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수렁에 빠진 인권위, 다시 세워야 한다
홍성수 洪誠秀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인권법학회 회장. 저서 『말이 칼이 될 때』 『법의 이유』, 공역서 『혐오』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등이 있음.
sshong@sm.ac.kr
인권위를 향한 전례없는 분노와 항의
12·3 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김용원·한석훈·김종민·이한별·강정혜 위원 5인이 2025년 1월 13일에 열릴 전원위원회 의결안건으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상정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 안건에는 대통령 윤석열의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을 필두로 하여, 각 수사기관장들을 대상으로 계엄 관련자 영장청구를 자제하라는 권고가 담겼다. 국회의장에게는 국무총리 탄핵소추를 철회하라고 권고하는가 하면, 인권위의 고유 업무 및 권한과는 상관없는 여러 판단—계엄의 위헌성 및 내란죄 성립 여부, 관할 수사기관 문제, 관할 법원 문제, 탄핵심판 순서와 탄핵심판 절차 정지 등—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기관도 아니고 인권위가 이런 안건을 처리하려고 하다니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실 당시 인권위는 12·3 비상계엄과 관련하여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아 시민사회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고, 계엄 8일 만에 별 내용도 없는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마지못해 발표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죄 피의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안건이 상정된 것이다.
인권위 안팎에서 항의가 폭주했다. 전례없는 수준의 분노였다.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 등 인권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안창호 위원장 및 위원 5인의 사퇴를 촉구했다. 30여명의 전·현직 인권위원들도 긴급히 인권위 앞에 모였다. 최영애 전 인권위원장은 “피를 토하는 분노를 갖고 이 자리에 섰다”며 “한국사회 인권의 보루인 인권위가 바로 설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한국인권학회 및 인권법학회, 인권연구자들은 “인권옹호를 임무로 하고 있는 인권위가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계엄을 동조하거나 정당화하고, 헌법기관과 국가기관의 정당한 활동을 비난하고, 공권력의 집행을 거부하여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내란죄 피의자들의 권리만을 비호하는 권고를 채택하려고 한다니 통탄할 일”이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틀 만에 655명이 서명을 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였다. 인권위 내부에서도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인권위 노조(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 지부)는 인권위의 공무원들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그 어떠한 시도에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했다. 과장급 직원들까지 성명을 발표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그들은 인권위 간부로서 느끼는 자괴감을 전하며 “일부 인권위원들이 인권위를 반인권적 국가기관으로 타락시키는 것을 넘어 위원회 구성원 모두를 ‘내란 공범’으로 내모는 사태를 좌시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전원위원회가 열린 1월 13일, 인권활동가들과 인권위 직원들은 의결을 저지하고자 회의장을 막아섰고, 회의는 무산되었다. 그다음 주에도 전원위원회는 열리지 못했다. 그러나 2월 10일 안건은 재상정되었고 약간의 수정만을 거쳐 결국 통과되고 말았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필자는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로, 가까운 거리에서 인권위를 지켜봐왔다. 인권위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시민사회의 기대수준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그간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권위에 대해서는 항상 날카로운 비판이 가해져왔다. 하지만 이번만큼 분노가 들끓었던 적은 없었다. 그간의 비판은 주로 인권위가 마땅히 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않고 사안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인권위가 외려 마땅한 책무와도 동떨어진 적극적인 행동을 취한 것이다. 위헌적·불법적 계엄으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태에 직면하여 인권옹호를 위해 나서도 부족할 판에, 도리어 인권침해를 주도하고 가담한 계엄 관련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겠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이번 사태는 결코 우연적인 일이 아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쌓여온 인권위의 내부 문제들이 극적으로 표출되었을 뿐이다. 인권위의 두 상임위원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이충상 위원은 판사와 대학교수를 거쳐 2022년 10월 국민의힘 추천으로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었고, 김용원 위원은 검사 출신 변호사로 2023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이충상은 2023년 4월 인권위 상임위원회에서 각군 신병훈련소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라는 권고안을 내는 데 반대했다. 그리고 ‘게이가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행위를 하고 있는데도 스스로 좋아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경우’를 운운하며 “그 게이는 인권 침해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인권위원회가 그것을 인식시켜줘야 하는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소수의견’글을 썼다. 설상가상으로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법원은 이충상의 발언이 혐오표현이라고 봤다.1 또한 그는 2023년 6월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에 반대하며 참사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는 없”으며 “집회의 주최자가 없고 피해자들이 놀기 위해 너무 많이 모였다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해 유족과 시민단체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기도 했다. 한편 김용원은 인권위를 찾아온 군 사망사건 유가족들을 경찰에 불법침입으로 수사 의뢰하는가 하면,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을 인정한 인권위 조사보고서를 진정인 요청에 따라 공개한 건에 대해서도 공개한 공무원의 배후를 색출하고 징계해야 한다며 위협했다. 그리고 인권위 공개회의에 방청객으로 온 기자와 시민단체 인사들을 향해 “기레기들이 들어와서 쓰레기 기사를 써왔다” “인권장사치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명색이 인권위원이 어떻게 이런 행동과 말을 남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인권위 내외부의 격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기행을 이어나갔다.
