등학교 하학길이면 물 마른 천변에서 그 돌들을 불상처럼 깎으며 놀았고, 행렬이는 뒷날 구례읍 제빵사로 일하다가 아버지 부음을 듣고는 속초로 올라가 공무원이 되었다. 아, 금강산 가는 길에 있던 눈 많은 고장 고성군 현내면. 천연의 겨울 바다가 언덕을 들이받으며 부서지던 아름다운 곳의 소년 면서기.
기념사진
어젯밤 꿈에 시골집엘 내려갔더니 새하얀 무명옷으로 잘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갓방에서부터 도장방 안방 마루 그리고 정지간 앞 봉당에까지 줄느런히 앉으셔서 환히 웃고들 계셨는데 근심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였다. 시집올 때부터 갖고 온 이름 그대로 지정댁 외미동댁 논실댁 흥대댁 부무동댁 봄면댁. 그리고 택호는 잊어버렸지만 한가운데 길로 죽 올라가서 수창이네 집으로 꺾어지기 직전 언덕에 우뚝하던, 평소에도 신기가 좀 있다던 양출이 형네 고운 어머니. 어디서 무엇 하시다가 이렇게들 한자리에 모이신 것일까. 나는 세상에서 제일 끼끗한 그분들의 모습을 한장 한장 박아드리고 하동행 버스를 타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