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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지연 金志姸
2018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 장편소설 『빨간 모자』 등이 있음.
daltree@gmail.com
먼바다 쪽으로
1
어느날 해변으로 조개들이 마구 밀려왔다. 종희는 투숙객이 빠져나간 2층 객실 베란다에서 이불을 털다가 해변의 사람들이 자주 허리를 굽히는 것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아챘다. 7월이 시작되자 더위는 정점을 찍었다.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졌다. 종희는 1층에서 청소를 하고 있을 현태에게 전화를 걸어 해변에 나가보라고 했다. 현태는 빈 양파망 하나를 들고 맨발로 걸어나가서는 조개로 망을 가득 채워 돌아왔다. 잡아 온 조개는 한나절 동안 잘 해감한 다음에 국을 끓였다. 그래도 어떤 것은 모래가 많이 씹혀서 뱉어내야만 했다.
그날 잠들기 전에 이불 속에서 몇차례 몸을 뒤치던 현태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끓인 조개 이름이 뭐였지?” 종희는 눈을 깜박이며 조개의 외양을 떠올려보았다. 보름달처럼 둥근데다 껍데기가 매끈한 하얀 조개였다. 곰곰 생각한 끝에도 겨우 “글쎄, 뭐였을까” 하고 말할 뿐이었다. 꾸준히 챙겨 먹는 수면제의 약발 때문인지 현태는 금세 곯아떨어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종희가 현태의 베개를 살짝 잡아당기자 잠깐 코 고는 소리가 멎었다. 창으로 승용차의 후미등인 듯한 붉은빛이 들어와 천장을 밝혔다가 사라졌다. 종희는 눈을 깜박이며 그 흔적을 좇다가 이내 잠들었다.
다음 날 종희는 조개껍데기만 모아놓은 비닐봉지에서 하나를 꺼내 싱크대에 올려놓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번 삶은 뒤라 그런지 색이 좀 바래 보여 하얗게 보정을 해서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어제 해변에서 잡은 것인데 이름이 궁금합니다……
“어젯밤에 누가 왔었나? 잠결에 차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샤워를 하고 나온 현태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물었다. 종희는 지난밤 천장이 붉어졌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맞아, 차 불빛이 지나가는 걸 봤어.”
“뭐? 근데 왜 말 안 했어?”
“자는 사람을 뭐 하러 깨워. 잘못 왔나보다 했지.”
“헷갈리기 쉬운 길은 아니잖아.”
“그래도 밤이었으니까 헷갈렸을 수도 있지. 아니면 기분 내려고 달리다가 여기가 막다른 길인지도 모르고 들어왔을 수도 있고.”
현태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두어차례 끄덕였다. 종희는 그것이 충분한 동의의 표현이라고 여겼다.
“우리 펜션 옮길까?”
“왜? 여기 괜찮잖아. 사장도 멀리 살고.”
“손님이 거의 없잖아. 지난달 월급도 보름이나 늦게 들어왔는데 이번 달은 또 어떨지.”
종희는 한가해서 좋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현태가 두려워하는 것은 늦어지는 월급이 아니라 지난밤의 방문자였다. 종희 생각엔 길을 잘못 든 멍청이일 뿐이었다.
“그래도 여름까지는 있어야지. 당장 옮길 데를 어디서 찾아? 천천히 생각해보자.”
현태는 대답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종희는 현태가 대답이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말이 다 옳았고, 현태의 의심은 불안 때문에 충동적으로 일어난 감정일 뿐이었다. 한동안 잠잠하다 다시 고개를 쳐든 것 같았다. 그걸 자신의 한두마디 말로 잠재울 수는 없었다.
“자기야, 나가서 고기랑 숯 사와. 오늘 예약 있잖아.”
