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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내란 이후 한국경제의 과제

 

 

이동진 李東珍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공저서 『인플레이션, 부채, 불평등 그리고 한국경제의 성장』 등이 있음.

rheedj@smu.ac.kr

 

 

 

우리 경제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2023년부터 내수위축에 따른 경기부진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장기불황마저 우려되던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3일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이루어지고 이후 현직 대통령이 국가 내란죄로 기소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계엄선포 직후 국회가 신속하게 해제를 결의하고 2주 뒤 대통령 탄핵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온 나라를 혼란에 빠트렸던 계엄 사태가 신속하게 정리되고 사회·경제적 불안 역시 빠르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질질 끌면서 대통령 권한대행마저 탄핵소추되고 윤석열 대통령은 극우와 연계하여 법원을 침탈하는 등 사법 질서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상황까지 이어지면서 당초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정세가 흐르게 된다. 게다가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달리 일부 정치권에서 대통령과 극우의 도발을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계엄선언으로 촉발된 정치적 불안정 상태는 정리되지 않고 오히려 정치적 갈등이 더욱 심화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갈등과 불안정성은 정치적 영역에만 그치지 않으며 민생을 포함한 실물경제 활동에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병상첨병(病上添病)이라고 했던가. 계엄으로 촉발된 정치적 사태는 우리 경제가 경기불황이라는 병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고 있던 상황에서 그야말로 병을 낫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경기불황의 심화된 병을 우리 경제에 안겨주는 상황으로 끌고 가고 말았다. 거기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통상문제에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전략과 대응이 중요한데 이마저도 보류된 상황이다. 적어도 경제적 차원에서 이번 계엄 사태는 가장 안 좋은 시점에 발생한 것이며, 이러한 시점에 계엄을 단행할 생각을 했다는 것을 보건대 우리는 지금 경제적으로 최악의 대통령과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본고에서는 이번 계엄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 경제, 특히 실물경제(상품 및 서비스와 관련된 경제활동으로서, 주식을 포함한 금융경제와 대비되는 개념) 상황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경기 및 경제적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한 단초를 얻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계엄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경기침체 상황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계엄 직전의 한국경제

 

