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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케빈 랠런드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동아시아 2023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 다윈의 미완성의 영역
김기흥 金起興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dinkim@postech.ac.kr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어, 문화, 사고력, 감정 등이 인간 고유의 특질이라고 생각해왔다. 인간성을 구성하는 핵심은 생명과학부터 인류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 분야의 가장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유전학자는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유전자의 발견을 희망했다. 철학자는 인간의 합리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해명하려고 했다. 인류학자는 인간의 행동과 환경과의 관계에서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패턴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이처럼 분화된 학제의 높은 담장은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데 분명한 한계를 보였고 또한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특정 요소로 환원하는 것의 한계이기도 하다.
케빈 랠런드(Kevin Laland)는 하나의 학제에서 특정 요소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려는 전형적인 인류학자는 아니다. 그는 진화에서의 문화의 역할에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자연선택의 연쇄 결과로서 오늘날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에서 벗어나 문화가 진화의 추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친다. 즉, 문화는 단순히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진화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이 랠런드의 입장이다. 그의 연구는 기존 문화인류학과 진화인류학이 보여준 문화와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단편적 강조를 넘어 문화와 진화가 하나의 틀 안에서 함께 변화해왔다는 ‘공진화’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단지 가설에 멈추지 않는다.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문화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가』(Darwin’s Unfinished Symphony, 2017, 김준홍 옮김)는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동물행동학의 실험연구, 수학적 모델링과 인간의 조상인 ‘호미닌’ 연구에서 얻은 광범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화적 요소가 어떻게 진화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2부는 지능의 진화에서 문명의 발달까지 인간이 이루어낸 엄청난 성취 이면에 문화가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논의한다. 이 책의 백미는 랠런드가 제시한 다양한 동물행동실험을 통해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를 모방하고 학습하면서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문화는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랠런드는 한 층위 더 깊이 들어간다.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은 진화를 통해 생존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 그 핵심은 ‘모방’을 통한 학습이다. 저자는 이 모방행동을 일종의 ‘사회적 학습’으로 본다. 학습은 사회적 학습과 비사회적 학습으로 나눌 수 있는데, 비사회적 학습은 스스로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을, 사회적 학습은 모방과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바로 사회적 학습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박새가 우유의 알루미늄 뚜껑을 부리로 쪼아 먹는 행위가 빠르게 전파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또한 태평양에서 서식하던 혹등고래의 특이한 노래가 그 지역의 고래뿐 아니라 인도양의 혹등고래에까지 매우 빠르게 전파되는 현상에서 모방을 통한 학습을 관찰했다.
모방을 통한 사회적 학습의 확산은 생존이 어려운 환경과 불확실성이 높은 조건에서 더욱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랠런드는 어류 관찰 실험으로 보여준다. 그의 연구팀은 세가시큰가시고기와 아홉가시큰가시고기를 대상으로 15년 동안 다양한 실험을 수행했는데, 이 두 종류의 큰가시고기는 전혀 상반된 성향을 보였다. 아홉가시는 다른 물고기들의 먹이 찾기와 행동을 모방하면서 먹이가 풍부한 장소에 대한 정보와 먹이 획득 방법을 학습한다. 반면에 세가시는 전혀 그럴 의지를 보이지 않으며 사회적 학습도 관찰되지 않는다. 두꺼운 갑옷과 매우 큰 가시를 가진 세가시는 포식자를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그 때문에 모방과 같은 사회적 학습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홉가시는 등에 아홉개의 작은 가시만 있을 뿐 단단한 갑옷의 부재로 포식자에게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이러한 취약성 때문에 생존을 위한 혁신이 필요하며 모방을 통해 먹이가 풍부하면서 안전한 곳을 찾는 것이다.
큰가시고기에 대한 실험은 사회적 학습이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뿐 아니라 어류에서도 볼 수 있는 중요한 생존방식이며, 이것이 집합적 행동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적이다. 랠런드는 몇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취약한 환경에서 사회적 학습과 혁신이 자주 일어난다는 패턴을 발견했다. 또한 모방과 사회적 학습은 자연선택으로 이어져 시각을 포함한 지각기관의 발달을 일으키기도 한다. 저자는 문화라는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를 추동하는 요소로 작용해왔으며 유전자와 문화는 함께 진화를 이루는 공진화의 관계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 즉 인간의 문화와 유전적 특징의 관계를 공진화의 틀에서 흥미롭게 풀어낸다. 인간만 지니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창의성, 일반지능, 문화, 사회적 학습과 같은 행동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게 한다. 굳이 인간과 다른 동물의 근본적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자면 대부분 동물은 특정 영역 안에서 모방이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그 모방이 일반화되고 충실도가 매우 높아 문화적 형질이 집단 내에 머무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미완성의 영역이 완전히 채워진 것이 아니며 여전히 몇가지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심리학자이며 뇌과학연구자인 안또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느낌의 진화』(The Strange Order of Things, 2017, 아르테 2019)에서 우리의 DNA 형성과 생존을 위한 진화에서 느낌과 감정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관점은 랠런드가 다루지 않은 미완성의 영역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인류학자인 에두아르도 콘(Eduardo Kohn)이 『숲은 생각한다』(How Forests Think, 2013, 사월의책 2018)에서 보여준, 문화와 기호가 인간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은 한다는 주장 역시 미완성 영역을 채울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병원체의 역습으로 전세계가 마비되었던 코로나19 팬데믹과 비정상적 기후위기 징후는 인간 독특함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랠런드의 연구는 진화와 문화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러한 한계의 기본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