현태는 알았다고 말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덜 말린 채로 방을 나갔다. 잠시 후 자동차가 자갈이 깔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현태가 나간 다음 종희는 청소를 시작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2층짜리 펜션에서 지내고 있었다. 1층 입구에 있는 방이 두 사람의 거처였다. 방은 다른 객실보다 작았지만 바다 쪽으로 딴 건물이 없어 탁 트인 전망이 좋았다. 손님이 없는 날에는 빈 객실에서 자기도 했다.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여름 내 펜션 안팎을 관리하는 것이 두 사람의 일이었다. 서울살이에 시달리다 요양 삼아 내려온 시골에서 무료하게 지내다 소일이라도 하자 싶어 구한 자리였다. 객실은 모두 여섯개였고 잔디마당에 바비큐용으로 만들어놓은 야외테이블이 있었다. 사장은 다른 도시에 살았다. 처음 면접을 볼 때를 빼고는 찾아오지도 않았다. 도시의 끄트머리 해변에 있는 곳이라 가구 수도 적었고 낚시꾼이나 여행객이 아니면 찾는 사람도 없었다. 손님이 괴롭히는 일이 없으면 힘들 일이 없었다. 현태는 그마저도 좋아했다. 사장님, 하고 부르며 귀찮게 구는 것이나 밤새도록 떠들어대는 것도 듣기 좋다고 했다. 와서 고기를 좀 구워달라, 방에 벌레가 들어왔는데 좀 잡아달라, 근처에 편의점도 없는데 콘돔을 빌려달라, 아침에 깨워달라, 요금을 깎아달라, 터미널까지 태워달라…… 끝없는 요구사항에도 흔쾌히 응했다. 그런 것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종희가 말려도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다는 게 이유였다. 가만 보니 몸을 바삐 움직여 잡생각을 잊으려는 것 같아서 종희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후로는 종희도 현태를 부리는 일에 익숙해졌다. 장을 보거나 객실 청소를 하는 일, 가끔은 해변에 나가 조개를 주워 오는 일도 시켰다. 그때마다 현태는 군말 없이 따랐다.
종희는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젖은 수건을 집어 들어 세탁 바구니에 넣었다. 현태가 머리를 말리다 그대로 두고 간 것 같았다. 수건 때문에 이불도 조금 축축해져서 이불도 베란다에 널었다. 베란다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잠깐 바다를 보았다. 구름 없이 맑아 물비늘이 번쩍이는 날이었다.
정오가 되기 전 손님이 왔다. 베란다에서 잠깐 졸았던 종희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입실 시각은 한시였지만 일찌감치 도착한 예약손님일 수도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오는 사람은 여태 한번도 없었다.
“방 있을까요?”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검은 등산복 차림이었다. 파란색 등산모자에 썬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펜션 이름은 비쥬였다. 보석 종류로 객실 이름을 붙인 것이며 더블베드에 캐노피로 꾸며놓은 모양새가 누가 봐도 연인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는 이유로 요금도 비싼 편이었다. 이런 방에 굳이 혼자 묵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혼자신가요?”
“네.”
“저희가 다 커플실이라서요. 혼자 오셨다고 해도 제일 저렴한 방이 지금 일박에 십칠만원이거든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휴가를 얻어서 낚시나 하려고 왔는데, 다 방이 없네요. 아직 성수기는 아니니까 안심하고 있었거든요. 비싸도 어쩔 수 없죠.”
종희는 키를 들고 나와 예약된 에메랄드룸을 뺀 나머지 방들을,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토파즈, 오팔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가장 작은 방은 오팔이라고 알려주었는데도 남자는 나머지 방들도 모두 보기를 원했다.
“사흘쯤…… 있을까 하거든요. 이왕이면 마음에 드는 방에서 있고 싶네요.”
종희는 사흘치 숙박비를 사장 모르게 현금으로 챙길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는 내심 비싼 방을 선택했으면 했다. 조금 크다는 것 빼고는 별 특색도 없이 비싸기만 해서 잘 나가지 않는 방이었다.
“오랜만에 휴가신가봐요. 삼일 묵으신다니까 현금으로 하시면 오만원 빼드릴게요.”
“음.”
남자는 모든 방을 다 둘러보고는 웃으면서 아무래도 가격이 부담이 된다며 좀더 둘러보고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종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번외의 수입이 날아간 것이 아쉬웠지만 사장을 속이는 짓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남자는 차를 타고 펜션을 떠나기 전에 배웅하는 종희 앞에 잠깐 멈춰서 차창을 내리고 물었다.
“그런데 여기 혼자 계세요?”
“네? 아뇨, 남편이랑요.”
“아, 역시 그렇군요.”
남자는 창문을 닫고 떠났다. 종희는 검은 왜건의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장을 보러 나간 현태는 점심이 다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전화를 할까 했으나 마트가 있는 시내까지는 가는 데만도 한시간이었으므로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현태보다 예약손님이 먼저 왔고 종희는 두 사람을 에메랄드룸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짐을 부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푸른 등산모자의 남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차라리 시내의 모텔 쪽을 택한 모양이라고 종희는 생각했다. 분위기를 잡을 것도 아니고 차도 있으니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태와는 저녁까지 연락이 닿지 않아 숙소로 돌아온 연인이 저녁에 바비큐를 준비해달라고 했을 때 종희는 수없이 고개를 조아려야만 했다.
