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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열린책들 2020

교육의 변방, 변방의 교육

 

 

성은애 成銀愛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finch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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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대학에서 19세기 미국의 조합주의에 관련된 역사학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중반의 백인여성. 이런 인물의 자서전에 뭐 그리 신기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라는 성급한 의심은 잠시 접어두자. 『배움의 발견』(Educated, 2018, 김희정 옮김)의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ver)는 아이다호주 산골에 사는 근본주의 모르몬교 신자, 아니 거의 ‘환자’ 수준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7남매의 막내딸이다. 가명으로 등장하는 저자의 부모는 근대국가의 핵심인 교육, 의료, 시민권의 시스템에서 탈출하여 종말에 대비해 생존을 준비해야 한다는 교리, 혹은 삶의 원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이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근대적 시스템에서 벗어난 자연친화적인 ‘대안적 삶’에 동경을 품고 있는 독자라면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으며 그 환상이 산산조각 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대안양육 3종 세트’, 즉 가정 분만, 출생신고 누락, 공교육 거부 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양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섭생과 의료, 교육과 생계 분야에서 이 형제자매들이 거의 ‘아동학대’를 받았다는 데에 있다. 부모는 세상이 다 파괴되어도 생존할 수 있는 식량(복숭아조림)을 비축하고, 정부군과 대치할 총기와 탄약을 마련하느라 초조하게 바쁘다. 어머니는 동네 산파 일을 하고 별 효과도 없는 치료용 허브오일을 만들면서 의료 시스템에 도전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나중에는 이 ‘대안의료’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이들은 보험도 안전벨트도 없는 자동차로 이동하다가 사고가 나서 중상을 입어도, 아버지를 도와 폐철 모으는 일을 하다가 큰 부상을 당해도 결코 병원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가지 못한다. 1부에서는 현대 미국사회에 이런 ‘변방’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괴이하고 기행적인 이들의 삶이 흥미롭게 묘사된다.

대학에 진학한 오빠 한명이 먼저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저자는 그 오빠를 따라간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안내자인 타일러 오빠에게 헌정된다. 저자는 독학으로 대입자격시험을 준비하고, ‘홈스쿨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입학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장발장과 나뽈레옹 중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 몰랐을 정도로 ‘속세’의 상식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그가 대학교육에 적응하고 결국 역사학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2부는 ‘변방’의 특이한 삶을 묘사한 1부 못지않게 모험소설 같다.

이렇게 보면 이건 ‘흙수저’ 산골소녀가 역경을 뚫고 역사학자가 되기까지의 성공서사, 혹은 ‘구원서사’에 기반을 둔 21세기형 ‘아메리칸 드림’처럼 보인다. 물론 그런 관점에서 봐도 꽤 재미있다. 그러나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전통이라는 이름의 고집과, 신앙이라는 이름의 광신, 훈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가차 없이 폭로하는 주인공이 미국 외부에서 유입된 난민이나 망명자 등 흔히 떠올리는 ‘소수자’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의 상징인 미국 내부에서 자생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 백인가족 공동체가 보여주는 폐쇄성과 극우적 편견, 광신이 결국 미국의 ‘줄기세포’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교육이 주인공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알려주는 구원의 계기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학이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요즘 보기 드문 ‘야생’에서 성장한 저자의 눈에는 학교 자체가 신기할 뿐이고, 게다가 그의 독특한 성장과정이 대학생활에 딱히 이점으로 작용하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딸의 ‘성공’을 두고 왜 ‘홈스쿨링이 비결’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비난하지만,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온갖 위험한 곳에서 노동해야 했던 성장과정이 주목받는 경우란 높은 곳에서 다른 이들과 달리 떨지 않고 걸을 때 정도랄까. 저자는 그것이 딱히 학자의 자질은 아니지 않느냐며 가볍게 넘김으로써, 부모의 양육이 ‘대안교육’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저자의 성장과정은 현대 미국사회에 실존하는 수많은 ‘변방들’의 실상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결국 이것은 강인하고 당찬 소녀가 ‘악마에 사로잡힌 미친년’이라는 가족의 낙인을 무릅쓰고 자기만의 삶을 개척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족의 전통이 개인의 성장과 독립을 폭력적으로 가로막는 이야기이고, 가족에 대한 도리와 자신에 대한 도리, 혹은 가족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야기다. 이 자서전이 독특한 또다른 이유는, 저자를 학대한 과거가 여전히 강력한 현재로 살아남아 있고, 따라서 그가 걸어온 ‘배움’과 투쟁의 여정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형제자매 중 교육받은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네명은 지금도 부모의 폭력적인 울타리 안에서 산다. 역사학자인 저자가 자신을 양육한 전통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정리했을까, 앞으로 또 어떻게 정리해나갈 것인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저자는 ‘대안’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공동체에서 태어나, 그 폭력적인 곳을 탈출하여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 경우로서, 두 공간의 차이가 ‘교육’에 있다고 본다. 즉 삶에서 무엇을 교육받는가가 가장 중요하며, 대안적 공동체가 국가 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것은 더이상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책들을 읽고 에세이를 적을 뿐인 ‘보통의’ 대학교육이 주인공의 해방과 자유로운 성장을 북돋아주는 과정은, 교육이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 교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나아가 왜 모든 교육은 언제나 ‘대안교육’이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광신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 자신의 상태를 좀더 큰 맥락에 놓고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것, 어떤 지식도 최종적인 결론을 내려줄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나의 자유와 동시에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결국엔 이런 것들이 배움의 목적이지 않을까. 과연 내가 받은 (고등)교육은 책 제목처럼 나를 ‘배운(educated)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는지, 나는 늘 배우며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