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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안도현 安度昡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리운 여우』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간절하게 참 철없이』 등이 있음. ahndh61@chol.com
안동
매화는 방 안에서 피고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어머니는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시를 읽고 있었다
누이야,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한편 쓰면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았다
가출한 아버지는 삼십년 넘게 돌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는 딸을 낳지 못했다
아내는 무채를 썰고 있었다
도마 위로 눈 내리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생채와 들기름으로 볶은 뭇국을 좋아했다
매화는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였다
동생들은 관절염에는 수술이 최고라고 말했고
저릿저릿한 형광등이 매화의 환부를 내려다보았고
환부가 우리를 키웠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누이야,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쓰면
우리 애들과 조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고모가 생겼으니 고모부도 생기고
고종사촌도 생기니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궁을 꺼내 내다버렸고
시는 한줄도 내게 오지 않았다
저녁이 절룩거리며 오고 있었다
술상에는 소고기육회와 문어숙회가 차려졌고
우리는 소주를 어두운 뱃속으로 삼켰다
폐허가 온전한 거처였다
누구도 폐허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안동시 평화동 낡은 아파트 베란다 바깥으로
쉬지 않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편지
남쪽 끄트머리 해안이 보이는 언덕에 차를 세우고 무작정 매화꽃이 핀 비탈로 들어갔습니다 매화나무들은 한창 꽃의 생산이 활발해서 천개의 마을과 만개의 골짜기에 일일이 신방(新房)을 들였습니다 이 마을은 인구가 조밀하고 물자가 창고마다 쌓여 있어서 벌과 벌레와 새들이 상해나 서울과 같은 큰 도회지를 찾아온 듯하였습니다 나는 매화나무들이 경영하는 나라의 신민(臣民)으로 등재되기를 바랐습니다
내 이마 높이쯤에서 바다는 어린 날 오후의 치통처럼 칭얼댔습니다 바다는 매화나무의 가랑이 사이로 들락거렸고, 그래서 마치 내 마른 허벅지에 물때가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때 매화꽃들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 입술로 꽃잎을 받는 일은 매화나무의 신체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매화나무는 낙화의 시절을 알면서도 참으로 괴롭게 일생을 꿰매어 한땀 한땀 나뭇가지에 내걸었던 것입니다 서러워할 것들이 많은 매화나무의 발등에 적설량이 늘었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누님, 누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봄날의 화유(花遊)였으면 했습니다 누님의 위독한 증세는 매화나무로 이주해 매화꽃은 뱃속에 큰 병을 얻었습니다 울지도 못하고 꽃이 피었다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죽음은 한차례도 닿지 못한 누님의 내해(內海) 같아서, 살고 죽는 일이 허공에 매화무늬 도배지를 바르는 일과도 같아서
나도 길에서 벗어나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일이 나의 직업이라고 약력에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완성하지 못한 숙제는 출근처럼 아득했습니다 저기, 저기 좀 보십시오 누님의 치마폭을 닮은 꽃그늘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밟고 다닌 모든 길들을 착착 접어보면서 바다는 파도, 파도,라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매일 해변에 자신을 버리면서 평생 자신을 적재하는 바다에 이르려면 누님, 아직은 캄캄해질 때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암향(暗香)을 편지에 첨부하여 보냅니다 내년 봄, 매화꽃이 처녀와도 같이 자지러질 때, 밤길에 연애하러 갈 때 써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