“어떤 사람이 계속 쫓아왔어. 따돌리느라 늦었어.”
자정 무렵에 도착한 현태는 그렇게 변명했다.
“누가 쫓아왔다고?”
“마트에서 나올 때부터 계속 따라왔어. 아냐, 그전부터 따라왔는지도 모르지. 마트에서부터 누가 계속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뭐 하러 널 쫓아다녀?”
“몰라서 물어? 죽이려는 거잖아.”
현태는 트렁크에서 짐을 다 꺼낸 후 문을 세게 쾅 닫고는 종희를 쏘아보았다. 아직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듯 주위를 힐끔거리며 어깨를 웅크리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나를 죽이려고 찾아온 거라고.”
현태는 사 온 고기를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여름에 온종일 실온에 있었다며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종희는 에어컨을 켠 자동차 안에, 그것도 아이스박스에 담겨 있었으므로 괜찮을 거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이느라 한시가 지나서야 침대에 누웠다. 펜션 앞에 켜둔 조명이 방 안으로 들어와 누렇고 둥근 무늬를 만들었다. 파도가 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소리를 듣고 있으면 잠이 잘 온다고 종희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외의 다른 것들이 모두 보통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때라야 가능했다. 현태가 불쑥 말을 걸었다.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손님으로 왔을지도 몰라. 맞아. 손님으로 올 수도 있다는 거, 그걸 왜 몰랐을까? 그럴 수도 있잖아. 이미 다녀갔을지도 몰라.”
종희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대꾸했다.
“말이 되는 소릴 해.”
“어쩌면 벌써 찾아냈을 거야. 그래, 이렇게 시골에서 사는 걸 알아낸 게 분명해.”
“찾았으면, 가만뒀겠어?”
“두고 보는지도 모르지. 그래,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간을 보는 중일 거야.”
“그럼 어떻게 할까? 다른 데로 옮기고 싶어?”
종희는 현태를 돌아보았다. 배꼽 언저리에 손을 모으고 가지런히 누운 현태는 눈을 감고 있으니 꼭 잠든 사람 같았다. 그러나 가만가만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기에도 늦었어.”
“그럼 어쩌자고.”
종희가 체념한 듯 묻자 현태는 눈을 뜨고 종희를 돌아보았다.
“어쩌자는 게 아니야.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자는 거지.”
“뭐?”
현태는 더는 대답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 눈을 감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종희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베란다로 갔다. 난간을 붙들고 서서 바다를 보았다.
소금기를 머금은 축축하고 시원한 바람이 바다 쪽에서 불어왔다. 바다 위로 달빛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달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바다 위 파도를 타고 흔들리는 저 은색 빛은 달빛이 아닌 것일까. 종희는 한참 달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현태는 잠들어 있었다. 꾹 다물었던 입이 헤벌어지고 가슴팍이 고르게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침대 옆 콘솔에는 빈 물컵과 약봉지가 놓여 있었다.
현태의 불안증세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종희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애초에 거짓말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아니, 그건 농담이었다. 매일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현태에게, 거실에서 쿵쿵 뛰며 게임을 하는 현태에게, 주말이면 기타를 치는 현태에게, 아파트 사람들이 다 우릴 싫어해, 특히 아랫집 남자가 우릴 죽일 거야,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그때는 분명 현태도 코웃음을 쳤었다. 식후와 샤워 후, 잠들기 전의 담배와 한시간의 게임, 막무가내로 치는 기타연주가 자기 삶의 낙이라고 현태는 말했다. 그것도 못하면 뭐 하러 살어? 하지만 몇차례의 항의전화와 방문 이후로 횟수를 줄였다. 담배는 밖에 나가서 피웠다. 하지만 주민투표로 아파트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바뀐 다음에는 다시 화장실에서 피우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환풍기를 켜놓고 피우기도 했다. 게임은 움직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로 바꿨다. 그것들은 현태의 취향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았다. 한번씩 몸을 움직이는 게임을 했고 그때마다 항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웃들이 있었다. 애도 없는 집에서 왜 이렇게 쿵쾅거립니까? 말로 끝나는 정도였다. 그리고 옆집 노인이 죽었다. 원래 병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현태 생각은 달랐다. 최초 발견자가 아랫집 남자인 것이 수상하다고 했다.
