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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송진권 宋鎭權
1970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등이 있음.
likearoad@hanmail.net
우려내야
머위나 고들빼기 씀바귀는
그냥 먹으려면 너무 써서 못 먹지
쓴맛이 아주 다 빠지지는 않게 우려내야 먹지
쌉싸름하니 남아서
입맛이 없어 겨우내 까부라졌던 사람을
거뜬히 밥 한그릇 뚝딱 먹여 들로 내보내고
그 아내는 나물 치댄 이남박에 밥 비벼 먹고
뒤를 따라가게 하지 않는가
봄밤도 맞춤하게 우려내야 앵두며 살구꽃은 피고
짝 찾는 새들은 갓밝이에 울며 날고
연두로 불쑥불쑥 풀들은 돋아나지 않는가
새벽은 우러나서 노랑나비 흰나비 쌍쌍 나는 대낮을 만들고
대낮은 또 우러나서 조팝꽃 으깨지는 밤은 오고
보름달은 우러나서 물 가둔 논마다 월인천강지곡을 부르고
번번하게 달빛은 우러나서 찰럼하게
논둑에 넘실대지 않는가
소쩍새 울음소린 또 우러나서
온 산에 두견화를 피우고
나는 또 우러나서 이제 쉰이 넘고
쉰두해 맞는 봄에 머위나물 얹어 밥 먹으며
이제 누름돌처럼 처억 세월을 얹어두고
쓴맛이나 더 우려내야 할랑가벼
오박골 골짝 물의 말씀
가릅재 날망에서 오리나무며 낙엽송 붉나무 노간주나무 잔대며 칡넝쿨 으름덩굴 뿌렝이 쓰다듬으며 흘러내린 나는 여기 미나리꽝에서 미나리나 키우다가 굴 밖에 나와 웅크린 알 슬은 가재의 꼬랭이나 쓰다듬다가 돌 위에 기어오른 우렁이의 이끼도 닦아내다가 삼복 중 개똥불이 흩으며 목욕 나온 느 어머이와 느 큰어머이의 부른 배도 쓰다듬으며 그 배 속에 든 너와 네 사촌도 어루만졌느니라 쏟아지는 달빛을 한 바소쿠리 짊어지고 흘러가다가 알 낳으러 모새방으로 올라오는 자라의 기척에도 조각조각 쓸려나가서 못골 저수지 말풀꽃에 앉은 검물잠자리 날개 아래에도 그득하니 고였다가 팽팽하게 울음주머니 부푼 참개구리의 등을 타고 흘러 갯골을 지나고 행상집거리 삼정골 밤숯골의 논과 밭을 지나 오백거리 어름에서 이름난 강을 만나 나 생겨나온 데를 다 담으며 가린여울 구룡촌 곰나루 쪽으로 굼실굼실 흘렀느니라 그래 이제 물을 거슬러온 초로의 사내가 그때 그 복중의 아이인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물봉숭아 비친 웅덩이에 쪼그려 앉아서 가재나 잡겠다고 돌멩이 뒤집을 때 물까마귀 같았을 적 얼굴이 아직은 남아서 너인 줄 알아보겠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