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가치로서의 돌봄, 노동으로서의 돌봄
가사·돌봄유니온 최영미 위원장을 만나다
최영미 崔英美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
최시현 崔時賢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저서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등이 있음.
sihyunc@gmail.com
작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신생아 수가 0.78명이라는 이야기다. 사상 최저기록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숫자다. 아직까지도 ‘인구수가 곧 국력’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는지 의문이 드는 한편, 그럼에도 이 수치는 저출생 문제에 대한 전방위적 방법론은 무엇일지 고심하게 만든다. 정부는 이번에도 엉뚱한 해법을 제시했다. 바로 외국인 가사인력 도입1이다.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가사와 돌봄 문제를 싼값에 처리하면 맞벌이 커플이 아이를 낳으리라는 단순한 전략이다. 이로써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가사와 돌봄은 관습적 차원만이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여성의 몫이라는 점이며, 더 분명한 것은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가사와 돌봄 비용은 공공영역이 아닌 시장에 맡겨져 낮은 값으로 책정될 뿐 아니라 개인의 구매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되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구매력있는 이들은 질 높은 돌봄을 누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돌봄 자체에 접근이 난망해질 것이다.
저출생과 고령화 문제를 풀어낼 키워드가 노동인 것은 분명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인식개선, 일터와 가족 전반에서의 성평등한 문화, 공공돌봄 시스템 구축이 이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이라면 이를 가능케 하는 매일의 고된 가사·돌봄노동이 꼼짝없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가사·돌봄노동은 외주화된 지 오래다. 우리가 잘 아는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산후도우미, 요양보호사, 간병인, 장애인활동보조인이 돌봄서비스 직종에 있는 구성원이며 이 직종의 종사자는 100만명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서울시가 시범사업으로 도입하려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해당하는 자, 즉 가사서비스를 유급으로 제공하는 가사노동자는 약 20~3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최저임금, 유급휴일, 4대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노동자 권리에서 소외되어온 가사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게 된 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숙의 없이 급박하게 추진되는 이 이슈와 관련된 거의 모든 공론장에서 볼 수 있던 이는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유니온의 최영미 위원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가 있던 날도 여러 일정을 빡빡하게 소화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난 그에게 숨을 좀 돌리신 후 이야기하자고 제안하자 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치는 얼굴로 “뭐든지, 다 마구마구 질문해주세요”라며 호탕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길고 긴 활동 끝에 일명 가사근로자법(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가까스로 2021년 5월에 국회를 통과, 6월에 공포되고 1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2022년 6월 16일에 시행되었다. 그 기쁨을 누린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이 부조화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먼저 듣고 싶었다.
답답하죠. 저는 외국인 가사인력 도입 자체를 막자는 뜻은 아닙니다. 가사근로자법 시행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갑자기 이주노동자 데려오자는 것이 갑갑하다는 거죠. 이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만들어놓고 이주노동자 논의를 하자는 겁니다. 최저임금에 열악한 일자리라는 낙인이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들어오면 가사·돌봄노동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지지 않겠어요? 저는 이 문제에 반대하지도 않고, 일자리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에 동의해요. 노동력의 세계적 이동과 고령화 현상을 막을 수 없고 저출생 문제는 심각하잖아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우리 고령자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이 노동시장의 규율을 어떻게 구성할지 계획을 확실히 세우고 실행하다가 정말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는 판단과 사회적 합의가 생길 때 외국인노동자가 들어와야 한다고 봅니다. 늘어나는 50, 60대를 위한 일자리를 안정화하고 저출생 대책도 같이 세워야죠. 안 그러면 나쁜 일자리에 저임금 외국인을 쓰는 것으로 완전히 낙인이 찍힐 겁니다. 이제 막 이 현장에서의 노동규율이 만들어지고 있고 인식 개선도 시작되는 상황이잖아요.
