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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손세실리아 孫世實梨阿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사람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꿈결에 시를 베다』 『기차를 놓치다』 등이 있음.
soncecil@naver.com
한톨의 혁명
산에서 반속반승처럼 지내는 시인이
책 받을 주소를 물어와
진즉 읽었노라 대답하려다 말고
냉큼 알려드렸다
금방 보내줄 것 같더니
잊었는지 오래도록 감감하다가
민들레잎 돋을 때 약속했는데
그새 꽃 다 져버렸다는
문자메시지와 등기가
같은 날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눈을 의심케 한
육필 서명 옆
갓털 붙은 민들레씨
한때 조선소 노동자였다가
부패한 세상에 대항한 운동가였고
잘못된 제도에 맞선 투사이던
초로의 한 사내가
산자락에 쭈그려 앉아 받은 씨
행여 날아갈세라 숨 고르며
투명 테이프로 붙여 보낸 지극함이라니
이렇듯 순한 마음이라니
훗날 내 아이에게 물려주려고
손 타지 않게 잘 건사해둔 시집
아니
한톨의 혁명
당근마켓
만성신부전이라 했다
길면 육개월 짧으면 일주일
길고양이지만
랭보라는 이름까지 붙여 정을 쏟은
딸아이의 상심이 우려됐으나
뜻밖에도 감정의 동요 없이
신장에 무리를 최소화한다는
특수사료와 각종 용품을
대용량으로 수량도 넉넉히
주문하기 시작했다
다 먹고 다 쓰기 전엔
떠나지 말란 간절함일 터
어떤 건 배송 중이고
어떤 건 미개봉이고
어떤 건 뜯기만 했을 뿐인데
떠났다 한달 반 만에
낮잠 즐기던 화단에 묻어주고
자못 의연히 삼우제까지 치르고도
얼마를 더 견디다
당근마켓에 내놓곤
구매자에게 사용법까지
알려주고 돌아와서는
내놓을 게 아직 많은데
어쩌지
어쩌지
기어코 오열 터뜨리고 말았던 것인데
하필이면 그때 울린
—당근!
간단한 이별은 어디에도 없다며
붉디붉은 홑동백
봉분 위로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