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송재학 宋在學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6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얼음시집』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기억들』 『진흙 얼굴』 『내간체를 얻다』 『날짜들』 『검은색』 『슬프다 풀 끗혜 이슬』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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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니까 아프진 않지만

어떤 칼날은 나의 걱정스러운 비밀이지만

통증은 없었지 우울도 아니었어 살과 피와 중력이라는 친밀감, 칼날은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생각, 새떼가 먹물처럼 비산하는 게 아니라 두통이 새의 발자국을 준비하였다는 꿈, 양날의 칼을 달래다가 칼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순간 내가 변절자이며 눈보라라는 짐작, 어젯밤과 다르지 않아 그저께 밤도 이러했지 칼을 만진 이후의 모든 이상한 밤들

칼을 튕겨보니 맑은 소리가 내 앞을 씻었다

설마 하더니 나를 찌른 칼, 손잡이의 두억시니 무늬가 미열을 삼키다 뱉으면서 하얗게 정전이 되기까지 느리고 생생했어 발끝에서 정수리까지 온몸이 기계처럼 따로따로 분리되면서 진저리 쳤던 거 같아 후회의 발자국은 직각이다

처음 만난 듯한 분홍 꽃잎에 휩쓸리는 후회

어제 내가 만진 하루와 나를 만진 하루는 같은 울음이었어

두 손으로 칼을 잡았더니 정면이었다 뼈의 수위(水位)와 부딪치는 칼, 늘 어지럽던 육신과 권태를 으드득 천개의 생각으로 나누면 통쾌해질까 칼끝이 나를 통과하여 눈동자의 가장 뒤쪽에 도달하면 지상의 소풍¹이 끝나는 걸까

아프지 않으니까 내가 칼이 되어 나를 자꾸 찌르고 있는 글썽이는 꿈과 칼을 가지게 되었다

푸른색이 되었다

저녁이 바다며 하늘이며

지루한

회색을 이끌고 지나간다

바다를 퍼 담듯이

각도를 기울이니까

휴대폰 화면에

맙소사,

푸른색이 넘실거린다

회색이며 바다는

다정한 피를 감추었던 거야

걸어다니는 방황하던 감정이었어

푸른색을 만나는 일정은

나에게도 비밀이 있다는 것

저녁이면서 해안이던

섭씨 20도처럼

푸른색에 스며든 너를 찾는다

내가 너를 바라볼 때

너에게만 있던 푸른빛에게

고백하고픈 마음이 떠올랐다

무릎을 꿇고

나는 무엇인가 사랑하고 있는 거야

내 하루를 무조건 포옹하는 푸르름이라는 숨결

내가 어떤 병을 앓았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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