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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선진 李先鎭
1995년 인천 출생. 2020년 『자음과모음』으로 등단.
소설집 『밤의 반만이라도』 등이 있음.
firstrue320@naver.com
천진한 사이
225에게 이이오가
track 13
2011년은 지번주소에서 도로명주소로의 대대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해였고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가 방영을 시작한 해였고 무엇보다 이이오가 스물셋 인생 최초로 펜팔을 만난 해였다. 자고로 펜팔이란 우편배달부를 매개로 편지를 주고받을 뿐 얼굴을 마주할 일은 아마 영영 없을 텐데도 이이오는 누나가 스무장 남짓 쓰다 남긴 스프링노트를 대충 찢어 마련한 편지지 첫줄에 “225, 만나서 반가워”라고 적었다.
225라는 숫자는 키도 몸무게도 17171771 같은 무선호출기 암호도 아닌 신발 사이즈로, 암만 다음까페 ‘알럽소라’의 같은 우수회원이라곤 해도 생판 남한테 본명을 알려주는 건 좀 그렇다는 이유로 225가 이름 대신 전한 것이었다. 이름이 좀 그러면 까페 닉네임을 갖다 쓰면 되지 왜 하필 신발 사이즈람? 이유를 물으면 괜히 질척거리게 느껴질까봐 잠자코 있는데 225는 먼저 선뜻 [알다시피 내가 왕년에 좀 달렸거든ㅋ] 하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발 사이즈에는 발 사이즈의 원칙을 따르자면 응당 295라고 불려야 했음에도 이이오는 똑같이 225로 불렸다. 나는 이이오야, 하고 본명을 밝힌 순간 225가 자기 맘대로 그걸 신발 사이즈로 해석해버린 거였다. 학창시절 같은 반 애들이 저건 거의 군함 아니냐, 군함, 하고 놀려댈 만큼 무지막지한 왕발의 소유자인 이이오는 225가 너도? 나도! 하고 오해하는 걸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그로 인해 편지지의 마지막 줄 귀퉁이에 ‘225에게 이이오가’가 아니라 ‘225에게 225가’라는 거짓 문장을 적어넣게 된 걸 딱히 거리끼지도 않았다. 그건 발 길이에 의거해 남자 사람인 이이오를 여자 사람으로 오해한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으니까. 무엇보다 225는 죽은 누나의 발 사이즈이기도 했으니까.
그 무렵 이이오는 세상과, 몇 없는 친구들과, 그리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과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다. 다만 이때의 ‘사이좋음’이란 서로 정답고 친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함께 나란히 섰을 때 이이오의 왼발과 상대방의 오른발 사이의 225센티미터쯤 되는 거리가 딱 알맞게 멀고 좋다는 뜻이었다.
225센티미터, 그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일종의 안전지대로, 이이오는 누군가 그 간격을 좁히려 들 때마다 속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거리를 벌렸다. 흠집 난 레코드판이 같은 구간만 빙빙 맴돌듯 지금은 거의 집에만 처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 신분이긴 하지만 공대 캠퍼스 라이프라는 것에 잠깐 발끝이나마 담갔을 때에는 강의실 맨 뒷자리를 차지한 뒤 일체형 책걸상을 최대한 벽 쪽으로 끌어다 앉았고, 공중화장실에서 소변을 눠야 할 때에는 옆은 물론 옆옆옆 자리에라도 사람이 있으면 오줌보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꾹 참았다. 태평백화점 3층 카파 매장에서 하루 종일 바람막이와 기능성 팬츠와 운동화를 팔다 퇴근하는 엄마를 마중 나갈 때도 예외란 없었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사이 없는 사이’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오셨어요?”
