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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준태 金準泰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1969년 『시인』으로 등단. 시집 『참깨를 털면서』 『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달팽이 뿔』 『밭詩』 등이 있음. kjt487@hanmail.net
노래, 물거미
1
70년 세월
그저 흘렀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남과 북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 늪
목마른 노루새끼나
종종 주둥이로 스쳐가는
지뢰밭 물구덩이 안에서
거미 두마리가 엉겨붙는다
반경 2cm가 될까 말까 한
물방울 속을 비집고 들어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암놈과 수놈
사랑을 한다
작은 수초(水草) 하나
다치지 않고, 찢김도 없이
아흐,
둥근 물방울 속에
들어가 사랑을 시작한다
남과 북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 늪—
1과 1속 1종으로 버티면서
여덟개 다리로 버티면서
둥근 물방울 속에 때마침
떠오르는 만월(滿月)도 불러들여
신방을 차린다 전설보다 더 멀고 먼
사랑을 한다 단순한, 소박한, 완벽한!
2
경기도라 연천군
민통선 비무장지대 연못
물거미 암수 한쌍처럼
그네들 물방울집에 들어가
나도 사랑연습 좀 해볼까
반달 아닌 둥근 달덩어리로
나 또한 반짝반짝 사랑 좀 해볼까
물방울 반경이 2cm면 어떻고
호랑가시나무에 매달려 있다손
그게 무슨 험상(險相)이고 부끄럼이랴
거문고와 비파처럼
금슬도 좋고 좋은
세계에서 유일한
1과 1속 1종 물거미 부부!
나도 그네들 물방울집에 들어가
70년을 뛰어넘듯 사랑연습 좀 할까
비무장 연못에 풍덩풍덩 뛰어들어
물거미 부부처럼 와락,
사랑 좀 해볼까.
* 물거미: 오직 1과 1속 1종에 속하는 물거미(학명 Argyroneta Aquatica)는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1996년 6월 초,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거미학자 남궁준 박사 팀의 현장답사를 통해서 경기도 북부지방 연천군 민통선(민간인통제선) 비무장지대 늪지대에서 발견·확인됐다. 대부분의 거미는 암수가 독자적으로 행동하지만 이 물거미는 암수가 같이 살면서 실지렁이, 옆새우, 장구벌레 등 작은 수서생물을 잡아먹는 것이 특징이다. 이 사실을 세계거미학회에 보고한 남궁준 박사는 520여종의 거미표본 10만점을 수집, 한국 최초 거미도감을 내놓았다
파블로 카잘스 연주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새가
날아오네
4월의 밤
먼 별에서
새가 날아오네
하늘에서 지상으로
길게 놓인 첼로 하나
그 푸른
현을 밟으며 날아오는
카탈로니아의 새 떼들
peace, peace, peace
새가
날아오네
아 코리아의 하늘에
길게 놓인
첼로를 퉁기며
바람과 구름의
눈썹에 매달린
새가
날아오네
사랑과 눈물
음악의 부호들…
peace, peace, peace!
* 파블로 카잘스: 스페인의 첼리스트로 피카소와 같은 카탈로니아 지방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