일요일 정오에 아랫집 남자는 노인의 현관을 두드렸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거실에 쓰러진 노인을 발견하고 심폐소생을 시도했다가 119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경찰에서도 사망시점을 아랫집 남자가 노인을 발견한 때보다 네다섯시간 이전으로 추정했다. 아랫집 남자는 그저 열어둔 베란다 창문으로 베갯잇 하나가 들어와 떨어져 있었는데 그게 노인의 것은 아닐까 물으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의 CCTV에도 남자가 손에 베갯잇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바로 윗집이 아닌 대각선 윗집부터 찾아갔느냐는 질문에는 현태네와는 평소 층간소음으로 사이가 좋지 않아 내심 노인의 것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종희는 그 모든 이야기를 반상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들었고 고스란히 현태에게 전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남자와 만난 것도 종희였다. 남자는 이런 일로 용의선상에 오른 것이 어이없다고 했다. 남자는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살인을 할 사람은 못 된다면서 혹시 현태가 죽는다고 해도 자긴 범인이 아닐 거라며 웃었다.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건가요? 종희가 불쾌해하자 남자는 농담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고 말하며 종희의 팔꿈치를 툭 쳤다. 종희는 그 일도 현태에게 남김없이 말했다.
현태는 그때만 해도 아랫집 남자가 정말 자길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 다음에는 조금씩 의심이 싹트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모든 사람들이 자길 죽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권고사직을 당한 후 그 망상은 더 심해졌다. 종희가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새 일자리를 구해보라고 했지만 현태는 점점 더 불안해했다. 내일이라도 누가 자길 죽일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불안의 이유였다. 네가 조용히만 살면 아무도 널 안 죽여, 종희는 그런 말로 달랬다. 현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희가 야근을 하고 돌아온 어느날 현태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잠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종희가 씻고 방으로 들어오자 현태는 기다렸다는 듯 종희에게 말을 걸었다. 죽은 듯이 조용히, 그렇게 살 거면 뭣 하러 살어.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했지만 현태가 강하게 거부했다. 철없는 투정을 부리는 것만 같아 현태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종희는 차라리 현태의 망상에 맞춰주자고 생각했다. 시골에 숨어 살자고 했다. 종희 생각에 한 일년 요양하는 셈 치면 될 것 같았다.
여러 위험요소가 있었다. 재택근무로 전환할 수 있을지 여러번 면담을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아 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전세계약도 아직 일년이 남아 있었다. 퇴직금으로 일년 생활비는 충당한다 하더라도 다음 일년은 당장 일을 구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하지만 점점 더 피폐해져가는 현태를 두고 볼 수만도 없었다. 우린 이제 완전 한쌍이야. 결혼식을 치르고도 한참이나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던 혼인신고를 한 날 밤에 현태가 말했었다. 전엔 아니었나? 종희가 투정 부리듯 대꾸했다. 이제 더 실감이 나. 현태가 종희를 세게 끌어안았다. 안 놔줄 거야. 종희는 팔로 다리로 자신의 몸에 엉겨드는 현태 때문에 점점 숨이 막혔다. 숨 막힌다고 놓아달라고 웃으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 압박감에 안정을 느낀다는 것도, 그 안정감이 자신을 흥분시킨다는 것도 잘 알았다.
시어른의 소개로 남해의 작은 마을에 촌집을 구했다. 여러 운이 따랐다. 현태의 사정을 들은 집주인이 나서서 새 세입자를 구했고 전세금도 쉽게 돌려받았다. 은행의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일이년 시골살이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듯했다. 시어른이 알려준 촌집은 전 주인이 리모델링을 했다가 사정상 경매로 나오게 된 물건이었다. 경매는 처음이었지만 시어른의 도움을 받아 운 좋게 낙찰을 받았다. 어쩌면 완전히 시골에 자리를 잡을지도 몰랐다. 모든 결정이 현태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쉬웠지만 종희도 얼마간은 쉬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모두의 응원 속에서 현태도 힘을 냈다. 시골집은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었지만 나다닐 계획이 아니었으므로 크게 상관은 없었다. 담이 없는 주택이어서 맘만 먹으면 누가 집 안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내내 곁을 지키는 종희와 무료하게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현태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현태도 잠적에 완전히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너 그냥 회사 다니기 싫었던 거 아냐? 몇달이 지나자 그런 농담도 할 수 있었다. 크게 돈 쓸 일이 없으니 벌이가 마땅치 않아도 당장 생활이 어려워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냥 쉬는 것이 무료해 펜션 일도 구했다. 처음엔 근처 펜션으로 출퇴근하는 식이었다. 규칙적으로 해야 할 일이 생기니 더 살 만해졌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서울 같은 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다행히 두 사람은 그런 데서 의견이 잘 맞았다. 완벽한 한쌍처럼.
