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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천양희 千良姬
1942년 부산 출생.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새벽에 생각하다』 『지독히 다행한』 등이 있음.
뒤척이다
허공을 향해 몸을 던지는 거미처럼
쓰러진 고목 위에 앉아 지저귀는 붉은가슴울새처럼
울부짖음으로 위험을 경고하는 울음원숭이처럼
바람 불 때마다 으악, 소리를 내는 으악새처럼
불에 타면서 꽝꽝 소리를 내는 꽝꽝나무처럼
단 한마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수상한 시절
첫봄인데
꽃들이 모두 순서 없이 피었다
황홀을 터뜨리던 저들의 몰락 같다
바람이 없는데도
지진 맞은 듯 흔들린다
꽃을 보던 마음이
다른 길을 옮긴다
길 건너 공원에는 안개가
최루탄 연기처럼 자욱하다
더듬거리며 연인들이
오리무중이야 앞이 보이지 않아
안개 속으로 스며든다
설레야 할 심장이 마스크를 썼다
감동 없는 날을 베고 싶은 시간이다
신이 코로나를 이용해
천국 한가운데 지옥을 숨겨놓았다
오늘은 가까스로
입속에 말이 적어져야겠다
“눈밭에서 길을 잃을 때
뒤를 돌아보아야 하는 거야” 여자가 말한다
“어둠보다 더 두려운 건 권태인 거야” 남자가 말한다
두 사람의 쓴소리가 가까워진다
쐐기풀에 베인 듯 살갗이 따갑다
쓴소리하는 그들을 보다가
나도 한때 쓴소리꾼이었지, 중얼거린다
중얼거리다 세상 다 보낸 건 아닐까
우두커니 서서
환한 거리를 내려다본다
달려가고 달려오는 불빛들
저것이 일상일까
우리에게도 일상이 있었나
수상한 시절이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