두 상임위원으로 인해 인권위 회의는 불필요한 말싸움에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였고, 인권위 조사관들이 준비한 안건들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일도 빈발했다. 인권위는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고, 말 그대로 ‘파행’을 거듭했다.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것은 2024년 9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의 임명이었다. 그전에는 송두환 인권위원장이 두 상임위원을 견제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안창호는 보수개신교 내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인물이다. 그는 차별금지법과 동성애가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 서슴없이 해왔고, 양심적 병역거부, 수형자 선거권, 사형제, 낙태죄 등에 대해서 기존 인권위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인사청문회 때 이런 발언들이 문제가 되었지만, 그는 기존의 고위 공직자들과는 달랐다. 표현이 과했다거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며 한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입장을 전혀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진보성향의 언론뿐 아니라 보수성향의 언론까지 한 목소리로 그의 임명에 반대하는 사설을 냈다.2 그리고 2025년 1월, 그는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 이라는 안건이 상정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든 위원장이 되었다.
보수 인사라서 문제인 것은 아니다
혹자는 보수정권하에서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보수적 인물을 선임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인권에는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고 하지만, 사실 정치적 성향이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은 보수적 성향의 이들도 기본적으로 인권위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었다. 가령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국가인권위원장은 현병철 위원장(2009~15)과 이성호 위원장(2015~18)이었다. 현병철 위원장은 인권 경력이 전무한 부적격 인사라는 이유로 시민사회와 학계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재임시절 주로 문제가 된 것은 인권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 정도였다. 이성호 위원장도 고위 법관 출신으로 전문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인권위 혁신위원회를 만들어 회의체제 정비, 인권단체와의 간담회 정례화 등 업무혁신의 기틀을 마련하며 그 나름의 성과를 남겼다. 물론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에서 인권위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위축된 것은 사실이나 보수정치세력이 임명한 인권위원이라 해서 마냥 퇴행적 행보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인권을 보호한다는 인권위 본연의 임무를 충분히 존중하면서,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신중하게 업무가 추진될 수 있도록 견제하는 ‘품격있는 보수’로서 역할했다. 적격성이 우려된 위원들도 주로 인권 관련 전문성이 부족하다거나 무색무취하다는 것이 문제였지 임명된 이후에 특별히 물의를 빚은 사례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윤석열정부하의 이충상 김용원 두 상임위원, 그리고 안창호 위원장은 그동안 보수정치세력이 임명해온 보수 인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안창호 위원장처럼 인권위의 기존 입장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활동을 해온 인사가 위원(장)에 임명된 것부터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인권위 업무를 파행으로 몰고 갔고, 인권위원이라고는 믿기 힘든 발언으로 인권위의 위상을 실추시켰다.
