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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팔레스타인, 존재 자체로 저항하며 세상에 외치다
이동화 李東和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dh.lee@adians.net
‘WCNSF’
무함마드의 눈빛은 슬프고 공허했다. 그리고 많이 지쳐 보였다. 이제 겨우 만 13세인 그는 지금 일곱명의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있던 작년 10월 7일로부터 사흘이 지난 10일, 무함마드는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날 무함마드의 엄마는 근처에 사는 외할머니 댁에 방문하여 외할머니를 간병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부에 있던 무함마드의 아빠는 전화를 한통 받았다. 자신의 집 근처 어느 한 곳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폭격당했다고. 그 집은 바로 무함마드 외할머니의 집이었다. 그렇게 무함마드 가족은 엄마와 이별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함마드의 집 역시 폭격을 받았고, 무함마드와 일곱명의 동생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그 와중에 아빠의 연락마저 끊겨버렸다.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던 무함마드와 동생들은 병원 앞 도로에서 사흘 동안 아빠를 기다렸지만 결국 아빠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부터 무함마드는 생후 1년도 안 된 막냇동생을 포함해 일곱명 동생들의 가장이 됐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자지구 북부에서 중부, 남부를 거쳐 최남단 지역의 임시텐트와 폐허가 된 난민촌을 전전해야 했다. 무함마드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먹을 것과 물, 땔감을 찾아 거리를 헤매면서 무슨 일이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는 매일 아빠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오늘도 응답은 없다.
무함마드의 사연은 지난 1월 미국 언론사인 NBC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1 가자지구에는 무함마드와 같은 아이들을 지칭하는 ‘WCNSF’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Wounded Child, No Surviving Family.’ 생존한 가족이 없는 부상당한 아이들. 오늘도 가자지구에는 WCNSF가 늘어나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무장세력들은 프로펠러가 장착된 소형 비행물체를 타고 수십년 동안 가자지구를 가두었던 이스라엘 장벽을 넘었고, 불도저로 이스라엘 철망을 무너뜨렸다. 이스라엘 탱크 위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과, 평화롭게 콘서트를 즐기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방향을 잃은 채 도망치는 모습이 한 화면에 담겨 방송과 SNS를 통해 전세계에 전파됐다.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끌려가는 피랍인들의 모습과 이스라엘 측 피해자가 전한 당일의 증언은 하마스를 더이상 존재해서는 안 될 악마 같은 존재로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공격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당시 하마스와 전쟁을 선포하며 가혹한 보복을 선언한 이스라엘 총리와 국방장관은 하마스뿐 아니라 하마스와 협력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가 공격 대상이라고 발표했다. 이내 이스라엘의 전례 없는 군사보복공격이 시작됐고, 서구 언론은 이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칭했다.
핵폭탄 2개 위력의 공습
2023년 11월 초, 팔레스타인 중부지역 난민촌에 대피했던 파티마는 가족들과 함께 화장실에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미 한달 전 전기와 물이 끊겼고,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가자지구 북부에서 중부로 피난을 왔지만 여기도 안전하지 않았다. 밤이 되자 어김없이 허공을 찢는 듯한 이스라엘 전투기의 굉음이 들리고 곧바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과 진동이 온 마을을 강타했다. 수십분간 이어지던 폭발음이 잦아들자 파티마와 가족들은 밖으로 향했고,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건물이 폭격을 맞아 산산조각 난 모습을 발견했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고성과 절규가 이어졌고, 부상자들을 구하려는 이들의 핸드폰 조명이 여기저기서 다급하게 흔들렸다. 구조장비 없이 힘겹게 콘크리트 잔해를 들추는 이들, 피 흘리며 가족의 이름을 부르짖는 이들의 절규가 온 도로에 가득했다. 이어서 또다시 전투기의 굉음이 들리자 파티마는 황급히 숨어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는 국제인권단체 유럽인권감시기구(Euro-Med Human Rights Monitor)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전쟁 초기 한달 동안 가자지구에 쏟아부은 폭탄의 양은 25,000톤이고 이는 핵폭탄 2개의 위력과 같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지하 땅굴을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개당 약 1톤에 가까운 ‘비(非)유도 폭탄’(일명 dumb bomb)을 인구밀집지역과 민간인 대피지역인 ‘안전지대’에 집중해 떨어뜨렸다. 이스라엘의 대피명령으로 자신이 사는 곳에서 쫓겨나 유엔 건물이나 이스라엘이 지정한 ‘안전지대’에 머물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매일 그렇게 자신의 생존과 주변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
병원, 학교, 교회, 대피소… ‘안전지대’란 없다
2023년 10월 17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市)에 위치한 알 아흘리 병원이 공습당했다. 이스라엘의 보복공격 이후 병원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공습이었기에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여론이 전세계적으로 들끓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소행임을 부인하며 원인은 하마스 로켓의 오발탄이라고 발뺌했다. 사람들은 설마 이스라엘이 병원까지 공격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고 언론도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최대 병원인 알 쉬파 병원을 공습하고 지상군까지 투입했다. 더이상 하마스의 자작극이라는 변명도 않고 그 대신 병원 지하에 하마스 지휘부가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병원 지하의 하마스 지휘부 존재 여부를 놓고 다시 논쟁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수많은 병원을 공격하면서 핑계조차 대지 않았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12월 중순까지 가자지구 전체 의료시설의 77 %가 파괴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했다.2
공격 초기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역에 ‘이 지역은 곧 공격받을 테니 당장 그곳을 떠나라’는 섬뜩한 경고장을 뿌렸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살기 위해 최소한의 물품을 챙겨 집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수많은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이들은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고 유엔이 운영하는 가자지구 학교에 상대적으로 많이 집중됐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작년 10월 17일부터 지금까지도 가자지구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는 학교를 공격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학교로 피난 온 가자지구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공습과 포격, 드론과 탱크 공격으로 살해되고 있다.