노동의 자유에 대한 기본 입장을 반복 강조하는 최영미 위원장의 말에서 그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신중하게 접근하려는지 읽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가사노동자의 권리보장과 일자리 사업을 주제로 활동해온 그가 느끼는 안타까움은 시간의 문제였다. 사회보장제도가 불충분한 한국사회에서 정년과 은퇴를 논하는 노인은 노후준비가 되어 있는 정규직 출신 또는 자산가 일부뿐이다. 기초노령연금 이외에 별다른 소득이 없는 고령층은 생활비에 보탤 노동소득이 필요하다. 고령층(55~79세) 취업자는 계속해서 늘어나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조사에서 고령층 취업자가 처음으로 900만명을 넘어섰고 전체 고령층 가운데 3명 중 2명은 앞으로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2 실제로 가사노동 직종에서 50대 이상 인구는 92.6%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가사근로자법 제정은 이를 위해 힘쓴 활동가와 가사노동자 당사자들에게 크나큰 성취였지만, 함께한 가사노동자 당사자들이 그사이 고령으로 접어들어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은 답답하기만 하다.
작년부터 시행된 이 법의 초안은 2010년에 만들어졌습니다. 10년 사이 이 법을 만들려고 애쓴 가사노동자 당사자들도 같이 시간을 보냈죠. 이제야 이들이 노동자 권리를 인정받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니 노동자들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60살 넘으면 국민연금 못 들잖아요. 정부가 가사노동자들에게 근로계약 맺으라고 촉구는 하는데 노령층이 많은 이 업종에서 모순이 많습니다. 게다가 고용보험법상 65세 넘어 근로계약을 맺으면 실업급여 수급대상 안 되는 거 아시죠? 경력이 20년인데 실업급여 못 받는 상황이 생겨요. 억울하죠. 우리 현장이 그래요. 그래서 제가 여력이 없어도 열심히 하는 연대활동이 ‘고용보험법 개정 입법 촉구 연대회의’예요. 사회보장제도도 약한데 65세 이상 일하는 노인에게 최소한 실업급여는 주어져야죠.
제도의 정착에도 시간은 필요하다. 고대하던 법이 통과했다고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1년, 그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는 말에 그는 사회적기업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생각해보자며 앞으로의 5년을 재차 강조했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을 만든 첫해 55개에 불과하던 사회적기업이 지금은 3500개가 넘습니다. 우리도 아직 시행된 지 1년이니 이제 시작이고, 최소 5년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법적 효력이 널리 퍼져야 일하는 쪽도 쓰는 쪽도 그 효과를 실감할 겁니다. ‘누가 일하다 다쳤는데 제도적 혜택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야 너도나도 근로계약을 하려들 텐데 아직은 미흡하죠. 노동규율이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사서비스는 개인 가구에 직접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전통적으로 집안에서 여성들이 해오던 무급노동이 시장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직종은 1953년 근로기준법에서 가사사용인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했고 가사노동을 맡아줄 여력이 없는 맞벌이가구와 1인가구의 증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으로 그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1962년 직업안정법이 시행, 직업소개소가 공식화되면서 시작한 가사노동 시장의 규모는 2017년 기준 7조 5천억원, 2019년에는 2017년보다 214% 증가했다.3 이 가사노동현장에서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규율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까지는 일이 직업소개소나 알음알음을 통한 개인 간 거래로 이뤄져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소비자, 노동자 양쪽 다 문제가 많았죠. 일하면서 보는 별의별 문제는 결국 가사노동자를 개별적으로 고용하는 소비자 여성과 가사노동자 여성이 서로를 불신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등 갑질을 하느니, 돈 주고 시키는 건데 일을 잘 못한다느니 하며 갈등을 빚기 일쑤였어요. 여성들 사이의 문제가 아닌데 말이지요. 이렇게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는 개인 간 거래를 끊는 것에서 노동규율이 시작됩니다. 노동자에게는 고용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소비자에게는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중간에 기업이나 기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법을 통과시켰어도 여전히 가사노동자들을 ‘불쌍한, 도와줘야 할 사람들’로 인식하는 수준이라는 것도 불만이에요. 못 믿으시겠지만 아직도 국회에서 ‘식모’ 소리가 나온다니까요? 그래도 변화가 있어요. 이 법이 있으니까 직업훈련도 요구할 수 있고 법에 근거한 실태조사도 가능합니다. 정부 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는 것, 저는 싸움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거라고 봅니다. 