문제는 잘못 발송된 우편물이었다. 이전 집주인에게 온 다양한 종류의 독촉장이었다. 현태의 이름이 쓰여 있지도 않은데 현태는 빨간색 스탬프가 찍힌 우편물을 두려워했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시 전 주인을 찾아오는 것이었지만 그 사람들은 종희와 현태를 의심했다. 뭔가를 숨겨두었을 거라 생각하는지 전 주인을 전혀 모른다고 했는데도 계속 캐물었다. 그 사람들이 찾는 게 실은 나인 것은 아닐까? 현태는 다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종희가 뭐라 말해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이 그렇게까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아. 현태는 어떤 경로든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자길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종희는 현태가 낫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정했다. 돌아보면 꾸준히 나빠지는 선택만을 해온 것 같았다.
2
현태는 여덟시쯤 방에서 나와 로즈마리와 라벤더가 자라고 있는 화단에 물을 주었다. 이미 세시에 깨서 줄곧 뒤척였다. 그나마 몸이라도 바쁘게 움직이는 편이 한두시간의 잠이라도 가능하게 했다. 창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종희가 베란다로 나와 앉았다. 막 잠에서 깨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부스스한 얼굴이었다. 푸석한 얼굴로 햇볕을 쬐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현태는 손을 들어 보였다. “일어났어?” 종희는 그런 현태를 아무 말 없이 보기만 했다. 머쓱해져 다시 고무호스를 틀어 화단에 물을 주려는데 작은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2층 에메랄드룸 손님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현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태와 눈이 맞자 저쪽에서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현태의 인사에 여자는 “원래 아침잠이 별로 없어요” 하고 대꾸했다.
“늙은이 같죠?”
“뭐, 건강한 거죠.”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네?”
“사고가 났다던데. 그래서 저희 바비큐 못했잖아요.”
여자의 질문에 현태는 당황했다. 1층의 종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종희는 여전히 잠이 덜 깬 듯 멍한 표정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현태와 2층 여자의 대화를 듣고는 있을 터였다. 쫓아오는 이가 있어 따돌려야만 했다고, 그래서 늦었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이 필요했다.
“아, 오는 길에 접촉사고가 있었어요. 심한 건 아니었지만…… 처리를 하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현태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종희를 봤지만 종희는 티테이블 위로 얼굴을 묻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었다.
“네, 뭐. 사과는 어제 충분히 받았어요. 바비큐 해 먹으려고 온 것도 아니고.”
“그래도 잘못한 건 저니까……”
여자는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남은 재를 떨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현태는 다시 호스를 틀었다. 흙이 완전히 흠뻑 젖을 때까지 한참이나 물을 주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보았을 때 종희는 자리를 뜨고 없었다.
방으로 돌아왔더니 종희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현태도 그 옆에 잠깐 누워 있자니 종희가 “손 씻고 와” 하고 말했다. 현태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종희는 꼼짝 않고 누워서 아무 대답도 안 했기 때문에 현태는 부랴부랴 수건에 손을 닦으며 “네!” 하고 소리쳤다. 에메랄드룸의 남자 손님이 찾아와 하루 더 머물겠다고 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예약을 연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현태는 하루 더 있다가 가기로 했어요,라고 말하는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인가. 각진 얼굴에 희미한 눈썹과 쌍꺼풀 없는 눈, 오똑한 코와 얇은 입술. 현태보다 키는 반뼘쯤 크고 운동을 하는지 다부져 보였다.
“하루 더, 머무르신다고요?”
“네, 혹시 다른 예약이 돼 있는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저희가 못 챙겨드린 것도 있는데……”
“그래서 말인데요. 좀 깎아주실 순 있죠?”
“아, 그래야죠. 그렇게 할게요.”
현태는 두 사람에게 평일 요금을 받고 방을 주기로 했다.
“원하시면 방을 옮기셔도 돼요. 다른 방도 지금 예약된 게 없으니까요. 여자친구분과도 한번 얘기해보시고……”
“여자친구 아닌데요.”
“네?”
“여자친구 아니라고요. 계산은 현금으로 하죠? 저녁에 드릴게요. 방도 그대로 쓸게요.”
남자는 필요한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현태가 문을 닫고 돌아와 침대에 눕자 종희가 물었다.
“굳이 변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뭐?”
“여자친구가 아니라고 말이야. 굳이 우리한테 변명할 필요가 있느냔 말이지.”