이이오는 달랑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차도와 면한 인도 오른편에서, 그러니까 엄마의 옆에서, 그러나 바로 옆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먼 거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걸었다. 4년도 훨씬 전에 구매한 운동화를 영수증도 없이 반품하러 온 진상고객을 엄마가 마구 험담할 때도, 그러다 말을 뚝 그친 엄마가 푸이이 한숨을 내쉴 때도 225센티미터의 거리를 뒀고 “니 아빠랑 누나가 여 있었으면 당장 데리고 오라카면서 아주 쌍으로 난리를 쳤겠제?” 하고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물음을 건넬 때도 225센티미터의 거리를 뒀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걸어올 때면 이이오는 슬쩍 걸음을 늦춰 뒤로 빠졌다가 이내 다시 엄마의 오른쪽 225센티미터 반경에 붙어 섰다.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으니 걸음도 섞을 수 없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그 누구와도, ‘한걸음만 더 가까이’ 문구가 붙은 매립형 소변기와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사방에서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이이오를 신기해하거나 안쓰러워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했다면 엄마는 그런 이이오를 신기해하지도 안쓰러워하지도 한심해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이오의 조금 먼 곁에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오야, 지금 니 왼발에서부터 내 오른발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노?”
track 12
이이오와 225의 공통점은 꽤 많았다. 일단 발음이 똑같았고(225는 이이오, 이이오도 이이오!) 둘 다 사당동에 살았고(걸어서 15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인데 굳이 펜팔을 한 게 비효율의 끝판왕이긴 했다) 둘 다 트랙에 관심이 많았고(이이오는 록 사운드가 담긴 레코드트랙에, 225는 달리기 선수 출신으로 운동장 트랙에 발도장을 찍은 이력이 있었다) 둘 다 첫째라는 거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이오는 첫째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출내기라는 거였고.
누나의 사망신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러 갔다가 이이오는 자신이 첫째로 기재된 걸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네가 한번 내가 돼봐”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누나의 얼굴이, 골육종 진단을 받고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다가 나중 가서는 몸이라기보다 작고 가볍고 물렁한데 부피감은 어느정도 있는 일종의 덩어리처럼 존재했던 누나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나가 된다는 것은 살과 뼈와 피와 세포의 측면에서도, 언젠가 빵! 하는 클랙슨 소리를 기점으로 불구가 된 마음의 측면에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누나의 아이디로 다음포털에 로그인하기 전까지 이이오는 누나가 이소라의 광팬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으니까. 누나 또한 자신처럼 아빠의 취향을 물려받아 본조비와 너바나와 섹스피스톨즈에 열광하는, 뼛속까지 록커인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
말이 씨가 된다고, 펜팔이라는 걸 시작한 뒤로 이이오의 일과 대부분은 종이 위에서나마 죽은 누나가 되어보는, 정확히는 되어보고자 애쓰는 일이었다. 일단 골밀도가 썩 좋지 않아 보이는 흉악한 해골 그림에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라는 글씨가 프린팅된 티셔츠를 벗어던졌고 한때 세상을 주름잡았던 전설적인 록커들의 레코드를 5호짜리 우체국 택배상자에 싸그리 처박았다. 그리고 이소라의 7집 앨범을 전곡 반복재생으로 하루 온종일 틀어두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누나가 남몰래 흠모했던, 필요 이상으로 센티멘털한 아우라를 풍기며 사람을 홀리는 그 금발의 빡빡머리 뮤지션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미용실에서 앞머리를 ‘조금만 더’ 잘라달라고 하면 곧장 절반이 싹둑 잘려나가는 것처럼 또 너무 가까워져서는 곤란했다. 이소라의 광팬이었던 누나 또한 실제로 이소라의 노래를 들으러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끝끝내 헤비리스너이자 파필드리스너(far field listener)로 남기를 자처했으니까.
그렇기에 이이오는 225가 아직 사연이 뽑히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자신감인지 두달 뒤 2011년 6월 1일 수요일에 함께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 방청을 가자고 했을 때, 그러니 너도 빨리 방청 신청게시판에 네 사연을 써서 올려보라는 문장을 마주했을 때 그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소라짱의 7집은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마스터피스야. 13개의 트랙을 한바탕 달리고 나니까 나는 그냥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방금 처음 만난 러너스하이가 내게 바이, 하고 작별 인사를 한대도 좋아. 분명 그곳에도 사랑은 있을 테니까.