이게 법 제정의 효과임을 여실히 느끼고요. 또 하나는 시장에서 규율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개인 간 거래로 이루어져왔으니 노동자와 소비자가 서로 지키고 존중해야 할 기준도 임의적이었지요. 그런데 법이 만들어지고 나니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동안에는 그냥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했던 지방정부들이 이 법에 의거해 기준을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예를 들어 올해 서울시에서 임산부, 다자녀, 맞벌이 1만 3천가구에 가구당 6회의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에요. 서울시는 여기에 참여하는 기관들이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해 사회보험이 적용되도록 했고 이용자들에게도 4시간 안에 30분 휴게시간을 반드시 주도록 했으니, 이게 우리로서는 정말 굉장한 변화예요.
그가 보람찬 얼굴로 말하는 ‘굉장한’ 일이 4시간 노동에 30분 휴식시간, 4대보험 보장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이 일에 대한 기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한다. 가사·돌봄노동은 아직도 저숙련 노동이자 가장 싼값에 제공되어야 하는 노동으로 이해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이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핵심이며 그 생산성은 모든 가치평가의 기준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노동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누군가 일터에서 하루치 생산성을 발휘하기 위해 먹어야만 하는 삼시세끼 밥, 쾌적한 집에서의 온전한 휴식은 가사노동에서 나온다. 모든 노동자의 생산성은 누군가의 또는 자기 자신의 가사·돌봄노동 없이는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산다. 지금까지 가족 내 여성들이 사랑과 헌신의 이름으로, 무임금으로 해온 역사가 구성한 가사·돌봄노동의 비가시화와 저평가는 이 일이 사회화된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일이 주는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은 노동자 당사자마저 자기 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내면화하게 만든다.
이 시장에서는 노동자가 주체화되기 어려운 거예요. 일자리 교육할 때 교육생들을 처음 만나면 이렇게 물어봐요. “이전에 무슨 일 하셨어요?” 그러면 교육생들은 “저 지금까지 아무 일도 안 했어요.” 이렇게 대답들 하시죠. 주부로서 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예요. 이 인식을 깨는 과정이 참 힘들었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었으니까 가사노동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도 필요없다 여기죠.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교육을 시작하고 10년 사이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인식의 변화라는 게 그래요. 소비자들도 오히려 먼저 가사노동자가 교육받은 분들인지 물어보고, 노동자 본인들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돼요. 예컨대 가전제품도 그사이에 얼마나 바뀌었어요?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한다고요. 이제야 이 일에 필요한 것들을 먼저 훈련받기를 원하세요.
가사·돌봄노동의 취약한 지위는 돌봄 영역을 여성의 몫으로 만드는 ‘돌봄의 여성화’에서 비롯된다. 여성들은 근대적 가족체제 변화를 겪으며 가사돌봄 전담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노동시장에서 직업을 얻어 공적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돌봄노동의 위상과 돌봄 가치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이뤄진 변화 속에서 돌봄은 오히려 더 취약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사·돌봄노동은 시장에서 더 낮은 자리에 놓이게 되었고 가사·돌봄노동자는 합당한 존중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맞벌이와 1인가구가 보편화되는 이 시대에 돌봄 가치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와 사회적 재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개별적으로 싼값에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거나, 슈퍼우먼이 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상시적 돌봄 빈곤이라는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 대응의 지속 불가능성을 우리 사회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더 절실히 알게 되었다. ‘돌봄 대란’ ‘돌봄 공백’이 무엇인지 분명해진 지금, 과연 돌봄 가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막연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저는 추상적인 얘기가 이제는 진력이 나요”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말을 이어갔다.