2020년부터 2년에 걸친 코로나19 위기에 우리나라는 적어도 방역 측면에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했다고 평가된다. 이에 따라 팬데믹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났다. 2022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뒤에는 ‘보복소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코로나 기간 위축되었던 소비가 살아나고 경제도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실제로 2022년 민간소비 성장률은 4.2%로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은행도 경기회복세를 감지한데다 국내 민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다른 나라들보다 이른 시점에 금리 인상을 단행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동안 내수 경기는 안정적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의 2022년 상반기 전망을 보면, 민간소비가 2023년에도 3.9%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될 만큼 내수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이었다. 글로벌 금리 인상, 러시아-우끄라이나전쟁 등으로 인해 세계경기가 다소 침체되면서 수출 여건은 나빠지겠지만 소비는 2023년까지 견실한 회복세가 유지될 것으로 판단됐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실물경제 상황은 당초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활발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민간소비는 하반기를 지나면서 활력이 약화되기 시작했으며,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역시 예상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격 해제된 2022년 2분기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연율로 12.1%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2010년 이후 두번째로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으나, 3분기에는 5.3%로 하락하더니 4분기에는 -0.4%로 오히려 후퇴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주요 전망기관이나 정부는 소비위축이 일시적이며 2023년 들어 회복되면서 여전히 성장세를 주도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2022년 말까지 한국은행은 2023년도 상품수출 성장률은 0.7%에 그치겠지만 민간소비는 2.7%나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역시 이와 유사한 전망을 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정부 도움 없이도 내수는 곧 회복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부의 역할은 필요치 않다고 보며 건전재정 기조 유지를 최대 과제로 선언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더욱더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건전재정 기조를 주장하는 것은 정부의 경제 상황판단 오류와 철학에 근거했다 치더라도 실제 정책이 건전재정 기조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건전재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출건전화와 세수확보가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출범 직후 오히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다주택자 종부세 부담 완화 등 적극적인 고소득층 세금 인하를 추진했다. 이로 인한 세수 감소로 2023년에는 건전재정 기조라는 말이 무색하게 80조원대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되는 반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에 대한 정부 기여도는 0.4%로 201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2023년 경제는 정부의 예상대로 흐르지 않는다. 당초 부진할 것으로 생각했던 수출은 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호황이 시작되면서 예상치의 4배를 넘는 2.9%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민간소비 성장률은 1.8%에 머물러 당초 전망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되었다. 이에 따라 2023년 우리 경제의 GDP 성장률은 1.4%를 기록했는데 이는 경제위기였던 IMF 시기를 제외하고는 역사상 가장 낮은 성장률 수준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내수위축의 장기화를 우려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부와 전망기관들은 2024년을 전망하면서 전년도와 유사한 오류를 범했다. 내수는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회복될 것이며 게다가 수출 여건마저 글로벌 반도체 경기 호황 덕으로 개선되면서 우리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2024년 1분기 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5.7%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자 본격적인 경기회복에 대한 정부의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고, 8월까지만 해도 2024년 성장률이 2.5%는 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우리 경기는 기대만큼 좋아지지 않았다. 우선 글로벌 반도체 호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도체 수출은 과거와 달리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세가 꺾이게 된다. 과거 반도체 호황기에는 삼성과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수출이 기록적으로 증가했으나 2024년에는 수출 증가세가 하반기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이에 더하여 민간소비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23년과 2024년의 상황을 반영해 계엄 사태 직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전망에 따르면 2023~26년의 4년 동안 우리나라의 평균 GDP 성장률은 1.8%를 밑돌 것으로 평가됐다. 일반적으로 GDP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게 되면 경기침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은행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 정도이다. 결국 계엄 직전의 우리 경제는 무려 4년간이나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장기침체가 우려되는 매우 위중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내수 침체가 장기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심각한 가계와 자영업·소상공인의 부채문제가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경제학적으로 부채는 과거와 미래의 소득과 소비간의 불일치 문제를 완화시켜주어 효율성을 높이고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순기능이 있다. 가까운 미래에 소득이 예상됨에도 당장에 돈이 없어 필요한 소비를 못할 경우 대출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출은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키고 성장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대출이 너무 과도해지면 순기능은 사라지고 이자부담과 상환부담으로 인해 오히려 소비와 투자를 감소시키게 된다. 우리나라는 가계대출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한 나라의 가계부채 수준을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인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 내외로 OECD 국가 중 5위에 해당한다. 특히 이렇게 높은 부채비율 수준은 과거부터 이루어져온 것이 아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40%를 밑돌던 수치가 지난 20년간 급격하게 상승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특유의 전세제도와 관련해서도 주택 임대인이 임차인으로부터 전세 금액만큼을 차입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전세금을 가계부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높은데, 만약 전세금까지 포함한다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수준은 단연코 세계 1위이다.

