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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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영 金建瑩

1982년 광주 출생. 2016년 『현대시』로 등단. silveroil@daum.net

 

 

 

일요일

사전(蛇傳) 7

 

 

천치창조

여기 선지자의 메모가 있다

 

① 야간의 주간화

② 휴일의 평일화

③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

 

기도합시다 R’Amen** 모든 사람이 이러한 평등을 겪는 그날까지

 

라면의 화자

벌을 받는다면 신 앞에서 받겠다 재미없는 농담에 대한 벌만을 면은 꼬여 있다 모든 면(麵)은 가까이에서 보면 꼬여 있지만 멀리서 보면 선(善)이다 얼굴이 꼬여 있지 않은 사람을 보면 기분이 꼬인다 당신은 왜 꼬여 있지 않습니까 벌겋게 남은 국물 같다 나는 쉽게 끓어오르고 사람의 배 속으로 사라진다

 

저 화상

배를 가르고 나온 애비는 흰 종이였다

수술이 끝나도 깨어날 줄을 몰랐다

아버지가 누운 침대가 자라고 있다 적출된 간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나머지가 이제야 태어난 것을 알았다 모든 일에 프로가 되라고 하셨지요 나의 장래희망은 프로크루스테스입니다 남은 평생 라면을 먹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짜파게티 요리사는 이렇게 말했다

라면은 요리가 아닙니다 불 앞에 선 나는 요리사가 아닙니다만 무엇인가를 끓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가 아닙니다 시는 죽었다 누군가 말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시 아닙니까 나는 이해라는 말이 웃깁니다 이해라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습니까 사람에게는 자유롭지 않을 자유도 있는 거 아닙니까 너와 내가 뛰놀 때면 두마리의 돼지를 떠올립니다 나는 신이 잘못 누른 버튼입니다 시는 죽었다 나는 신(身)을 끓이고 있다 이것이 신의 몸이라면…… 나는 속을 끓이면서 눌어붙은…… R’Amen

 

난 쟁의(爭議)가 쏘아올린 작은 봉(鳳)

비정규직이라고 합니다 일요일이니까 일을 합니다 용기(用器) 있는 자가 라면을 얻는다 용기도 없어 가방 속에 컵라면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신은 언제나 일요일에만 있다 신이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한다

 

범재와의 전쟁

눈이 올 때마다 생각한다 여기는 어쩌면 신의 재떨이가 아닐까 신은 가끔 여기다 침도 뱉는다 먹고 남은 컵라면 용기처럼 선한 사람들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말할 때 나는 기도한다 R’Amen 나를 키운 것은 페라리 바람이었다 신이 있다면 제일 먼저 떠든 아이로 불려나가 뺨을 맞겠다 당신이 끓인 라면이 이렇게 불었노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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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에 적힌 김기춘의 지시사항.

**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 신자들의 기도.

 

 

 

파롤의 크리스마스

사전(蛇傳) 8

 

 

놓을 때가 된 노을이 있다 여기는 신이 버린 주말농장 우리는 가난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놀았다 목마른 자가 음울을 판다 우리 매달리지는 않기로 했잖아요 너무 익어 무른 도원 바닥에 붉은 감이 떨어졌다 마침표가 발밑에 번져 밤이 왔다 언어의 정원 초과였다 말에 너무 많은 것이 타고 있었다 말 위에서 세상이 불타고 있었다 우리는 유리를 접고 밖으로 나가 구름을 만들며 그것을 구경했다 유리한 위치다 우리는 진실만을 말하면서 헤어진다 거짓말을 하면서 사랑했고 본드를 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유대뿐인데 그것만을 주지 않았다

다다른 말들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소똥의 부재가 두려웠다 길에 소가 없다니 침묵에도 청자가 필요하다니 이상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모두 같은 말입니다 같은 말을 했는데 우리는 왜 다른 곳을 보고 있습니까 그저 발화만 보고 있지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요 말은 노래가 아닌데 노래는 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까 음울한 개구리는 바닥에서 노래를 부른다 무거운 어둠에 눈을 뜰 수 없는 것을 자정작용(子正作用)이라고 부릅니까 이것은 Sorry 없는 아우성 절반이 사라지는 시간을 반사작용(半死作用)이라고 이릅니까 말이 시가 될 때까지 개구리가 올챙이가 될 때까지 말이 씨가 될 때까지 더듬어야 한다

다 다른 말들

 

메멘토 모리[森] 숲을 기억해 등 푸른 선생은 무덤이지 우리는 모두 수포로 돌아갈 거야 닫힌 유리창에 찔리기도 할 거야 금 간 경(鏡)이 단단하게 흩뿌려져 있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왜 다 끝나고 나서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가요 그 말에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겨울 가지처럼 오직 빈손으로만 얼굴을 만질 수 있다 이리 오너라 업보 놀자 습속에도 바람이 있습니까 습(習)의 끝에 어른거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습(濕)한 말을 하는 귀신들에게만 들려주었던 산책과 죽은 책들의 갈피를 생각하면서 아침에 도착해야 한다 마지막 장은 우기(雨期)기로 했습니다 발자국이 언어가 될 수 있습니까 책은 숯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다 닳은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