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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동우 李東宇
2015년 전태일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가 있음.
sujokgwan@daum.net
술래 없는 강강술래
하나의 입구
치마 입고, 치마와 바지를 입고, 바지 입고, 아이를 안고, 휠체어 타고
한데 모인 사람들
먼저 손을 내밀어요. 나를 맡기는 거예요. 횃불 주위로 퍼져나가는 동심원. 하나에서 둘1, 둘에서 셋2으로, 넷3으로 마침내 커다란 하나4로. 발 구르며 함께 돌아요. 커지는 노랫소리. 우리는 하나하나가 원이죠. 물방울처럼 모이고 모여 흐르는, 색과 색이 만나 무지개를 이루는.
강강술래
강강술래
달이 가득 차오르는 밤에
내 마음도 가득 차오르는데
흐르지 못하고 얽힌 우리 설움을
다 같이 돌고 돌아 모두 풀어버리세
불안해요!
불안해요?
벽에 뚫린 구멍과
그걸 메운 휴지를 아시잖아요
불편해요!
불편해요?
소변기가 없잖아요
나 참, 앉아서 보라니
불쾌해요!
불쾌해요?
입구에서 망설이는 발걸음
숨긴 건 아닌데 들킨 것 같은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경고에도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 우리 너머
들릴 듯 말 듯한 숨소리
흙도 풀도 바람도 없이
너무 환하고 너무 깨끗해서
누군가 수시로 훔친 것 같은
눈이 시릴 때쯤 들리는 안팎의 잡음
우리에게 물어뜯긴 우리가 있고
우리에 갇힌 우리를 구경하며
수군거리는 우리도 있고
독한 약 주고받으며
다시 한걸음
한걸음 우리 안으로
강강술래
강강술래
달아 달아 저기 밝은 달아
어둠 속을 환히 비추는 저 달아
서글픈 내 마음도 어둡지 않게
어서 환히 밝혀 나를 비춰다오5
모두에게 닿는 노랫소리. 메아리와 그림자가 손을 잡아요. 횃불이 달을 굴려요. 불티가 둥글게 날아요. 둥근 하늘이 모두를 품는 이곳에서는 아무도 베이지 않죠. 숨지 않죠. 원 안에 원, 원 밖에 원, 원 없이, 한없이, 수월래, 수월래, 술래가 없는.
변주
나를 보면 누구나 절로 춤추게 된다네 쇼윈도우 바깥 꾀죄죄한 발끝에서 시작된다네 빈 깡통 요란한 스텝에 낮잠 깬 여름 광장 말라붙은 분수 위로 땡볕이 구르네 가로수 그늘이 삼킨 발들을 뱉어내고 먼발치서 주저하던 맨발마저 춤판에 끼어들자 삽시간에 물드는 도시
삼삼오오 둘러앉아 길가로 삐져나오는 조명 불빛을 쬐던 무리가 꿈속 헤매듯 춤추네 쇼윈도우 안의 나를 응망하더니 이내 유리벽으로 발을 들이미네 아무리 쑤셔넣으려 한들 꿈쩍할 리 없네 꿈에서 훔친 건 꿈속에서나 만질 수 있을 뿐
명심해야 한다네 쇼윈도우가 깨지면 그대들의 꿈도 깨진다는 것을 두 손 위에 나를 올리고 정성껏 닦는 상상쯤은 허락하겠네 또각또각 거리를 활보할 때마다 나를 힐끔거리는 뭇 시선들 흉년 들고 돌림병이 돌아도 그대들은 나를 잊지 못하네
멈출 수 있다면 춤이 아니라네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도 내게 닿지 못하네 닿을 수 없어 전율하는 타란텔라, 타란텔라, 독거미에 물려 추는 춤도 춤이 아니라네 닥치는 대로 서로 밀치고 짓밟으며 쇼윈도우를 향해 치달려야 춤이라네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없애버리자는, 가장 오래 가장 격렬히 춤춘 자의 절규 슬금슬금 서로 눈치 살피던 자들이 광기 어린 몸짓으로 순식간에 유리창을 깨고 나를 갈기갈기 찢네 광장 한복판으로 질질 끌고 나와 보란 듯 나를 불사르지만
다들 알고 있다네 핏빛 불줄기가 치솟을수록 그대들 가슴속 춤사위도 커진다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
- 1973년 하바드대학 소변 투쟁. 사회운동가 플로렌스 케네디가 학생들과 교내 여자화장실 설치를 주장했다. 「‘오줌권’을 위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사IN 2019.11.8.↩
- 인천시청 신관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 뒤늦게 시 관계자는 “설치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장애인화장실 없는 시청… 감수성 부족 아쉬움」, 인천일보 2021.4.4.↩
- 비장애인 화장실은 남녀로 분리하는 데 반해, 장애인 화장실을 공용으로 설치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지적이다. 「왜 장애인화장실만 ‘남녀공용’일까」, 한국일보 2021.9.16.↩
- 성공회대는 장애나 성별, 성정체성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설치했다.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설치…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 연합뉴스 2022.3.16.↩
- 강조한 글씨는 서도밴드가 부른 「강강술래」. 앨범 『Moon: Disentangle』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