이처럼 높은 가계부채의 원인으로는 부동산이 꼽힌다. 금융투자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자산에서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4.4%로, 이는 미국(28.5%)이나 일본(37.0%), 영국(46.2%)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주식이나 펀드, 은행 저축 등으로 자산을 보유하는 반면 우리는 부동산 매입에 가장 큰 공을 들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가계대출의 70% 정도가 부동산 담보대출이며, 신용대출에도 상당부분 부동산 구입 목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가 부동산시장의 매입자금을 조달하면서 부동산 수요를 증가시켜 가격을 상승시키며, 이러한 상승은 또다시 부동산 매입을 위한 비용의 증가로 가계대출을 가중하는 악순환이 지난 20여년간 이루어져왔다.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부동산정책과 대출규제정책도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부동산 불패 신화를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이러한 악순환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채부담도 매우 심각하다. 이들의 부채문제는 코로나19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과정에서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들이 영업을 강제로 제한당해 막대한 영업상의 피해를 보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했다. 다만 다른 나라들은 정부가 재정을 통해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해주었지만 우리는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라는 명목하에 금융지원, 즉 대출이라는 방식을 취했다. 당시 피해 소상공인들에 대한 현금보상은 미국·일본·독일·영국 같은 G7 규모의 국가들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월 600유로), 호주(월 3,000호주달러), 네덜란드(월 1,500유로), 캐나다(월 2,000달러) 등에서도 현금보상이 이루어졌고 우리나라의 정부부채 수준은 오히려 이들 나라보다 낮아 충분히 재정을 통한 보상 여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현금보상 대신 대출을 제공하면서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은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 피해는 늘어나는데 자영업자들은 아예 폐업을 하거나 아니면 추가 대출을 통해 근근이 영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으나 늘어나는 가계부채로 인해, 그리고 전체 취업자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부채부담으로 인해 소비는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서 대출금리도 크게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자부담이 크게 늘어난 자영업자들은 추가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이들의 소비여력이 더욱 감소되어 자영업자들의 사업여건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거듭됐던 것이다. 실제로 700조원 수준이었던 자영업자 대출은 팬데믹이 종료된 2022년 이후에도 계속 늘어나 2024년 기준 1060조 수준으로 52%나 증가했다. 이 기간 가계대출이 27%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영업자 부채가 얼마나 심각해져왔는가를 알 수 있다. 자영업자 부채문제의 심각성은 정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22년 ‘새출발기금’을 도입해 사정이 심각한 자영업자들의 채무를 탕감해주고자 했다. 그러나 해당 제도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여 제한을 너무 강하게 둠에 따라 실제 기금으로 조정된 부채금액은 2년이 넘도록 2조원에 불과했다.

 

 

계엄의 발발

 

