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박연준 朴蓮浚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등이 있음. gkwlan@hanmail.net
혀 위의 죽음
할 수 있지 내 팔을 부러뜨릴 수 있지 내 모가지를 부러뜨릴 수 있지 내 상체와 하체를 동강내 하나씩 가질 수 있지 더 무거운 쪽을 내려놓을 수 있지 더 가벼운 쪽을 모자처럼 쓸 수 있지 머리 가죽을 벗길 수 있지 얼굴에서 눈 코 입을 떼어내 다시 배열할 수 있지 내 위에 올라탈 수 있지 올라타서 쑤셔 넣을 수 있지 함부로 몰아가며 사정할 수 있지 내 영혼을 봉쇄할 수 있지 라고 노래하던 종이
떨어졌다
비켜봐요!
잡을 수 없는 종,
잡을 수 없는
종,
잡을 수 없는 종을 보게
비켜보세요
나예요, 스스로 나예요,
내가 내려요 스스로, 나예요,
내리고 마는 나를, 떨어뜨려요 비가
스스로 나를, 멀리로 비가, 보내려는 나를,
떨어져요, 몰래, 스스로, 내려요, 비가 나예요
(나도 그랬어)
이것 좀 봐!
어제 내내 나를 덥혀준 혀들이,
완전히 새것인 혀들이
노래 부른다 우리를 위해
나도 그랬어 올라가는 게 뭔지
몰랐어
나도 그랬어. 자꾸만 길이
길어졌어
나도 그랬어
나는 그게 기타인 줄 알았는데,
밟으면 다시 튕겨 올라갈 줄 알았는데
다리가 젖고
무릎에서 다 늙은 달팽이들이 기어나오고
음악이 끝나고
저기, 엄마가 기다린다
내가 가고,
엄마는
주홍색 비명 속에 들어가 자는 사람 능소화 속에서 피리를 부는 사람
사과는 먹히기 전에 합의한 적이 없다
나예요, 스스로, 나예요,
음식은 스스로 음식이 되겠다고 합의한 적이 없다
내가 내려요 스스로, 나예요
어디로 갈까 이 밤에, 밤이 되겠다고 합의한 적이 있니
내리고 마는 나를, 떨어뜨려요 비가
세명의 남자아이들을 따라간 날
스스로 나를, 멀리로 비가, 보내려는 나를,
떨어져요, 내가
잡을 수 없는 종,
잡을 수 없는
(나도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