가자지구의 교회, 임시대피소, 이스라엘이 지정한 ‘안전지대’도 마찬가지이다. 2024년 9월 10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인근 알 마와시 난민 임시 텐트촌을 공습했다. 새벽에 벌어진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텐트촌은 초토화됐고 화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산 채로 불에 타 절규하며 죽어가는 이들의 영상이 SNS로 전파됐다. 가자지구의 어느 유튜버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완전한 지옥이고 죽음의 냄새가 온 텐트촌을 감싸고 있다’고 말했다.3 이스라엘에 의해 하늘길도 바닷길도 육로도 모두 막힌 가자지구에서 사람들이 대피할 곳은 안타깝게도 또다시 가자지구밖에 없고, 이곳에 ‘안전지대’란 없다.
유엔은 이처럼 민간인과 전투원 구분 없이 병원, 학교, 대피소 등 가자지구의 모든 시설을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집단학살(genocide) 또는 전쟁범죄(war crime)라고 규정했다. 먼저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인 프란체스카 알바네제(Francesca Albanese)는 2024년 3월 25일,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압도적인 규모와 성격, 이로 인해 파괴된 팔레스타인의 상황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절멸하려는 의도가 드러났으며, 집단학살의 기준을 충족한다고 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협약 위반으로 제소한 건에 대해 2024년 1월 26일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의 권리가 돌이킬 수 없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기에 이스라엘에 집단학살 행위 방지, 집단학살 선동 방지 및 처벌, 긴급 인도적 지원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역시 지난 5월 21일, 이스라엘 네타냐후(B. Netanyahu) 총리와 갈란트(Y. Gallant) 국방장관을 대상으로 체포영장을 청구하며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에게 의도적으로 사망과 굶주림, 부상, 고통을 가하는 것은 군사적·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범죄 행위”라고 밝혔다.
또한 유엔총회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는 즉각적인 휴전과 인도주의 구호를 촉구하는 결의안들을 채택했다. 유엔사무총장 안또니우 구떼흐스(António Guterres)는 2023년 10월 24일 즉각적인 인도주의 휴전을 요청했고, 유엔총회 역시 같은 달 27일, 같은 해 12월 12일 두차례에 걸쳐 인도주의적 휴전요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역시 2024년 3월 25일, 6월 11일에 휴전과 인질교환, 인도주의 구호 및 가자지구 재건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모든 국제사법기구들의 결정이 반유대주의라며 강력히 비판했고, 유엔 차원의 휴전 및 인도주의 구호 결의안을 모두 거부하면서 지금도 군사공격이나 전쟁이 아닌 명백한 집단학살을 이어가고 있다.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는 이스라엘의 공격
이스라엘은 매번 국제사회의 우려를 현실화했다. 집단학살 초기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이 낳을 민간인 피해를 크게 우려하였고, 이스라엘은 보란 듯이 전투기와 드론을 이용해 가자지구 전역을 초토화했다. 지상군 투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공격 초기부터 북부와 중부에 지상군을 투입했고, 이후 북쪽에서 남쪽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하면서 집단학살을 이어갔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100만명 이상의 피난민이 모여 있던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흐 지역만큼은 절대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2024년 5월,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투입하며 끝내 라파흐를 공격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쪽에서 남쪽까지 전지역을 전투기와 드론, 탱크와 장갑차로 초토화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2024년 4월 1일, 이스라엘은 시리아 주재 이란영사관을 공습하여 이란군 고위 지휘관 2명을 포함해 총 16명을 살해했다. 그리고 7월 3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최고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Ismail Haniyeh)를 미사일로 암살했다. 이란은 그동안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전쟁을 피해왔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해 4월 13일과 10월 1일 이스라엘에 수백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며 보복했고, 이스라엘은 다시 10월 26일 테헤란 등의 군사시설물들을 공중 폭격하며 이란과의 확전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한편 레바논 남부를 기점으로 하는 헤즈볼라(레바논의 시아파이슬람주의 정당) 역시 이스라엘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됐다. 2024년 9월 17일과 18일, 레바논과 시리아 일대에서 사용되던 무선호출기와 무전기 등이 사전설치된 폭발물에 의해 동시에 터지는 일명 ‘삐삐 테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어린이 2명을 포함 최소 37명이 사망하고 3,000명이 부상당했다.4 전례 없는 폭발사고에 국제사회와 언론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을 배후로 지목했고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삐삐 테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 있는 헤즈볼라 군사시설을 대대적으로 공습하기 시작했고, 이 공격으로 9월 27일 헤즈볼라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Hassan Nasrallah)가 살해됐다. 10월 2일 이스라엘은 대규모 전차와 보병을 레바논 남부에 진입시키며 본격 지상전을 이어갔다. 