경기침체의 장기화가 우려되는 시점에 대통령은 계엄을 발동한다. 멀쩡한 시기에 갑작스레 계엄을 발동한다는 것부터 초유의 상황이기도 하지만 야당의 ‘폭거’에 대항한다는 논리 또한 초유의 일이다. 계엄 사태가 발생하자 언론에서도 경제에 대한 걱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주가폭락 등 금융시장에 대한 걱정과 환율급등 등 외환시장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실물부문은 어떨까? 금융시장만큼의 피해는 생기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계엄 사태는 실물경기에도 큰 충격을 준다. 다만 그 충격의 크기는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신속하게 해소되는가에 달려 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계엄 사태는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게 된다. 첫째, 정치적 불안정성과 갈등으로 인해 경제적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된 점이다. 경제학적으로 불확실성은 리스크와 구분된다. 리스크란 구체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칠 특정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특정 리스크가 발생하면 가계·기업·정부 등 경제주체는 헤징(hedging, 위험 분산)이나 보험 등을 통해 리스크를 중립화시키거나 흔히 말하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비상계획)을 통해 리스크에 대응하게 된다. 이와 달리 경제적 불확실성이란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평가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리스크의 경우 중립화시키거나 컨틴전시 플랜을 짤 수 있는 반면, 예측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은 그러한 계획 자체를 짤 수가 없다. 계엄 사태와 그로 인한 현재의 탄핵국면은 일반적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경제가 어떻게 될까? 우선 가계나 기업은 불확실성이 다시 감소하고 미래가 더 예측 가능해질 때까지 중요한 의사결정을 유보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실물옵션 효과’라고 하는데 주로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하거나 취소나 회수가 불가능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기업에서는 설비투자나 건설투자 등이 해당할 것이고 가계에서는 자동차나 대형가전 등 내구재 구입, 주택매매 같은 것이 해당될 수 있다. 또한 예비적 저축 효과도 발생한다. 우선 소비를 줄이고 자금을 저축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 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효과를 종합해보면 결국 경제적 불확실성의 확대는 소비와 투자 등 내수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크게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소비, 투자 등 내수 침체의 장기화인데 이번 계엄 사태가 바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계엄 사태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두번째 경로는 금융 및 외환시장의 충격을 통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국내 경제에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금융투자자들은 보다 안정적인 투자처로 이동하게 된다. 이에 따라 주가는 하락하고 금리는 상승하며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상승한다. 금리상승으로 가계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환율상승으로 수입물가와 수입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다. 물론 환율상승이 수출기업에는 긍정적 영향을 끼치지만, 최근 그 효과가 별로 크지 않다고 분석한 연구들도 제시되고 있다. 더욱이 환율상승은 기업들의 대외채무를 상승시켜 재무건전성을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수출기업에 있어서도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번째로는 국가 신용등급의 하락 가능성이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는 신용등급이 하락할 우려가 있으며 이는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재정정책을 수행한다. 그러나 모든 정부의 국채가격 또는 금리가 동일하게 매겨지는 것은 아니고, 신용도가 높아 후일의 상황에 문제가 없는 정부는 낮은 금리에도 매매가 이루어지는 반면 신용도가 낮은 정부의 국채는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한다. 즉, 신용도가 낮아질수록 정부의 재정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 신용등급은 단순히 정부의 재정부담 증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해당 국가에 속해 있는 공기업 및 기업 전체의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신용등급이라는 것은 결국 부도 확률을 의미하는데 한 나라의 정부가 부도가 난다면 해당 국가의 기업들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또한 동일한 기대수익률하에서는 더 안전한 자산에 투자하는 게 원칙이므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외국인 자금이 국내에서 빠져나가 주식시장을 포함한 금융시장의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제이론이 가리키는 것처럼 실제로 계엄 사태가 우리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주었을까? 사태가 발발한 지 아직 2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 데이터를 통해 그 크기를 추정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몇가지 지표를 통해 그 크기를 가늠할 수는 있다. 우선 이번 계엄 사태가 초래한 경제적 불확실성은 2010년 이후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KDI가 추정하고 발표하는 경제불확실성지수에 따르면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났던 2017년 11월에는 해당 지수가 160포인트 상승했으나 계엄선포가 있었던 지난해 12월은 전월보다도 무려 280포인트나 상승해, 박근혜 탄핵국면보다 거의 두배 가까운 불확실성 확대가 발생한 것으로 평가됐다. 