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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케가미 에이코 『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 눌민 2023
정상성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세계
신지수 伸智秀
임상심리학자 nopsycholoz@gmail.com
아바타를 통해 가상의 삶을 영위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중 ‘세컨드라이프’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다. 이는 미국 거점의 사회학자인 저자 이께가미 에이꼬(池上英子)의 연구공간이기도 하다. 아바타 사용과 사회적 관계 구축방식을 연구하던 그는 가상공간에서 활발히 소통 중인 수많은 장애 집단을 조우한다. 그중에서도 자폐스펙트럼 당사자들은 이 책을 이끄는 주인공이다. 관심사나 흥미 범위가 좁고, 대인관계에 서툴며 사회적 의사소통에 제한이 현저할 것을 요구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기준이 무색하게도, 가상공간 속 자폐인들은 풍요로운 관계와 교류를 장기간 유지해온 것으로 묘사된다. 누군가의 반려견이 안락사되었다는 소식에 세심한 위로와 진실된 공감을 나누는 자폐인들의 모습은 다소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바람에 저자가 목격한 장면이 허구의 사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직업상 임상적 심리평가, 치료를 위해 하루에도 몇번이나 자폐인을 마주하는 덕에 저자의 의도대로 이같은 사례에 크게 놀랐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자폐적 특성을 기술할 때 흔히 ‘마음의 맹인’과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는 정보가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예상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자폐 집단의 상호작용 장면은 책의 전반에 걸쳐 제시된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폐인의 세상을 몇몇 극적 사례를 통해 지나치게 단순화해 정의를 내린다거나 이상화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는 구태여 이런저런 설득의 말을 늘어놓는 대신 자신이 목격한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꺼내놓음으로써 낯선 세계에 대한 독자의 경계심을 허물고 성급한 판단을 유보시키는 데 탁월한 것으로 보인다.
친절한 안내에 따라 그 세계를 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자폐적 특성에 대한 이질감이나 알지 못함에서 오는 두려움은 눈치 채기도 전에 소멸되고, 그들이 잘 꾸려놓은 가상그룹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열렬해진다. 왜 고립을 선택하는지, 어째서 귀를 늘상 틀어막을 수밖에 없는지, 어느날은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주었으면서 오늘은 물건 보듯 나를 스쳐가는 이유가 무엇인지와 같은, 막연히 자폐인의 ‘원래 그런 특성’으로 알려져왔으나 도무지 그 속을 가늠하기 어려워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좌절시키던 측면들은 당사자의 명료한 언어를 통해 소상히 설명된다. 별나고 괴상하며 이따금 당혹스럽던, 누군가로부터는 ‘증상’이라고 불리는 모습도 어느새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개성 강한 친구를 바라보듯 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독자는 간접경험을 통해 ‘신경다양성’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신경다양성은 뇌신경구조에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관점에 기초하는 개념이다(38면). 뇌가 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므로, 특히 자폐증을 규정하는 신경학적·인지적 특성은 사실상 ‘개성’에 가까우며 결핍이나 손상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신경다양성운동의 골자다. 자폐스펙트럼에 속하는 사람들은 장애인 범주가 아닌 사회적 소수자로서 인정되어야 한다는 실천적 주장이 포함된다. 최근 몇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논의에 활기를 띠기 시작한 주제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수년간 신경다양성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해결하지 못한 채 꾸물거릴 뿐이었다. ‘자폐를 개성으로’라는 주장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현실을 떠올리기만 하면 마음이 도로 거꾸러지곤 했다. 날이 갈수록 가정과 교육 환경은 손톱만큼의 자폐 증상도 놓치지 않으려 아이들을 철저히 감독하고, 약간의 낌새라도 보이면 온갖 예방책을 동원해 정상 범주에서의 이탈을 막기 바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저자는 정작 자폐증 당사자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교정하고 치료되길 정말로 바라는지, 타고난 대부분의 특성을 소거한 뒤에도 스스로를 이전의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지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부재해왔음을, 외부인의 시선에서 예리하게 통찰해냈다. 그뿐만 아니라 자폐증이 유아의 발달장애로 정의되어온 결과 그들의 미래가 주로 부모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현실적 한계는 특히 상당한 긴장을 유발하는 지점임에도 사회학자라는 발화자의 위치가 진솔한 해석을 격려하는 듯 보인다. 정신의학, 심리학 분야의 논의에서는 오랫동안 소외되어온 주제다.
저자는 가상공간의 자폐인들이 자신의 비정형성을 어떻게 느끼고 해석하는지 보여주는 데 거침이 없다. 그렇다고 정신장애에 대한 묘사가 우울하거나 연민을 자아내는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신경정형인(neuro typical, NT), 즉 뇌신경의 발달이 ‘정형적’으로 이루어진 비자폐인들의 특성을 과감하게 활용하여 예상치 못한 재치로 분위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대상화되어본 일 없는 ‘다수파’를 주제로 그들 사이에 오간 대화는 짜릿하기까지 하다. “타인의 마음을 추측하는 능력은,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형발달인(NT)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형발달인(NT)도 동일하게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상대방 기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257면). 자폐인들의 세계에서는 신경정형인의 기준이 표준이 되지 못함을 이보다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저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폐증의 역사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자폐증의 문화사, 사회사로 명명하는 것이 맞겠다. 한때 정신장애 진단 편람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던 동성간의 사랑이 장애 범주에서 해방되는 동안 과학 얘기를 꺼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회적 압력과 운동만이 역사를 바꿀 만한 힘을 가졌다. 자폐증의 정의 역시 단순히 과학적 발견이나 근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이유를 바탕으로 구성된 일종의 합의점, 개념에 대한 약속임을 추론해볼 수 있다. 정상성이란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이쯤 되면 차라리 머지않은 미래에 자폐증 범주가 허구로 남겨질 수 있을까 하는 다소 발칙한 희망을 품고 마는 나와 달리 저자는 균형 잡힌 태도를 견지한다. 의료, 복지, 교육 분야에서 이들을 지원하고 정책과 법률을 제정하는 데 범주가 충분한 효용을 가진다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부재하는 이상적 사회에서는 자폐증이 장애의 범주에 속하는지 개성의 영역에 속하는지 같은 구분이 무의미하겠으나 저자는 범주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저자에게 강렬한 통찰을 안겼던 짧은 문구와 같은 문제적 세상을 꿈꿔볼 뿐이다. ‘모든 아바타는 자폐적이다’. 한정된 얼굴 표정 안에서 감정을 드러내고, 어색한 몸동작 중 그나마 적절한 몇가지를, 그것도 느릿한 속도로 반응할 뿐인 가상세계 속 아바타의 행동양식이 자폐 특성과 닮아 있다는 의미다. 모두가 자폐적인 세상에서는 어색한 눈맞춤, 부적절한 타이밍 따위가 장애로 취급될 리 없다. 정상성 범위의 파격적인 확장이다. 드넓어진 정상성의 바다에서 여전히 눈길을 끄는 유별난 구석들은 이제 찬란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자폐스펙트럼은 아동기조현병에서 출발해 신경다양성까지 도달했다. 자연이 혐오하는 균일성을 사랑하고, 자연이 선택하는 다양성을 표준화로 대체하는 오늘날, 신경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저자는 자폐증을 개성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이야기를 마친다. 표준의 범위가 느슨한 세상이 온다면 나 같은 사람은 구직에 곤란을 겪겠지만 그래도 그게 낫다. 타인의 존엄이 쉬이 긍정되는 세상이라면 나의 존엄도 긍정되지 않을 리 없다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