지역언론 알 자지라에 따르면,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군사공격으로 10월 28일 기준 2,000명이 넘는 레바논 주민이 사망했고 100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집을 잃었다.5 이 군사공격 역시 서구 언론은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이라 명명했다.
10월 16일 이스라엘은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 지목한 하마스 지도자 신와르(Y. Sinwar)를 살해했다. 이스라엘 주민들은 환호했고 미국 바이든(J. Biden) 대통령도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를 전했다. 이스라엘이 집단학살 초기 명분으로 삼았던 하마스 지도부 제거는 하니예와 신와르의 사망으로 완성됐지만 가자지구 집단학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미 가자지구 전역이 초토화됐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가자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미사일과 포탄을 쏟아붓고 있다. 2024년 10월 한달 동안에만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사공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0명에 이른다.6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은 이스라엘 인질들에게도 분명 심각한 위협이지만 이스라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10월 29일 기준, 가자지구에서 최소 43,020명이 사망했고 이 중 16,765명은 어린이다. 101,110명이 부상당했으며 실종자는 10,000명이 넘는다. 팔레스타인의 또다른 지역인 서안지구 역시 이스라엘의 군사공격과 이스라엘 민간인인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763명이 사망했고(이 중 166명은 어린이), 6,250명이 부상을 입었다.7
지도에서 사라지는 팔레스타인
지난 9월 27일,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총회에서 두개의 지도를 제시하며 ‘새로운 중동’에 대해 발표했다. 첫번째 지도는 ‘축복받은’(The Blessing) 나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거나 이스라엘이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집트, 수단,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이 표시됐고, 다른 지도는 ‘저주받은’(The Cursed) 국가들로 시리아, 이라크, 예멘, 이란, 레바논이 포함됐다. 놀랍게도 팔레스타인은 두 지도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를 공격하면서 하마스 제거와 인질석방을 구실로 내세웠지만, 유엔총회 발표에서 확인했듯 그는 처음부터 팔레스타인을 지도에서 삭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공격하면 하마스에 대해 질문하고 헤즈볼라를 공격하면 헤즈볼라에 대해 질문한다. 두 집단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떤 목적이 있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찾아본다. 하지만 세상은 이스라엘은 무엇이고 어떤 목적으로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세상은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의해 이스라엘의 평화가 깨졌을 때 마치 자신의 평화가 깨진 양 분노했고, 이스라엘의 공격을 자위권에 기반한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했다. 거기에 미국과 독일을 포함한 소위 친이스라엘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자신들의 안보와 등치하며 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정부 역시 이스라엘에 무기를 판매했다. 21세기 최악의 집단학살과 전쟁범죄가 뉴스와 SNS를 통해 속속 전해지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이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20세기 초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양도하며 그들에게 편향적인 특혜를 제공했을 때도, 유엔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할할 때도,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15,000명이 살해되고 70만명이 자기 땅에서 쫓겨났을 때도 강대국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엄과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지배와 군사점령을 76년 이상 지속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과 피해에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에 선다. 이스라엘 군사점령을 반대하는 이들은 반유대주의로 낙인찍히고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테러로 치부된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은 지도에서 점점 사라져갔고 지금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을 지도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려 한다.
