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리뷰
함께 더 많은 변화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이고운
춘천한샘고 보건교사. cutelygooun@naver.com
지난 6월 27일, 국민인수위원회가 주최하는 ‘광화문1번가’에서 성평등과 교육을 주제로 한 열린포럼에 참여하고 왔다. 춘천에서 5시 전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가는 길, 내 손에는 『창작과비평』이 들려 있었다. 창비의 시선이 멈추는 곳에서 아스라이 학부 때 경험들이 소환되었다. 동아리 활동에서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를 동아리 활동에서 만난 경험은, 지금 학교에서 만나는 국제결혼자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날 광화문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성별도 관심사도 제각각인 이들이 모였지만 종국에는 한가지 키워드로 집중됐다. ‘변화’였다. 우리 사회가 점차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거라는 희망을 사람들의 의식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면, 학교는 그러한 변화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 학교 밖의 청소년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시민 대다수는 공교육을 거쳐 성인이 된다. 인권을 바탕으로 성평등 및 다양성에 대한 토론이 교육과정 안에서 이뤄져야, 청소년이 타인에 대한 무관심·편견·혐오를 넘어 사회를 바꾸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촛불광장에서 분출한 청소년들의 참여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보호받아야 할 ‘예비 성인’이었던 청소년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장란에 실린 박원순의 글 「촛불이 바꾼 것과 바꿔야 할 것」에 더 눈길이 갔다. 시민들이 헌법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탄핵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박원순의 말대로 “이번 촛불집회의 성공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더없이 소중하다.” 촛불로 드러난 국민적 분노가 불평등에서 기인했다는 그의 분석에도 공감했다. 평등해야 마땅할 교육과 입시 영역에서 벌어진 최순실·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사건이 촛불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가 이번 촛불혁명의 종지부가 아니고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전환의 문을 여는 포석임을 알기에, 더욱더 “일상의 촛불”을 켜서 기존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가려진 너와 나의 권리를 찾아가야겠다.
차미령의 「너머의 퀴어」를 읽으면서, 몇년 전 친구의 성정체성 문제로 나와 상담했던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회적 혐오는 힘이 없는 약자에게, 지배적 위치가 아닌 소수에게 자행된다”라고 적힌 한줄의 문장보다 현실은 더 잔혹한 법이다. 아웃팅으로 따돌림까지 당한 그 친구와는 결국 이전 관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올해 종로에서 조우한 퀴어퍼레이드의 슬로건은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였다. 그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규범으로 치부된 것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요구’하는 것임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야 할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나의 수업과 학습목표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되었다. 알려진 대로 지난 2015년 발표된 국가수준의 성교육 표준화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은 누락되어 있다.
정영신의 「국가와 군사기지에 대항하는 공동체의 투쟁」은 국가폭력에 대항해온 공동체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성주주민들의 사드반대 투쟁을 기록한 글이다. 대도시 중심의 산업화 이후 국책사업이 벌어지는 장소로서 지방이 중요해지며, 지역 주민들이 좀더 직접적으로 국가와 충돌하고 있다는 진단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 정부의 사드 배치 과정은 모범적인 거버넌스·인권·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동안 개개인의 삶의 서사는 무시된 채 ‘국가 상황’과 ‘정책 판단’을 핑계로 공동체가 파괴된 사례는 얼마나 빈번했는가. 이번 사드 배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공동체가 상호 강화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와,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요즘 여름방학 때 이뤄질 천장 석면 철거공사 준비가 한창이다. 방학식날 아침 손을 다쳐서 온 20대의 앳된 인부는 우리 학교 졸업생이었다. 지혈을 위해 테이프를 칭칭 손가락에 감고 와서는 그래도 기술을 배워놓으니 좋다고 이야기했다. 4차산업혁명이니 그런 거 잘 모르지만 그래도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거 아니냐고, 건물에 콘센트를 설치하는 일은 기계가 절대 못할 거라며 집 떠나지 않고 돈 벌어 먹고살 수 있으니 좋다고 했다. 이곳에 와서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의자를 붙여놓고 자는 친구들을 보면서 1년만 버티고 떠나고 싶었는데, 그 속에서 사람을 만났다. 각자의 드라마를 찍으며 마음을 열어준 아이들로 인해 사회문제에도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창작과비평』이라는 계간지가 일상의 언어보다는 인문·사회과학적 언어가 많기에 읽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속 읽으며 창비의 글을 소재로 사람들과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사다주신 3500원짜리 창비아동문고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형, 사실은 무서워, 하지만 해낼 수 있어, 지금, 바로 지금 할 테야. 그러고 나면 다시는 겁나지 않겠지.”
우리도 모두 좀더 용기를 내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각자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고,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