소비와 투자 위축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계엄 사태 이후 발표된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12월 소비심리는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기업들의 업황 판단을 조사하는 기업경기실사 결과 역시 기업의 업황에 대한 평가와 설비투자 실행계획이 계엄 이후 크게 하락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충격의 크기를 금액으로 가늠하기는 쉽지 않지만 단순하게 추정해보아도 계엄 사태 이전 한국은행은 4분기 GDP 성장률을 전기비 0.4%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 실적을 보니 이보다 0.3%나 낮은 0.1%로, 6조원이 넘는 부가가치의 감소가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매출액이 부가가치의 3배를 넘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출액 기준으로는 20조원 가까운 감소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 차이를 모두 계엄 사태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애초 한국은행이 11월에 전망을 잘못했을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전망과 실적의 차이는 계엄 사태라는 정치적 사건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국가 신용등급의 하락 가능성은 어떨까? 현재 3개 국제신용평가기관이 평가하는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최상위 범주인A 수준에 속하고 전망도 안정적이다(S&P AA, Moody’s Aa2, Fitch AA-).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자체적으로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로 결합된 신용평가 모형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차적으로 등급을 산정한다. 이후 국가신용평가위원회에서 감점요인을 반영하여 최종 신용등급을 결정하게 된다. 에스앤피(S&P)와 무디스(Moody’s)의 평가모형에서 정성평가 항목으로는 제도, 정치 리스크 및 시민사회와 법 등이 있다. 따라서 이들 정성평가 항목의 점수는 이번 사태로 인해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중요한 것은 그 점수의 하락폭이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만큼 큰가의 여부다. 이에 있어 계엄선포라는 사건 자체가 엄청난 일임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고신용등급 국가들 중에 2차대전 이후 공식적 계엄선포를 한 경우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아예 사례가 없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오랫동안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전망 역시 긍정적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신용점수에 상당한 여유가 있을 수 있고, 이번 계엄 사태로 인한 감점요인에도 신용등급이 유지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지난 2월 7일 피치(Fitch)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런 점에서 천만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무디스가 정치적 불안정성을 이유로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신용등급 평가에 있어 정치적 안정성은 과거보다 더 중요하게 검토되고 있으며 우리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정치적 불안정성의 크기와 지속기간이다. 계엄선포라는 것이 엄청난 정치적 충격임은 당연하지만, 강건한 민주주의 시스템을 통해 신속하게 해결된다면 오히려 위기 회복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신속한 해결이란 탄핵의 인용과 그를 통해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탄핵의 신속한 절차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려는 집단은, 대외신인도 하락과 불확실성의 지속이라는 우리 경제의 심각한 문제를 오히려 확대시키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를 통해 계엄이 해제되었을 때만 해도 이번 사태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12월 4일 에스앤피는 계엄 사태로 한국의 신용등급을 조정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고 무디스와 피치 역시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는 한 신용등급을 변화시킬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엄과 탄핵으로 발생한 정치적 불안정성의 신속한 해소였다. 그러나 신속하게 정리될 줄 알았던 사태가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흐름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 통과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총리가 탄핵을 담당할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자 야당은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으로 응수했다. 법원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대통령은 극우세력을 규합하여 영장집행을 물리적으로 방해했으며, 정부는 중립이라는 명목으로 영장집행에 대한 저항을 방관했다. 이에 일부 정치권이 동조하며 사법부를 흔들기 시작하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탄핵 이전보다도 더 상승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등 국민들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극우세력이 법원을 찬탈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두달여간의 일련의 상황들은 신속하게 정리될 것 같았던 이번 사태의 시계를 더욱 어지럽히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트럼프정부 2기의 시작으로 통상문제가 가장 큰 글로벌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며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느라 여념이 없다. 특히 지난 트럼프 1기와 달리 다른 국가들의 대응은 더욱 적극적이다. 가장 큰 우방인 캐나다마저 트럼프 관세에 대응하여 보복관세를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보복관세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희토류 수출제한 카드를 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탄핵국면으로 인해 통상정책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없다. 여당과 야당간 대립이 더욱 심화되고 여전히 윤석열정부의 연속성이 유지되고 있어 여야정이 힘을 합쳐 대응전략을 짜기는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 취임 직후의 행정명령을 보면 4월 1일자로 트럼프 관세정책의 큰 틀이 완성될 것으로 보여 그때까지 대응 모색이 매우 중요하나 우리에게는 아마도 너무나 아쉬운 기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과제