올리브를 수확하는 팔레스타인 활동가들
2005~2006년 요르단대학에서 아랍어를 공부했던 필자는 2006년 팔레스타인 현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국내팀의 통역자로 처음 팔레스타인에 방문했고, 그때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을 실제로 경험했다. 팔레스타인은 위험한 곳이고 그곳 사람들은 두려운 존재일 거라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군사점령이 차별적이고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후 꾸준히 팔레스타인을 찾았다. 필자가 활동하는 사단법인 ‘아디’는 2016년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인권보고서 제작, 팔레스타인 평화여행, 팔레스타인 트라우마 힐링센터와 여성지원센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수많은 현지 활동가를 만났고 그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봤다. 팔레스타인 여성활동가인 파티마는 지난 10월 16일 온라인회의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팔레스타인 농부에게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야. 우기가 시작되는 10월부터 3개월 동안에만 올리브를 수확할 수 있거든. 나블루스 남부지역인 우리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올리브 농사를 지어. 올리브로 기름도 짜고 비누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하지. 여기 있는 올리브나무들 중에는 예수님 시절부터 있던 것도 있어. 우리 역시 이곳에서 수천년 동안 올리브를 수확하며 살아왔고. 그런데 이스라엘이 여기를 점령하고 올리브 수확하는 걸 방해하고 있어.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은 자꾸 올리브나무에 불을 지르고 가지를 부러뜨리고. 우리가 항의하면 이스라엘 군인들이 우리를 잡아 가둬. 이스라엘 군인과 정착민들은 수천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우리를 괴롭히고 쫓아내려 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절대 도망가지 않을 거야. 올리브나무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계속 싸우며 이 땅을 지킬 거야.
아디와 8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와엘은 최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지난 9월 25일 새벽 6시에 나블루스의 우리 집으로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 15명이 쳐들어왔어. 자고 있던 가족들을 모두 깨워 거실로 모이게 했고, 아내인 메이샤를 다른 방으로 불러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리는 거야. 메이샤는 팔레스타인 지역 여성단체활동가로 일하고 있었거든. 아내는 예순살이 넘었고 시력에 문제가 있었기에 나와 가족들은 강력히 항의했어. 군인들이 안대는 풀어줬지만 그대로 메이샤를 끌고 갔어. 집 밖에는 대형 군용차량이 4대나 있었고 수십명의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어. 이스라엘은 우리 가족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지만 나를 돕는 변호사를 통해 메이샤가 ‘이스라엘 보안 위협’ 혐의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됐지. 변호사가 화상접견을 했고 다행히 무사히(?) 수감되어 있는 걸 확인했어. 변호사는 아내가 6개월 정도 수감될 거라고 하더라고. 더 연장될 수도 있지만 아마 내년 3월에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여기서는 이런 일이 너무 많이 벌어져. 나는 주변 친구들과 함께 메이샤의 무죄를 주장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계속 벌이고 있어. 메이샤는 강해.
물론 이 두 활동가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는다.
*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이스라엘이 레바논 주민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지금, 여전히 세상은 가자에서 진행 중인 집단학살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레바논에서의 전쟁범죄를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으로 묘사하며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당한 현실은 76년째 이어지고 있다. 20년 가까이 팔레스타인 활동가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사실은, 아무리 이스라엘이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우려 하더라도 이들은 올리브나무가 남아 있는 한 존재 자체로 저항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76년째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21세기 최악의 집단학살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에게 학살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가해자의 폭력과 서사를 거부하는 양심, 진실을 보려는 눈, 그리고 76년째 이어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귀,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세상에 전하려는 연대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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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CNSF: Gaza’s devastating new acronym for wounded children with no surviving family,” MSNBC 2024.1.28. ↩
- 「“두 달간 3만발 투하 … 이스라엘, 가자지구 주택 70% 파괴”」, KBS뉴스 2023.12.30. ↩
- ‘It’s Bisan From Gaza, If Death Had A Smell, I’m Smelling It Right Now,’” AJ+ 2024.6.6. ↩
- 「‘레바논 삐삐 테러’에 미국 언론 “이스라엘, 최소 15년 전 준비”」, 한겨레 2024.9.20. ↩
- “Updates: Israel bombs eastern and southern Lebanon, bans UNRWA,” Al Jazeera, 2024.10.28. ↩
- 「이스라엘, 가자 북부 공습 지속 … “이달 사망자만 1000명 넘어”」, 동아일보 2024.10.30. ↩
- Israeli strikes reportedly kill more than 150 in northern Gaza and Lebanon,” Al Jazeera, 202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