-2006. 12. 18
이이오는 225에게 답장을 하거나 게시판에 올릴 사연을 쓰는 대신 팬까페에 접속해 살아생전 누나가 남긴 글을 화면에 띄웠다. 암세포가 폐와 늑막까지 전이되는 바람에 합격통지서를 받아놓고도 입학을 못했을 뿐 명색이 문창과생이라 그런지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팬심마저도 강한 필력으로, 소위 ‘펜심’으로 설득시키고 있었다. 다만 이때의 펜심이란 글로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는지보다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보통이라면 골수팬의 주접쯤으로 여기고 대충 넘길 법한 글인데도 스크롤을 내려보니 그 밑에는 “성지순례 왔습니다!” 하며 소원을 비는 댓글이 수백개가 넘게 달려 있었다. 그 이유인즉슨 글이 게재된 날짜가 이소라의 7집 앨범이 발매된 2008년 12월 18일보다 정확히 2년 빨랐기 때문이고, 7집의 트랙 수가 실제로 13개였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곳에도 사랑은 있을 거라는 문장이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라는 3번 트랙의 노랫말을 그대로 따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225 역시 그 글에 댓글을 단 사람 중 하나였다. 다만 모두가 댓글의 수신자를 따로 염두에 두지 않았을 때 225는 유일하게 누나를 향해 말을 건넨 존재였다. 허무맹랑한 소원들을 줄줄이 늘어놓기보다는 이희오에게, 닉네임 ‘SAEONGUE’에게 [13번 트랙까지 달렸으면 다시 1번 트랙으로 되돌아가면 되지, 죽긴 왜 죽냐? 인생은 원래 편도가 아니라 왕복인 거야!] 하고 응답해 온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하늘 귀퉁이에 눈썹 모양 달이 걸려 있던 어느 새벽, 누나의 남자친구였던 소담이 형이 아직 해지시키지 않은 누나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와서는 혀 꼬인 소리로 “히오야, 잘 있는 거지?” 하고 물었을 때 이이오는 저도 모르게 까페에 접속해 225에게 일대일 채팅을 걸었다. 그걸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의 가깝고도 먼 펜팔 친구가 되었고.
track 11
몇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며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사람마다 걸음걸이가 제각각이듯 글씨체에도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존재한다는 거였다. 일단 225는 발로 써도 이것보단 잘 쓰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엄청난 악필의 소유자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글씨가 종잡을 수 없이 불규칙한 보폭과 기울기로 괴발개발 앞으로 나아갔고, 그러다 중간에 갑자기 멈춰 서는 것처럼 획의 끝부분에 잉크가 뭉쳐 꾸우욱 눌려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한 점이었다.
다만 225의 필체는 악필(惡筆)인 동시에 악필(樂筆)이었다. 불규칙하면 불규칙한 대로, 불균질하면 불균질한 대로, 무슨 글씨인지 도통 못 알아먹겠으면 못 알아먹겠는 대로 그 안엔 225만의 어떤 멜로디가, 리듬이, 위로 펄쩍 솟구치기보다는 아래로 무지근하게 내려앉는 흥이 인장처럼 찍혀 있었다.