저는 돌봄 가치, 돌봄의 의미를 넘어서 구체적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고 봐요.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돌봄의 사회적 가치나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추상적이거든요. 그래서 거대한 수준의 인식변화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차원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두가지를 꼭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돌봄서비스를 쓰는 사람들의 소비자 윤리에요. 요새 ‘착한 소비’가 유행한다지만 그건 어떤 물건을 소비하느냐에 대한 것이지 서비스를 소비할 때의 윤리 이야기는 제대로 안 하죠. 소비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에 대한 기본 규율이 없어요. 예를 들어 가사노동자가 일하는 4시간 동안 매트를 다 들어 바닥청소하고 민폐 안 끼치게 소음도 안 내고 묵은 때 찌든 냄비 다 닦아 말리기까지 하는 게 가능하겠어요? 소비윤리에 대한 담론이 없으면 결국 일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둘만 싸우게 되는데, 이 시장에서 소비자와 노동자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서로 갈등하는 상황이 반복돼요. 그래서 저는 소비자 윤리를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돌봄 가치에 대한 구체적 실천이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이 가사서비스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높이 책정하고 공공에서 제공해야 한다는 거죠. 이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은 특권층이 아니라 평범한 맞벌이 중산층이에요. 아이 돌보고 의식주 관리하는 일이 이제 필수적인 노동인 겁니다. 그러면 정부가 쌀 가격 통제하듯 어느 선에서 표준요금도 고시하고 보조금도 주면서 관리해야죠.
사회적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관리하는 이 일이 여성 일반에 주어진 의무에서 시장에서의 외주화가 가능한 서비스로 변화하는 지금, 시장경제에서 이를 구매하는 이들은 이전의 자기 의무를 가사·돌봄노동자에 대한 개별 거래와 흥정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장이 만드는 파생효과는 인간을 위계화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소비자와 노동자 간의 정의를 다시 세우는 것은 우리가 상호의존하고 있음을 직시하는 일이다. 그는 돌봄 가치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윤리적 관계를 시작할 수 있도록 소비자와 노동자, 그리고 공공과 시장이 함께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좀 심란한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우리는 일터에서는 노동자이지만 동시에 집에서는 소비자잖아요. 노총 여성 조합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봤어요. 우리들의 돌봄 인식이 어떤지 궁금해서요. 가사·돌봄서비스의 가격책정은 어느 선이 적정할지 물어봤죠. 놀랍게도 그들의 답은 가사·돌봄서비스 가격은 싸야 한다는 겁니다. 직장에서의 권리의식만큼 소비자로서의 의식은 못 따라오는 거죠. 소비자로서의 우리와 노동자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테이블을 만들어서 정말 다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끼리 싸우지 않고 새로운 전선을 만들죠.
우리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돌봄을 통해 인간으로 생존한다. 더군다나 과거보다 늘어난 평균수명 덕분에 생존에 필요한 돌봄은 더 늘었다. 그러나 국가는 늘어나는 돌봄 비용부담에 인색하고, 돌봄을 무상으로 제공하던 가족은 더 작게 분열되어 돌봄제공능력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돌봄 공백을 틈타 시장화된 돌봄의 가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도 지불능력에 따라 위계화된 시장에서 돌봄 서비스는 차별적으로 분배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모든 세대에 걸친 삶의 격차를 만들어낼 것이다. 돌봄의 가치를 현실화하면서도 시장이 빚어내는 양극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성찰해야 할 것은 서로 돌봄으로써만 생존하고 지속할 수 있는 존재 조건으로서의 상호의존성이다.
