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김광규 金光圭
1941년 서울 출생. 1975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처음 만나던 때』 『시간의 부드러운 손』 『하루 또 하루』 『오른손이 아픈 날』 등이 있음. bovanokim@naver.com
조선 닭
정유재란(丁酉再亂) 때도 살아남은
조선 닭입니다
—늙은 수탉 같으니라고!
왜 자꾸만 꾸벅꾸벅 조느냐고
구박하지 마세요
아시겠지만 요즘은 병아리들이
채 자라기도 전에
달걀을 낳기도 전에 모두
프라이드치킨이 되잖아요
플러스 아니면 마이너스
1 아니면 0 사이에서
성숙할 틈도 없이 깜빡거리다
꺼져버리는 디지털 시대에 느닷없이
조류독감으로 가금 3천만마리 매몰되었지요
역겨운 악취 참기 힘든 2017년
붉은 닭의 해에도
산 채로 땅속에 묻히지 않고
통닭구이로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은
장닭을 본 적 있나요?
—꼬끼오 꼬오 꼬!
들리지 않아요?
새벽 뒤뜰에서 수탉 우는 소리
마가목주
밋밋한 오르막길에 마가목(馬牙木) 한그루
눈에 띄었다
주전골 내려오며 우리는 마가목 열매로 담근
술 이야기를 했었지
설악산 쏘다니다보면
감자전 부치는 산골 주막에 들러 한번
맛볼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럴 기회가 오기도 전에 그 친구
췌장암으로 세상을 등졌고
나는 이제 산을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여생의 내리막길 타박타박 걸어가면서 아직도
마셔보지 못한 마가목주
그저 이름만 기억하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