현태도 의아했다. 둘이서 한방을 쓰면서 굳이 연인 사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오히려 오해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일 수도 있다. 왜 단둘이 이 외딴 바닷가 마을까지 와서 방을 잡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연인이 아니라면 무슨 사이일까? 그냥 친구 사이일까?”
종희의 질문에 현태는 말문이 막혔다. 연인이든 아니든 현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그들이 어떤 사이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졌다. 관광하러 온 연인들이 갑자기 정체불명의 사람들로 변한 것이다. 줄곧 자신이 기다렸던, 언제든 자신을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은 아닐까. 갑자기 하룻밤을 더 연장하는 것도 어제는 자신이 펜션에 없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냥, 저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할 뿐이야.”
현태는 갑자기 방이 덥다는 것을 깨달았다.
“넌 안 궁금해?”
종희의 질문이 몹시 뜨겁다는 것도. 생각하면 할수록 델 것 같았다. 저 질문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경고등이 켜진 것 같았다. 밤새 식은 대기가 충분히 열을 받아 데워졌을 시간이었다. 열어둔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서도 약간의 열기가 느껴졌다.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지? 왜 우릴 찾아왔지? 왜 하룻밤을 더 머물겠다는 거지? 떠오르는 질문들에 아무런 답을 내릴 수 없게 되자 현태는 불안해졌다. 답이 필요했다. 보통의 답을 내릴 수도 있었다. 저 사람들은 여행객이다. 펜션에 묵으러 왔다. 하루 더 쉬고 싶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현태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진실이 아니다.
“어제 낮에 누가 왔었어. 검은 왜건을 타고 푸른 등산모자를 쓴 남자.”
“그게 누군데?”
“낚시하러 온 사람. 묵을 곳을 찾는.”
“그런데?”
“그냥 가버렸어. 그래서 네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 손님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태는 지난밤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트를 나설 때부터 천천히 자신을 따라왔던 흰색 포터도. 작은 마을이라 대개가 2차로였기 때문에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현태가 천천히 달리자 포터도 현태를 추월하지 않고 속도를 맞췄다. 일부러 갓길에 차를 멈춰 세웠을 때 포터는 현태보다 조금 앞질러 가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몸이 찌뿌둥한지 좌우로 목을 꺾고 앞뒤로 허리를 돌리며 현태의 차로 걸어와 차창을 두드렸다. 현태는 그때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창문을 내리자 남자는 길을 물었다. 현태는 자신도 초행이라 잘 모른다고 얼버무렸다. 현태는 남자가 차 안을 훑어본다고 느꼈다. 남자가 차로 돌아가 먼저 떠난 다음에 현태는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펜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거기는 이미 완전히 들통난 장소다. 어차피 돌아갈 이유도 없었다. 거기에는 종희가 있을 뿐이었다. 함께 있는 것이 더 위험하지 않을까. 현태는 멀리 달아나자고 마음먹고 한참을 차를 몰았다. 시를 벗어났다. 먼저 바다가 사라졌다. 건물이 높아지면서 하늘도 사라졌다. 산꼭대기까지 빽빽이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거리에 사람이 많아졌다. 숨기에는 도시가 더 제격인 것이 아닐까. 어느새 현태는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사방의 차들이 다 자기를 쫓는 것 같았다.
현태는 다음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와 펜션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었고 어떤 변명을 해도 말이 안 될 것 같았지만 현태는 자신이 겪은 일을, 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종희의 반응이 어땠더라? 그런 것까지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현태는 당장이라도 누가 찾아와 자신의 손목을 낚아챈다 해도 놀라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누가 정말 나타난다면, 푸른 등산모자가 바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현태는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종희가 잠깐 산책을 하겠다고 펜션을 나섰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돌아올 것이다. 현태는 함께 가자고 하지 않았다. 방에 가만히 앉아서 2층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였다. 손님들은 오전 내 객실에만 머물렀다. 펜션 바로 앞에 있는 바다에도 나가지 않았다. 어제 실컷 구경을 한 걸까. 소리도 거의 내지 않아서 방에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졌다. 청소를 핑계 삼아 2층으로 올라가 복도를 밀대로 닦았다. 가벼운 웃음소리가 한번씩 새어나올 뿐 별다른 소리는 없었다. 왜 웃는 것일까. 무엇을 상상하며 웃는 것일까. 모든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었다. 현태는 자신에게 가장 해로운 이유를 찾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리고 그 단어가 들려왔다.
