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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행숙 金杏淑
1970년 서울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등이 있음. fromtomu@hanmail.net
우리를 위하여
그 밤의 언덕에서 개 한마리가 컹, 컹, 짖고 있었다.
그 모습은 우리 모두가 속한 세계로부터 저 홀로 툭 튀어나온 듯 고독하게 보였다.
그 고독이라면 전 세계로부터 한걸음 뒤로 물러선 당신의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끝없이 긴 한줄의 문장을 언제나 끝맺으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를 넘지 못하는 국경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국경선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슬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앞에서 사랑하고 옆에서 의심하고 뒤에서 밟았다. 우리는 우리의 무덤을 팠다. 어느날 당신이 내디딘 단 한걸음 때문에
그 한걸음 때문에 당신은 우리의 대오에서 사라졌다. 그 밤의 어둠 속에서는 뭔가에 씐 듯 베테랑 사냥꾼조차도 다 잡은 짐승을 눈앞에서 놓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 개처럼 당신은 짖어라.
그 추리닝을 입은 개처럼 당신은 허공과 싸워라. 그 허공이 당신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리.
그날이 그날처럼 24시간 흘렀다.
항구적으로 불안은 우리를 위하여 전류처럼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언제나 환하게 불을 켠다.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잘 아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사람처럼
알다가도 모를 미소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이었어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눈을 감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나는 전달책 k입니다.
소문자 k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왜 가는지는 모릅니다.
오늘따라 나는 울적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내가 불편합니다.
만약 내가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주워 주머니에 숨길 때의 그 마음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쏘아보며 나를 집어 던질 때의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평소에도 나는 나쁜 상상을 즐겨 했습니다.
영화 같은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비껴가는 곳에서
나는 나를 재촉했습니다.
한명의 내가 채찍을 들고
한명의 내가 등을 구부리고
잘 아는 길이었는데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었는데……
안개가 걷히자
거기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두 눈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