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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유용주 劉容珠
1959년 전북 장수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가장 가벼운 짐』 『크나큰 침묵』 『은근살짝』 등이 있음. sinmusan@daum.net
겨울밤
허리까지 쌓인 눈이
굽이치는 달밤이면
나는
덕산 최생원 집 뒤안
왕대나무 가지에 반달곰 쓸개를 매달아
장안산 너머 사암리 냇갈까지 낚싯대를 던져놓고
매서운 바람의 파동을 귀 기울여 듣고 있는데
큰 산맥 너울이
두어번 아부지 코골음 소리에 뒤척이자
아름드리 참나무 팽나무 서어나무 수초에 붙어 있던
山갈치들이 은빛 지느러미를 번뜩이며
일제히 솟구쳐 오르다 미끼를 덥석 물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룡폭포 쪽으로 날아가는데
찌르르,
허공이 한번 달빛에 휘청
걸려 넘어지는 것인데
오줌똥 지리는 줄 모르고 끌어당기는 사이
감나무 둥치 통째로 쓰러지고
고라니 멧돼지 혼비백산 달아나고
아뿔싸!
측간 옆 마당에 파편처럼 떨어져 뒹구는 새벽별,
줄 끊어먹은 山갈치는 은하수 밑으로 아스라이 숨어버리고
달의 구멍에서 쏟아져 나온 피리소리
언 들판에
낭자하다
夢精(몽정)
꼿꼿하게 독 오른 고추가
뭉게구름을 토해내는 7월 땡볕
풀도 약이 바짝 올라 하늘 향해
가시독침을 마구 쏘아대는 한낮
겁 없이 수룡골 산 꼴 베러 올라간 게 잘못이었다
까치독사를 잡아 목걸이처럼 두르고
노루와 늑대를 산 채로 찢어 뜯어먹는
불곰하고 같이 올라갔으니 뭐가 두려우랴
신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간 神舞山(신무산) 아래
천년 묵은 이무기 떨어져 죽은
龍沼(용소)는 깊고 바람은 달다
온갖 푸성귀나물 소박한 점심 물리고
귓불 늘어진 붉은 뱀할배 낮잠 깊이 들어
참매미도 숨을 고르는데
그 나이에 어찌나 청각이 뛰어나던지
140억 광년 떨어진 별들의 방구소리는 물론,
발정 난 별똥별 접붙이는 소리에도 사레가 들린다는데
하필 겨드랑이 근처에 산딸기 요염하게 영글었다
사마귀 되어
말벌이 되어
날개 접으며 혓바닥 들이대는데
크르릉, 독침에 쏘인 맑은 하늘이 딸꾹질을 하는 바람에
게 섰거라!
잠 깬 紅蛇(홍사)할배 벽력같은 호통소리에
낙엽송, 소나무, 참죽나무, 옻나무, 사시나무 떨듯
지게작대기 내던지고 억새밭 헤치고 달려나오는데
꼬리를 땅에 대고
수직으로 선 붉은 뱀이,
장딴지 굵은 할아부지 뱀이, 낭창낭창 회초리가 되어
허리채를 확
잡아채는 순간,
울컥, 지하 암반수 터진다
산산이 찢어지는 푸른 잎사귀들
떨어져 요동치는 물고기 떼
여름 한낮이 온통 땀범벅
몸살을 앓아 통째로 드러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