반면 이이오의 경우 누나의 필체를 따라 하려고만 애쓰다보니 언뜻 봤을 땐 멀끔말쑥해도 자세히 뜯어보면 남의 옷을 얻어 입은 것처럼 불편한 모양새였다. 글씨가 종이 위에서 편히 나돌아다니지 못하고 쭈뼛쭈뼛 눈치를 보았다. 한번은 225도 그걸 느꼈는지 “225, 네 글씨는 왜 맨날 깁스를 하고 있니?” 하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 편지, 받는 이가 직접 펴보라는 뜻에서 귀퉁이에 ‘친전’이라고 쓴 걸 225가 자기 맘대로 ‘천진’으로 고쳐 재활용한 봉투에 담긴 그 편지를, 그렇게 자신의 것에서 225의 것이 되었다가 다시 자신의 것이 된 일종의 관심과 애정을 받아든 이이오는 가장 내밀하고 연약하고 무른 공간을 침범당한 것 같아 당혹스러우면서도 왜인지 그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어쩌면 그 불편함과도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의 루틴과 다르게, 그러니까 집과 태평백화점의 딱 중간 지점—이곳은 사람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제발 부탁이니까지만 적혀 있고 문장이 중간에 뚝 끊긴 어느 잿빛 담벼락—까지만 가는 게 아니라 인파로 가득한 백화점 정문까지 엄마를 데리러 갔다. 물론 “오셨어요?”라는 말만 달랑 던진 뒤 함께, 나란히, 225센티미터의 거리를 둔 채 묵묵히 집까지 걸어간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낮이고 밤이고 방구석에 처박혀 두 발 대신 마우스를 놀리는 이이오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날부로 이이오는 원래 자신의 글씨체로 편지를 썼다. 손아귀에 힘을 빼고 나니 마네킹처럼 딱딱하게 서 있던 ㅅ은 체조선수처럼 유연해졌고 어지럽게 펼쳐진 미로 같던 ㄹ도 지렁이젤리처럼 탄성이 생겼다. 방청 신청글은 쓰고 있는 거냐는 질문을 받은 때는 손발은 물론 온몸의 세포까지 뻣뻣하게 굳긴 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희오의 것으로 위장했던 필체가 점차 이이오의 것이 되어감에 따라 텍스트의 톤과 선율과 에센스가 달라져버렸다는 거였다. 누나 된 자로서 누나의 입장에서 누나의 마음을 장착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자꾸만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 마음에 대해서만 끼적이게 되는 거였다. 예컨대 “명색이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는 엄마가 동생 생일에는 카파(Kappa) 운동화를 사주고 내 생일에는 로고에서부터 짭인 게 확 티 나는 나빠(Nappa) 운동화를 사주는 게 죽도록 서운했어”라고 말하지 않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엄마가 미운 자식인 나한테만 진퉁 운동화를 선물해줄 때마다 세상에 홀로 남은 고아가 된 기분이었어” 하고 적어내려간 거였다. “내 몸과 마음에 피가 돌게 하는 이소라의 슬픈 정조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지 궁금해 죽겠어” 하기보다는 스물한살에 요절한 시드 비셔스가 왜 어쩌다 어떤 마음으로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살기엔 너무 빠르고 죽기엔 너무 어리다는 말을 내뱉게 된 건지에 대해서만 빼곡히 써내려간 거였다.
종이 위에 이소라를 향한 사랑을 돋을새김한다는 본분을 잊고 저 멀리 바다 건너 외국 가수 이야기만 신나게 떠들어댔으니 짜증이 날 법도 한데, 225는 자꾸만 경로를 이탈하는 이이오에게 옐로카드를 건네거나 실격을 선언하는 대신 “왕년에 좀 달려본 사람으로서, 이 몸은 살기엔 너무 빠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어쩌면 ‘살기엔’과 ‘너무’ 사이엔 ‘세상이’라는 단어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나는 한발짝 내디딜 힘조차 없는데 세상은 아주 지 혼자 전력질주하고 자빠진, 그런 진퇴양난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답장을 보내왔다.
track 10
오늘은 대망의 ‘첫번째 봄’ 첫콘 D-1.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이 밤을 내 안의 불우와 함께 보내야만 하지. 무균병동처럼 빛바랜 심정으로 소라짱의 노래를 음미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내게 문안인사를 올린다. 굳이 두 발로 직접 좋아하는 사람을 보러 가지 않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필드를 딛고 있을 수 없더라도, 그 사람을 향한 나의 사랑만은 언제나 나와 나란히 있음을. 내 곁에서 떠나가지 않음을. 사랑으로 가득한 이 밤이 다 가버리기 전에 소라짱의 불후의 명곡을 감상해야겠군. 재발? 제발!
