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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현우 鄭顕友
1986년 경기 평택 출생.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등이 있음.
cristmass@naver.com
스콜1
옥상에서 유리를 껴안고 뛰어내리는
사람,
너는 이마에 빗물을 맞고 서 있다,
인간이 가진 울음을 모두 흘릴 수 없다는 것을
무심히 뛰어내린 철로 위에서 괴로움을 나눠도 좋을 너를
그곳에 오래도록 세워두고 돌아온다.
우리는 거대한 침엽수 아래
빗소리를 듣는다.
잠기기만을 기다리는 마을과
수몰하는 나의 죄를,
단 한번 수거해가는 감긴 두 눈을
신의 손이라 아름답다고 말하면
어떻게든 이해가 되는 것,
기도하는 만큼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것,
왜 울고 난 뒤 두 눈은 따스할까
그토록 뜨거운 심장을 가져본 적이 있다고 믿기 위해
늘, 그 자리 없는 것들은 빗소리가 난다. 먼 구름 아래, 검은 빗물, 박수 소리 같은 것들, 소리가 나지 않는 것과 소리가 나는 것으로 세상은 나뉘니까. 소리 없이 사람이 가고, 사랑하는 이들은 간밤의 꿈을 엎지른다. 언 손을 녹이던 가장 추운 겨울은 짧았다. 아, 두 뺨을 감싸며 빗속을 걸어가던 밤이여, 잘 가,라는 말 대신 차오르고 마는 강수, 슬픔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네 눈빛을 하고, 빈 의자에 앉아 창가를 보는 사람이 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모든 슬픔은 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까, 모든 비는, 두 눈은,
너는,
이제 집에 가자,
빗속에 마주 서면 아무 말이 없고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물끄러미 울고 있는 너를 본 것 같기도 한데,
겨울 창가는 겨울 볕이 잘 든다.
몫
살아남은 자들은 더 잘 살기 위해, 더 안전해지기 위해
그들의 죽음을 해석한다.
—「무브 투 헤븐」
눈꺼풀은 꿈의 두께와 같다.
깜빡이면 끝이겠지만
식탁 위, 유리병에 잠긴 포도알을
푸른 눈동자로 건져 올린다.
금방 태어날 것 같은 가재 알,
깨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잠의 몫을 생각한다,
나는 눈보라 치는 너의 숲으로 들어간다.
두 손 가득 흰 눈을 퍼 올리고
아른거리는 것을 망설인다.
손바닥으로 햇살을 가리면 울음이 만져진다.
사람이 죽는 모습은,
크로키,
창은 열려 있고
흰 문조떼가 머리를 이유 없이 부딪친다.
목을 가누지 못하는 것들은 슬프지,
무릎을 꿇고 겸손히 둘러앉으면
서서히 금이 가는 유리창,
폭설, 가지런한 숲을 지나는 목소리로
돌림노래를 부른다.
너를 설명할 수 없어,
무게 없는 꿈을 저울에 달면 시계가 돌지 않는다.
빛에 슨 저 녹은 누구의 몫일까
수건돌리기,
누가 오고 갔는지 모른 체,
나는 없는 방향에서
목숨을 훔치는 술래찾기.
원을 그리는 숲 위로 기린이 솟고
목을 건 꽃들이 부러트린다.
마음은 운 흔적 위로 멍든 빛깔에 가깝고
눈물은 내가 나를 찌르지 못하는 무채색 둥근 몫,
꿈의 결말은
내가 깨트리고 나오는 유리감옥,
목 없는 기수들이 버리고 달리는
창,
속눈썹은 꿈 바깥을 뜨고
영혼은 손이 베이지 않는 시간을 딛고
주검은 한 손으로 들린다.
기울어지는 왼손에서
이파리가 비스듬히 잎맥을 글썽인다,
오른 손금 끝,
빛은 한올씩 풀릴 뿐.
투명해지기 위해 목을
꿈속에 넣다보면
어느새 늘어나 있는 긴 옷소매.
—
- 기존 커튼콜과는 달리 특정한 장면을 시연하고 관객이 촬영할 수 있게 하는 ‘스페셜 커튼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