 

내수의 장기위축, 계엄 사태로 인한 추가적인 경제충격으로 우리 경제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학에는 이력현상(hysteresis)이라는 것이 있다. 침체 상황이 계속되면 경제주체들의 행태가 아예 구조적으로 변하게 되어서 회복이 되지 않은 채 침체가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이미 장기화된 소비침체가 더 지속되면 나중에는 회복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소비의 증가가 GDP의 증가에 미치지 못해 내수의 상대적인 위축이 계속되어왔기에 현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했다. 그러나 상대적인 소비의 부진이 구조화하면서 현재 그 비율은 48%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소비가 결국 국민의 후생을 대표하는 지표라고 할 때 지난 20여년간 우리의 후생이 성장에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하반기에는 소비가 회복될 것이기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반복된 오류를 다시 범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간 경제에 관한 글을 쓸 때는 보다 장기적인 우리 경제의 체질 또는 성장잠재력 등에 집중하곤 했다. 그러나 현재는 당장의 대응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2월 중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전망을 발표하겠지만 1%대 중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경제상황을 낙관적으로 볼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렵다. 필자는 당장의 대응과 관련하여 몇가지 제안을 함으로써 글을 마치려고 한다.

첫째, 이번 정치적 사태를 신속하게 해결하여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대외신용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탄핵이 신속하게 인용되고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초유의 불법계엄이 선포된 상황에서 탄핵의 기각이란 대내적 갈등을 극대화시키고 대외적 신인도를 크게 저하시키는 것이기에 기각은 사태의 해결이 될 수 없으며 혹여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의 행동 하나하나가 경제에 미칠 파장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탄핵을 지연시키거나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을 때의 경제적 충격을 고려한다면 지금은 정치적 이익보다는 정치인, 정치집단에 사회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숙고해 판단해야 한다. 지난 박근혜 탄핵 때만 해도 정치권은 다소의 갈등은 있었지만 탄핵국면을 조속히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런데 당시의 경험이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학습되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탄핵을 부정하고 갈등을 심화시키려는 시도가 더욱 커졌다. 특히나 정부는 갈등의 심화가 가져올 경제적 충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지난 체포영장 집행 갈등과 헌법재판관 임명 갈등을 보면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지금 정부의 역할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계엄으로 인해 촉발된 경제적 불확실성을 조속히 완화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

둘째, 장기화된 내수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여전히 하반기 내수회복을 낙관하며 추경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다. 정부지출을 상반기에 집중해 위축의 부담을 줄이면 하반기에는 문제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다.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를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이유를 납득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그렇게 강조하던 재정이 2년 연속 역대급 적자를 기록하게 만든 당사자들이 말이다. 정부의 방향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재정지출이 궁극적으로 GDP를 얼마나 올리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재정승수라는 것이 있다. 재정승수가 1이면 정부가 지출을 1조원 늘릴 때 명목 GDP도 1조원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재정승수는 경기 상황, 민간부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재정승수가 1을 크게 넘는 반면 경기가 좋을 때에는 재정정책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민간부채가 높을수록 정부지출의 효과가 커져 재정승수가 높아진다고 한다. 두가지 모두 현재의 우리나라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즉,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서는 추경을 통해 정부지출을 늘리면 늘린 금액 이상의 GDP 증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정부가 소비자 투자를 통해 직접 지출하는 것 외에도 실업급여나 재난지원금 같은 이전지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추경을 하더라도 정부부채비율에 큰 변화가 없고 GDP 회복에는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경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셋째로 자영업자들의 부채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현재의 자영업자 부채문제는 팬데믹 시기 법적 강제력에 의한 영업 피해를 정부가 적절히 보상해주지 않았던 것이 기점이 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부채문제 해결은 어쩌면 당연히 해줘야 했던 것을 미룬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도덕적 해이를 염려해 각종 제약을 두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제도를 악용할 소지가 많기 때문에 지원은 하되 각종 제약을 둔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제도 시행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것을 넘어 혹시 장은 담그되 발효는 시키지 말자는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도의 악용을 막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의 효과를 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새출발기금제도는 대출을 갚지 못하는 취약차주의 부채는 탕감해주지만 이로 인해 향후 2년간 금융거래가 제한되어 사업을 영위할 수가 없다. 기존 소상공인진흥공단의 대출제도를 활용하여 부채를 탕감하면서도 사업지속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금이라도 여야정이 통상대응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트럼프 2기에 대한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수출 비중이 매우 큰 우리나라의 여건을 볼 때 정치권이나 정부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생각한다면 경제 영역에서는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이와 함께 올 10월은 우리나라에서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린다. 새로운 정부가 국제통상 환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이다. 여야정 태스크포스가 연속성을 가지며 통상부문의 글로벌 아젠다를 끌고 나간다면 아마도 전화위복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사례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