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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안미옥 安美玉
1984년 경기 안성 출생.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온』이 있음. myugi3@empas.com
멀고 먼 통조림
이제 집이야
나의 신은 새로운 신
우린 다시 만나지 않기로 했다
작은 돌이 있었고
그것에 작은 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다른 나라에서
똑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밤에 간 박물관엔
문 닫을 준비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벌린 입 안으로 들어오는
멀고 먼 옛날
갈 곳이 있는 사람처럼
남아서
잘 지내라는 말
이제는 잘할 수 있다
조금 오래 지나고 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돌
작은 돌
작은 돌이 있었고
이제는 없다고
같은 옷을 입고 매일
다른 얼굴로 오는 신에게도
말할 수 있다
남아 있는 옷이 없다고
겨울에도 여름에도
유리창 밖에서 떨고 있는
창에 비친 나에게도
묵독
어떤 악의도 없이 2
심장 옆에
물어볼 사람이 없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면서
불현듯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
악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
그건 나무 안에 있는 흔들림이야
한밤중 조명가게 옆을 지나면서
빛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해본다
이 문장은 아주 좋은 문장이야
빛 잃은 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
너무 작은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주머니에서 줄줄 흘러나오는데
이 주머니를 버릴 수가 없다
잘 버려지지 않아서
단 하나의 침묵도 가지지 못한 사람
나는
쓰지 못할 것 같다
나라고밖에 쓰지 못할 것 같다
내게 말하듯이
네게 말하는 버릇
붉게 빛나는 십자가 수천개
밤마다 빛을 뿜고 있는데
문이 닫혀 있는 줄도 모르면서
한밤중의 일들을
단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연필을 깎는 일은
왜 뾰족해지는 일이어야 할까
잘 찢어지는 물음표의 끝을 만지며
뒤를 돌아보면 네가 앉아 있다
밝은 것은
아침에 열리고 저녁에 닫힌다
잘 버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