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이원 李源

1968년 경기 화성 출생. 1992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사랑은 탄생하라』 등이 있음. oicce@daum.net

 

 

 

무미류(無尾類)

 

 

자꾸 편지 쓰고 싶어져요

당신은 뒤돌아보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자꾸 편지 써요 말 걸어요

당신을 만날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하고 있기에

 

당신은 모로 누워 있던 사람 등 너머에 세 사람

눈앞에 네 사람 당신은 눈을 감고 있던 사람

떠나왔던 곳을 가보는지 눈꺼풀이 불룩불룩해지던 사람

눈앞에 네 사람 등 뒤 그림자를 삼킨 문이 하나

옆으로 한동안 밀면 열리는 사실은 앞뒤로 열고 닫는

 

모로 누운 당신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이불 밖에 한 손

조금 아래 또 한 손 나란히

 

이제 모두 끝마쳤다

붙어버린 오른발과 왼발처럼

눈을 감고 있는 당신은 안까지 구겨진 곳이 없는

방금 쪄낸 하지 감자를 담고 있는 엄마 곁 얼굴

 

당신은 공들여 발음 하나를 만들던 중

나는 당신의 어깨를 눈으로 반만 쓸어보던 중

 

나무들은 나무들을 따라가는 중

 

네모난 종이와 육각형 연필을 들고 있으면

데려다줘요? 말하면 그렇게 해줘요?

 

오늘은 하늘보다 구름 더 많아요

아기고래 모양 앞발도 선명한

부풀어 오른 고양이 모양

고양이 눈 안은 전부 하늘

 

증명할 수 있어요

 

닿으면 안 보일 거예요

닿기 전까지 당신이에요

 

나 혼자 자꾸 편지 써요

당신 그림자 속에 서서

 

당신의 등에 편지 써요

나는 당신이 업은 흰 구름 고양이가 돼요

당신은 허공에 매달린 투명 버블 의자가 돼요

 

 

 

떠날 때 신는 구두

 

 

파문이 일어나는 물에

몸은 없고 몸의 형태는 있었다

물이 물을 가르며 솟구쳤다

번진 빛 속에는 빛뿐이었다

벼랑이 한겹 두겹 세겹

그리고 하늘이 막아서 있었다

아무것도 담지 않는다

그곳을 마음이라고 부르자

멀어지는 네가 울고 있는 우리를 달랬다

뛰어든 방향은 있고 깊이는 보이지 않았다

메아리를 받아 적는 귀들이

바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다시 노동을 시작해

삼각형을 누르면

닫힌 봉오리

열리면 꽃

떨어지는 추상

같은 하나가 다른 시간으로 불리듯

다리에서 다리를 빼내며 새들이

스스로 위태로워지듯

있었다 있었다 있었다 따라가는 화살표가 되었다

그림자들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구분하지 못하고

더 슬퍼 보이게 꼬리라도 기를 걸 그랬어

뒤로 돌아간 머리들은

횡단보도를 건넜고

물 밖으로 나가는 손잡이 옆에는

단추 모양 빛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네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짙은 파랑이 서서히 물을 덮고 있었고

있었고 있었고

떠날 때 신는 구두는 그대로 두고 갔다

 

 

--

* 떠날 때 신는 구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