이제 이 시장의 소비자들은 플랫폼으로 이동 중이다. ‘미소’ ‘청소연구소’와 같은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플랫폼의 등장은 이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궁금했다. 가사서비스는 부유한 집의 전유물이라고 바라봤던 시선이 플랫폼 경제의 등장으로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생활비를 아껴 가사서비스 몇시간을 구매하는 것이 매일 분 단위로 헐떡거리며 살았던 삶의 질을 현격히 높였다며 이 앱의 사용을 강력 추천하는 여성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소비자들이 느낀다는 편리함과 투명성이 노동자에게는 어떻게 경험될까.
분명한 건 그것도 직업소개소라는 거예요. 플랫폼 경제가 대단한 혁신이라고 떠들지만 그건 기술 자체에만 해당하는 말이죠. 플랫폼이 과연 생산력이나 생산수단을 근본적으로 혁신했나요? 생산방식의 일부, 즉 유통과정의 일부에 변화를 준 것뿐이지요. 혁신이라고 하면 관계자 모두에게 이로움을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노동자에게는 기존에 취약했던 고용안정을, 소비자에게는 신뢰감을 말이지요. 그런데 보시지요.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했다 취소하는 경우 그 물건을 발송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노동력을 구매하는 경우 노동자는 그 시간을 비워놓아야만 합니다. 가사노동자는 이미 출발했는데 소비자가 이용을 취소하면 그날 노동자는 일을 못해요. 고용불안정성, 확실히 늘었고 노동강도, 엄청나게 세졌습니다. 이전에는 주 1~2회 고정으로 일하며 자기 일정을 관리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앱이 등장하면서 고정 일은 30%로 줄고 소비자들은 한두달에 한번 집안일이 포화상태일 때 호출하니 일이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서 4시간 안에 마쳐달라고까지 하니 일하는 쪽도 쓰는 쪽도 만족도가 낮죠. 소비자는 별점 리뷰를 보면서 노동자를 골라 부르지만 노동자에게는 모든 것이 불투명해요. 한편 중간에 기업이 끼지 않고 소비자와 노동자가 직접 거래하게 하는 플랫폼도 많고요. 이 경우 신원 문제 등 노동자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는 또 오롯이 소비자에게 떠넘겨지지요.
최영미 위원장과 최근의 논쟁적 이슈에서부터 플랫폼 경제까지 이르는 열띤 대화를 마치면서 가장 골똘히 생각했던 것은 가사·돌봄노동의 비가시화가 노조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가사노동자들의 일터는 가정이라 눈에 보이지가 않죠. 다른 여성단체나 환경단체들과는 다르게 젊은 활동가나 연구자들이 전혀 안 오고, 노조나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우리 조직은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우리도 국제연대활동 하고 싶고 널리 소통하고 싶지만 이런 것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해줄 인력이 너무나 부족해요. 아무리 돌봄, 돌봄 말만 하면 뭐 하나요?”라던 그의 말을 돌이켜본다. 돌봄은 마치 이 시대의 유행어인 듯 예상치 않은 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돌봄 로봇’ ‘디지털 돌봄’ ‘돌봄 쿠폰’과 같은 말들은 이제 돌봄이 곳곳에 널려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돌봄의 위기는 돌봄‘노동’의 비가시화에서 온다는 것을 더 힘주어 말해야 한다. 돌봄은 저기 멀리 있는 숭고한 무언가가 아니라 사지를 쉼없이 움직이는 노동이자 대면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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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서울시가 준비 중인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계획안’이 필리핀 국적 100여명 규모를 도입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현재 해당 사업은 정부 인증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맡아서 진행하며, 서울시는 해당 기관 운영비 지원 등을 위해 1억 5천만원을 추경을 통해 확보했다.” 「‘저출생 대책’ 논란 필리핀 가사노동자 100여명 올해 도입」, 한겨레 2023.7.27.↩
-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 통계청 2023.7.25.↩
- 김진하·황민영 『코로나19 이후 가사서비스 시장 변화에 따른 이용자 지원과 근로자 고용 개선방안』, 서울연구원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