“오늘 밤……”
현태는 그 단어를 듣고 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밖에 누가 있나?” 하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걸레질을 했다. 곧 웃음소리도 없이 잠잠해지고 자신의 걸레질 소리만 들리자 안의 손님들이 문에 귀를 대고 자신의 소리를 좇는 것만 같아 서둘러 일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다.
종희는 조개를 주워 왔다. 또 해변에 조개가 밀려왔다고 했다. 마을사람들 몇몇이 나와 줍고 있었다고 했다. 종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쾌활하게 설명했다.
“명주조개라는 사람도 있고 떡조개라는 사람도 있더라.”
“어떤 게 맞을까?”
“뭔 상관이야.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현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희 말대로 둘 다 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조개에도 분명히 이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궁금해졌다.
“아, 나 그거 인터넷에도 올렸었는데.”
종희는 답이 달렸는지 확인했다.
“하하, 웃긴다. 답변이 뭐라고 달렸는지 알아?”
현태가 고개를 젓자 종희는 답변을 읽었다.
“명주조개 아니면 떡조개인 것 같습니다. 둘이 되게 비슷하게 생겼나보다.”
종희는 명주조개와 떡조개 사진을 검색해서는 차례로 현태에게 보여주었다. 둘은 종희가 잡아 온 조개와 사진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별 차이가 없어 보여 어떤 이름이 맞는지 두 사람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근데 사람들은 왜 일일이 그 많은 조개들을 분류하고 이름을 지어주는 걸까.”
“어디에 독이 있는지 가려내야 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그거 해감이 잘 안 되는 종류니까 삶은 다음에 검은 모래집을 잘라내라고 하더라.”
“누가 그래?”
“마을사람이겠지? 좀 나이가 있는 할머니였어.”
종희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서서 그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오래 살면서 독이 있는 건 피해 주워 먹고 산 사람일 테니 믿을 만했다. 실제로 처음 이 조개를 먹었을 때도 모래가 제법 씹혔었다. 종희 말이 맞았다. 독을 피해야 한다. 위험한 것들에는 이름이 붙어야 했다. 밀려온 파도가 발목을 간질이며 휘돌아나갈 때마다 종희는 자신의 발이 점점 모래 속으로 파묻힌다고 생각했다. 얕은 바다의 물이기 때문인지 미지근했다.
“그거 알아? 새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조개가 된대.”
현태는 종희가 한 말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듯했다. 종희는 그 이야기도 마을사람에게서 들었다. 그거 알아요? 옛말에 새가 바다로 들어가서 조개가 된다는 얘기가 있어요. 새조개 같은 걸 보고 생각해낸 말일까요? 현태는 그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새가 바다로 들어가서 죽지 않고 아주 다른 것이 된다는 이야기가.
“물이 아주 따뜻하더라.”
현태는 작은 플라스틱 대야에 물을 받아 조개들을 쏟았다. 어떤 것들은 여전히 입을 꽉 다물고 있고 어떤 것들은 힘이 없는지 아귀가 꼭 맞아 맞물려 있어야 할 껍데기가 살짝 벌어져 있었다. 개중엔 깨진 패각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개는 완전한 한쌍이네. 둘 중 한쪽만 깨져도 갖고 있던 속살이 다 썩어 문드러지는 거야.”
현태는 깨진 패각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고는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저녁에 다시 확인해보았을 때 몇몇은 살을 밖으로 내놓고 물을 찍찍 쏘아댔지만 여전히 입만 살짝 벌린 채인 것들도 있었다. 현태는 베란다에 앉아 있는 종희를 불러 이미 상한 것은 아닌지, 먹어도 되는 것인지 물었다. 조개 하나를 들어 엄지와 검지로 눌러본 종희는 먹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현태는 먹어도 안 죽는다는 종희의 말에 안심했다. 쏘아대는 말투나 빈정거림은 중요하지 않았다. 종희가 안 죽는다고 하니 안 죽을 것이다. 그것이 중요했다. 위험한 것은 상한 조개 같은 게 아니었다. 종희는 아랫집 남자가 현태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봤는데, 너가 죽는다고 해도 자긴 범인이 아닐 거라면서 웃더라. 세상에 사람 죽여놓고 자기가 죽였다는 사람이 어딨겠어? 어쩌다가 눈이 맞았는데 진짜 오싹하더라. 그 사람 혼자 살지? 어디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까먹었네. 옷에서도 약간 비린내 같기도 하고 쇠 냄새 같기도 한 이상한 냄새가 나던데 갑자기 소름이 끼치는 거 있지. 얼추 해감된 조개를 끓는 물에 쏟자 금세 다 죽어버렸다. 다 삶은 다음에도 입을 꾹 다문 것이 있어 억지로 벌려보니 검은 모래로 가득했다.
