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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유진목
1981년 서울 출생. 시집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를 발간하며 작품활동 시작. 다른 시집으로 『연애의 책』이 있음. eugenemok@naver.com
벤자민
어머니, 하고 부르자 그는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벤자민에 물을 주고 있다. 나는 어항의 물이 줄어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어머니, 물이 줄어든 것 같아요. 어머니는 벤자민에 주고 남은 물을 어항에 따랐다. 어항에 손대지 말라고 했지. 손자국이 남잖니. 나는 한걸음 물러섰다.
어머니의 벤자민은 길고 두껍고 무성했다. 어쩜 이렇게 잘 자랐을까요?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그래요. 어떨 땐 좀 징그럽더라구요. 그래요? 어떨 땐 그래요.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나는 벌써 얼마나 죽였는지 몰라요. 벤자민을 죽인 사람은 나뿐일걸요. 나도 처음엔 여러번 죽였어요. 자꾸 죽으니까 싫더라구요.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나 싶고 왜 그렇잖아요. 어머니는 벤자민 바구니를 천장에 매달 때 까치발로 키를 높였다. 어머니, 제가 걸어드릴까요? 어머니는 괜찮다고 말한다. 나중에, 나중에 해주렴.
그때까지는 집에 어항이 있었다. 다른 집에도 어항이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물고기는 한마리만 남아서 구석에 가라앉아 있었다. 모서리를 두드리면 조그만 입을 뻐금였다. 언제부터 이랬니? 모르겠어요. 이제 곧 죽겠구나.
어머니, 하고 부르자 그는 다시 떠나고 싶었다.
염리동
반칸 아래 부엌에 물이 들어온 걸 넘친다 넘친다 하며 바가지로 퍼내던 부부가 있었다. 그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는데 씻는 것은 부엌에서 하고 골목 끝에 공용 화장실이 있어 그리로 갔다. 화장실은 다른 집에도 없어. 여자는 말하곤 했다.
그는 다른 집에 없는 것과 다른 집에 있는 것을 구별했다. 이건 다른 집에 있어? 아니 이건 다른 집에 없어. 왜 없어? 아빠가 너한테만 준 거니까. 그는 그것을 베개 아래 넣고 잤다. 있는 걸 너무 귀하게 여기면 못써. 왜 못써? 없이 사는 게 보이니까.
여자는 물을 퍼낼 때도 괜찮았다. 다른 집도 부엌은 잠기고 있었다. 남자는 구정물에 종아리를 담그고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나갔다. 다시 돌아왔는지 그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빠는 다른 집에 있어? 아니 아빠는 아무 데도 없어. 여자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나무라는 말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