-2007. 4. 18
track 9
엄마가 이오야, 이것 좀 봐볼래잉? 하고 문틈으로 사진 한장을 밀어넣은 건 이이오가 벌써 몇주째 감감무소식인 225의 회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펜팔이란 걸 시작하기 전만 해도 눈 뜨고 가장 먼저, 그리고 눈 감기 전 가장 나중까지 한 일이 거실 수납장 한면을 가득 메운 록 LP들을 가나다순으로, 발매일순으로, 아빠와 누나가 좋아했다고 생각되는 순으로 끊임없이 재배열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이이오는 그것들은 내팽개쳐둔 채 우편배달부가 몇시 몇분 몇초쯤 편지를 싣고 올지에 대해서만 골몰하게 되었다.
“뭔데요?”
문 너머의 엄마를 향해 대답하면서도 이이오의 머릿속에는 온통 내가 종이 위에서 뭔가 실수를 저지른 건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짐작건대 자신이 뭔가를 된통 저질렀다면 편지에 “나는 그쪽으로는,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 녹화가 진행된다는 금천구청역 금나래아트홀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눌 거야!”라고 적은 것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음이 훨씬 앞서서 누나의 마음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누나는 상대방을 향한 사랑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누누이 말하던 파필드리스너였으니까. 그러니 ‘누나가 죽었어요’라는 단순 서술에서 한발 나아가 그보다 훨씬 장황하고 있어 보이도록 MSG가 가미된 사연을 구구절절 써대면서까지 방청을 가는 건 아마 누나도 원치 않았을 거였다. 패착은 ‘방향’이었다. 여자 사람의 신체구조를 간과하고는 제멋대로 소변의 방향을 운운해버린 거였다.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임을, 진짜가 아니라 가짜임을, 225가 아니라 이이오임을 밝혀버린 거였다.
“이오야, 시방 니 지금 어데 가고 있는데?”
엄마가 물었고, 곧장 사진을 주워든 이이오가 “네?” 했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전해져 온 사진에 담긴 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앞코에서 휘황찬란한 led 빛이 뿜어져나오는 운동화를 신고 어디론가 해맑게 달려가는 이이오의 모습이었다.
“가긴 어딜 가요. 저 지금 여기 있는데.”
“사진 속에서 말이다. 어디로 뛰가고 있는 건지 니는 알까 싶어가.”
“저야 모르죠.”
“맞나? 그 요즘 기술이 참말로 좋다아이가. 사진관에 가 맡기면 화질도 억수로 좋아진다카던데.”
“해상도를 높이는 거랑 그거랑은 완전 별개, 괜히 돈만 날리는 거예요. 아무튼 전 암만 봐도 모르겠으니까 얼른 다시 가져가세요.”
“니 사진이니께 니가 가지라. 어젯밤에 누나 물건 정리하다가 나온 기다.”
이이오는 누나가 왜 제 사진을 갖고 있어요? 하고 따져 물으려다 엄마가 “미역국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놨으니까 이따 퍼뜩 데워 묵으라잉, 글고 이오야, 해피 버스데이데이!” 하는 걸 듣고는 치미는 말을 꾹 삼켰다. 자신의 생일이 누나의 생일보다 나흘 빠르다는 이유로 누나가 늘 끓인 지 나흘 된, 식혔다 데웠다 반복하면서 맛이 훨씬 깊고 진해지긴 했어도 결코 ‘첫’이 될 수는 없는 미역국을 묵묵히 떠먹어야 했던 게 떠올라서였다.
