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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서윤후 徐潤厚
1990년 전북 정읍 출생. 2009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휴가저택』 등이 있음. syhcompany@naver.com
모모제인(某某諸人)
천국에서 허탕 친 사람들이 부엌으로 돌아와
식은 국을 다시 데울 때
나는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두리번거리는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식빵과 가스 밸브와 환기구의 구도를 완성하는
불개미의 촘촘한 행렬은
시차 없이 모든 시간에 불쑥 관여하였다
들끓는 것들 중 가장 말수가 적다는 것을 배울 무렵
누가 올 거야, 얌전히 있어
나는 그런 말에 눈동자가 묶여 있었다
방 안에 들어가 바늘로 눈알을 긁어놓은
사진 속 사람들을 세어보았다
긴 밤이 나를 지루해할 때까지
얼굴이 얽은 곰보 청년은
우리 집 담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다
창공엔 표정 없이 새파랗게 멍든 얼굴
신은 자신이 떨어뜨린 눈, 코, 입이
어디에 붙어서 사는지 그런 구경이나 해보려고
날씨를 준 것은 아닐까
거울 앞에서 앞머리만 자르다 가버린 여름이 있어
보풀만 떼다 끝나버린 겨울도 있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는 어울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얼굴로 만나서
같은 표정으로 헤어지는 사이가 된다
집에 누군가가 떠날 때까지
바깥을 서성거렸다
재재한 아이들이 줄지어 밖에 나와 있었다
잠깐만 나가 있어, 그 말에 풀려나서는
불개미들처럼 천적이 없다는 듯
빨개진 볼로 어둠을 데우는
나의 불쏘시개
나의 친구들
하룻밤
이혼한 아버지는 개밥 주는 일을 잊어서 만난 지 십오분 만에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먹으려고 불판 가장자리에 굽던 갈비뼈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는 차를 가지고 너무 먼 곳에 와 있었다 아버지가 친구와 통화할 적에 자신이 고향에 온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말했다 엉망이 된 자들이 모두 돌아오는 고향, 그곳은 내가 태어났으나 엿듣기만 하는 곳이기도 했다 기억 한줌 없이 아프게 된 창밖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몇번 내릴 곳을 놓치고는 원하지 않는 곳에서 차가 멈춰 섰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기차역까지 걸어가 승강장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앉아만 있어도 길어지는 벤치였다 문단속된 가방의 지퍼만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챙겨온 것이 너무나도 많은 작은 가방에서 당장 꺼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방울 맺힌 세면도구를 보며 눈동자를 씻을 때, 도착할 때쯤엔 잘 도착했냐는 연락이 올 것이다 잘 지낼 무렵이면 잘 지내냐는 연락이 올 것이다 여름은 매번 지독한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저녁에는 쌀쌀해질 것 같아서 챙겨온 외투를 꺼내어 허리춤에 질끈 묶었다 순간이 영원하다는 말을 잠깐 이해할 뻔했다 빗발치는 햇빛과 더는 응답할 수 없는 피부 그 사이의 시간은 가렵기만 했다 땀에 찬 손목시계를 애써 비틀며, 철도 위로 들어선 열차를 보았다 구름은 사람들의 손부채질 속에서 날개를 찾아다녔다 막 구겨지기 시작한 차표를 건네고 기차에 올라탈 때 승무원이 내 가방을 붙들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얘야, 이건 내일 출발하는 기차표야…… 하룻밤 공기를 다 들이마신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