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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조해주
1993년 서울 출생.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등이 있음.
johaeju93@daum.net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를 빤히 바라본다
무언가 생각날 것 같아서
너무 빤히 바라보면
흐릿해진다
모르겠어
뺨에 묻은 얼룩을 지워주려던 것뿐인데
트럭이 잔상을 남기며 길어진다
페인트는 머리 아픈 냄새
노랑 파랑 주황
다른 색채여도 같은 냄새
어두운 대로변에서 그는 한입 베어 문 사과였다가
사과였다가
심 부분만 남은 사과였다가
빛이 지나갈 때까지 그는 가만히 서 있다
무슨 생각 해?
그는 내 눈앞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흔들어 보인다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머리 위로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
나는 수많은 입을 천천히 움직인 셈이다
아무도 모르게
자갈이 자갈밭으로 돌아가는 밤
그중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모래는 모래 냄새
물에게도 물 냄새
제가 보이세요?
주유소로부터 멀리 도로 끝에서 신호가 깜빡이고 있다
가까운 거리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이용한다.
노란색 택시에 올라타면서
나는 소맷자락이 문틈에 끼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백미러를 통해 나를 보면서
양화대교를 건너겠다고 말하고
택시는 양화대교를 건너지 않는 동안
그는 색깔에 대해 변명한다. 택시가 노란색인 이유는 카카오 택시여서가 아니고 협동조합 택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내게 합정에는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묻는다.
내가 한국어능력시험 때문에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더니
자기도 대학시절에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불문학은 창신동에서 편의점을 하고
영문학은 목사님이 되어 일년에 반 정도는 더운 나라로 봉사하러 간다고 한다.
문과대학 동기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한다.
대단하시네요,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가 멈춰 있는 것인지 움직이는 것인지 생각하다가
나는 턱을 괴던 손을 거두고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낸다.
불빛을 앞두고 차가 멈추어 선다.
사거리를 지날 때 풍경은 답답함을 오래 견디게 된다.
택시가 사거리를 지나가지 않는 동안
굳이
말은 먼 길을 빙 돌아가고 있고
볼펜이 의자 밑으로 굴러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순간 나의 팔이 아주 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생각일 뿐
손이 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