종희와 현태가 저녁을 먹을 때 에메랄드룸의 손님들이 해변을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갈 때의 옷차림과 틀림없는 것 같았다. 현태는 종희가 일러준 대로 조개의 모래집을 잘라냈다. 종희는 거의 씹히지 않는다며 그냥 먹었다. 모래 서걱이는 소리가 현태에게도 들리는 것 같았다. 손님들은 해변에 멈춰 서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오늘 밤의 일을 계획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객실에서는 누가 들을까 염려되어 밖으로 나간 것일지도 몰랐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현태가 종희에게 물었다. 종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냥 관광객이지 않을까?”
“관광객일까?”
“별로 관광은 안 하는 것 같긴 하지? 그냥 쉬러 왔을 수도 있지.”
“하지만 연인 사이도 아니라고.”
“부부 아닐까. 여자친구가 아니라 아내라는 걸지도 몰라.”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닐 수도 있었다. 빈 조개껍데기가 대야에 수북이 쌓였다. 식사를 마친 후 종희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현태는 에메랄드룸에 몰래 들어가보기로 했다. 해변에서 펜션까지 직선거리는 가까워도 길이 없어 한참을 돌아가야 했으므로 해변에 있던 손님들도 금세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었다.
방은 조금 어지럽혀져 있을 뿐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입던 옷이 침대에 던져져 있었고 싱크대에는 씻지 않은 컵이 있었다. 현태는 베란다의 창 아래에 있는 검은 백팩을 열어보고 싶었다. 그 안에 뭔가 들어 있지 않을까.
“너 뭐 하는 거야?”
설거지를 마쳤는지 종희가 2층으로 올라와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그냥, 확인하려는 거야.”
현태는 역시 가방을 열어보아야겠다고 결정했다. 지퍼가 가방을 가를 때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종희가 달려와 현태를 말리려다 현태가 휘저은 팔에 얼굴을 맞았다. 현태는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가방을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종희는 얼굴을 감싸 쥐고 밖으로 나갔다. 가방 안에는 얇은 카디건과 작은 파우치가 하나 들어 있었다. 현태는 그것도 열어볼 작정이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에메랄드룸의 남자였다. 남자의 뒤에 선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해변의 손님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잘못 본 것이다. 남자는 현태에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문간에 서서 욕설을 퍼부어댔다. 현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남자가 말했다.
“씨발놈이, 미친 거 아냐.”
그 말은 모든 것을 식게 만들었다. 현태는 달아올랐던 기류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안감이 사라졌다. 이들의 정체를 알았다. 적이다. 확신과 함께 서서히 안도감이 밀려왔다.
3
그날 밤 현태는 숨을 헐떡이며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 위에 종희는 없었다. 모든 것을 끝냈다고 말하고 싶었다. 얼른 도망쳐야 한다고도 말하고 싶었다. 잠깐 베란다에 나간 것일까 싶었지만 거기에도 종희는 없었다. 화장실도 불이 꺼져 있었다. 밖으로 나간 것일까. 정원에 있는 건 아닐까. 현태는 베란다로 나가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종희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멀리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는 그림자가 하나 보였다. 종희일까. 종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창밖으로 몸을 내미니 차양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달이 보였다. 달은 희게 빛나고 있었다. 해보다도 뜨거워 보였다. 바람이 없어 파도는 잔잔했다. 공기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 풍경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모두가 정물 같았다. 한장의 사진 같기도 했다.
해변을 걷던 그림자가 돌연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저것은 종희일까 아닐까. 먼바다 쪽으로 헤엄쳐 간 그림자는 이쯤이면 좋다 싶었는지 이제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한순간 바닷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다 위의 부표들이 흔들렸다. 그림자는 잠수해 들어갔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다시 수면 위로 나오는 간격이 길어지면 가슴이 철렁했다. 지켜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바다로 달려가 그림자를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보지 않는 사이 사라질 것만 같아 눈을 뗄 수 없었다. 한참이나 그림자를 노려본 현태는 그것이 부표라는 것을 알았다. 현태의 눈동자는 바삐 움직이며 바다 위를 샅샅이 훑었다. 그림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해변으로 돌아나왔을지도 모른다. 더 멀리 가버렸을 수도 있었다. 가라앉고 있는 중일지도 몰랐다. 현태는 해변으로 달려나갔다. 이미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현태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해변으로 빈 조개껍데기들이 마구 밀려왔다. 종희는 그 현상을 일컬을 하나의 단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