인권위를 다시 바로 세우려면
인권위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유독 중요하다. 그것은 조직의 독특한 역사와 구조 때문이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 사태를 거친 이래 세계는 인권을 ‘보편적’ 이념으로 합의했고, 그 결과 유엔을 만들고 세계인권선언을 탄생시켰다. 이후에도 인종차별철폐협약(1965),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966),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966), 여성차별철폐협약(1979), 아동권리협약(1989) 등 다양한 국제인권규범을 제정했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유엔인권최고대표, 인권이사회,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구를 만들었다. 이른바 ‘국제인권체제’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각 국가에서 보편적 인권이 실질적으로 이행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결국 개별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각국에 설치한 조직이 바로 국가인권기구였다. 국제인권체제가 만들어낸 성과들을 국가별로 이행하는 일종의 ‘위성’ 같은 역할을 하는 기구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2001년 김대중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강제적 집행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인권위는 일반적인 국가기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인권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강제력이 아닌 권고(recommendation)의 효력만 있다. 즉 인권위가 권고를 해도 피권고기관이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인권보장 의무를 준수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인권보호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설득하고 견인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구로서 얼마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강제력이 없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이며 진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도 했다.
물론 인권위의 권고 결정이 존중받지 못하면 인권위가 한갓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게 되는 치명적인 문제도 노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권위는 그렇게 무력한 기구가 아니다. 실제로 인권위 진정사건 및 직권조사에 대한 권고 수용률은 80퍼센트가 넘는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기업이나 사립학교 같은 기관도 인권위의 권고를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 인권위의 권고는 강제 집행력이 전혀 없지만, 그 권위를 존중받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가 권위를 인정받아온 이유로는 인권 개념의 보편화와 시민들의 인식 변화 등 여러 차원이 있지만, 인권위를 구성하는 ‘인물’ 덕도 컸다. 특히 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존중이 인권위의 결정에 힘을 불어넣어온 것이다. 그래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원칙이나 지침은 ‘국가인권기구의 인적 구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 또한 인권위원 선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인권위를 감시하고 비판해왔으며, 인권위원 인선 절차에 대해 수차례 제도 개선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인권위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인권위원장이고 반인권적 발언으로 하루가 멀다고 설화를 일으키는 인물이 상임위원이라면, 누가 인권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까? 작금의 인권위 파행이 너무나도 치명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한번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
전례없는 위기에 빠진 인권위를 되돌릴 수 있을까? 20여년 동안 어렵게 쌓아온 인권위에 대한 존중과 기대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권위원이다. 조만간 임기가 끝나는 위원들이 있고, 상임위원 3명도 일년 내에 모두 교체된다. 시민사회의 존경을 받고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인권위원다운 인권위원이 임명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2009년 ‘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과 ‘인권위 독립성 수호를 위한 교수 모임’에서 작성한 「국가인권위원장 자격 가이드라인」은 인권위원(장)의 자격 기준으로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 △비정파성 △인권위 독립성 수호에 대한 의지 △인권위의 성과를 계승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 △국제인권기준을 국내에 실현할 의지 △국제사회와 시민사회에서 존경받고 상호협력할 수 있는 자질 △도덕적 청렴성 등을 제시한 바 있다. 2025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다. 인권위원 지명·선출권을 가진 대통령, 국회, 대법원은 반드시 적격자를 선임해야 한다.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이미 시민사회와 학계의 충분한 검토를 거쳤고, 관련 법안도 여러차례 제출된 바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권위를 헌법기구화해야 한다. 헌법개정을 통해 인권위를 헌법기구로 격상하고 헌법에 그 역할과 기능을 규정한다면 제도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헌법개정 이전에도,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관련 법령의 개정을 통해 인권위의 재정적·조직적 독립성을 강화하고, 인권위원 선임절차를 법제화해야 한다. 특히 인권위원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소수자와 인권취약계층의 대표성이 충분히 강화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권위원으로 적격자가 선임되고, 법과 제도가 개선되려면 결국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사실 인권위는 정치권이 큰 관심을 가질 만한 조직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권력의 입장에서는 성가신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권이 존중되는 품격있는 국가를 위해서는 인권 전담 독립기구가 정상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대통령, 국회, 사법부가 적격자를 임명·추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또한 이런 인권위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힘을 가지려면 인권의 주체인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2000년대 초 천신만고 끝에 인권위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의 힘이었고, 인권위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의 힘이었다. 그리고 2025년 수렁에 빠진 인권위를 다시 정상화하는 것도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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