이이오는 문득 자신이, 지금 여기의 자신이 아니라 아득히 먼 옛날의 자신이 향했던 곳이 대체 어디였을지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이이오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번지는 순간마다 자신의 일기장이 아니라 누나가 까페에 남긴 흔적들을 되짚어보았다. 누나의 225밀리미터짜리 족적에 자신의 295밀리미터짜리 족적을 포개어놓았다. 그때마다 마주하는 게 이이오의 시간과 이희오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있다는 뼈아픈 실감뿐이래도 그랬다.
그 시차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이이오는 오래전 누나가 올린 글들을 딸깍딸깍 숨 가쁘게 쏘다녔다. 조각조각 난 문장들은 그 해상도가 떨어져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전심전력을 다해 행과 행 사이를, 단어와 단어 사이를, 글자와 글자 사이 구석구석을 누비게 되었다.
온밤 동안 그렇게 애쓰던 중 씨디플레이어에서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왔을 때, 순간 이이오는 어쩌면 자신이 향했던 목적지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림짐작해보았다. 누나랑 나를 병행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나름 공대생의 사고체계를 벗고 누나답게 감성 터지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구나. 이이오는 생각했고, 그렇게 똑 떨어지는 결론에 도달하기가 무섭게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이 추월해와 머리통을 빡! 때렸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자신이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한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새로운 피니시라인에 다다랐다.
“너 진짜 어쩌려고 그리로 가는 거냐?”
이이오는 사진 속의, ‘옮길 이’에 ‘빛날 오’라는 뜻 그대로 여기저기 불빛을 옮겨가며 힘차게 달리는, 한곳에 붙박여 있기보다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 최선을 다해 빨빨거리는, 그렇게 무언가를 맞이할 기대감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 있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track 8
여름에는 여름맞이 세일이 가을에는 가을맞이 세일이 겨울에는 겨울맞이 세일이 봄에는 봄맞이 세일이 모두의 몸과 마음을 달뜨게 하는 법. 그러나 1년 365일 동안 무언가를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딱 네번밖에 없다는 건 인두겁을 쓴 백의의 마귀가 혈관에 주삿바늘을 네번이나 다시 찔러넣는 일처럼 슬프디슬픈 사건이지. 처음 느낌 그대로,라는 말은 사랑에게도 고통에게도 늘 공평하게 가닿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는바. 그럼에도 나는 오늘부터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오늘을 맞이할 것을 선언한다. 물론 오늘맞이의 스타트는 소라짱의 나른하고 짱짱한 목소리가 끊어줄 테고.
-2007. 6. 6
track 7
이이오가 우편배달부라는 중간자를 끼지 않고 몸소 두 발로 뛰어 자신의 편지를 배달하기로 결심한 건—여전히 이희오라는 존재자를 중간에 끼고 있긴 했지만—하늘이 파랗게 높아지기 시작한 5월 중순이었다.
그러나 결심이 당장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자의로도 그랬고 타의로도 그랬는데 그중 비중이 더 큰 건 타의였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았다면 9시 반쯤 집에서 나와 우편함에 편지를 꽂아넣은 뒤 10시 20분까지는 원래의 루틴대로 ‘제발 부탁이니’ 담장 앞으로 엄마를 데리러 갔을 테지만, 갑자기 초인종을 마구 눌러대며 “희오야!” 하고 외치는 소담이 형 때문에 노선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희오야, 잘 있니? 거기서 잘 있는 거니? 생일 축하해, 해피 버스데이야!”
“형, 우리 누나 생일 벌써 며칠이나 지났어요.”
“음력은, 음력은 아직 안 지났잖아!”
“아직 안 지났다 치고, 일단 뒤로 좀, 저랑 거리 좀 벌려주세요.”
“이만큼?”
“조금 더요.”
“이만큼?”
“조금만 더요. 아 됐고, 그냥 제가 뒤로 갈게요.”
“이제 됐어?”
“됐고요 형, 제가 누누이 말하는데 이제 제발 좀 그만 오세요. 형 자꾸 이러는 거 알면 우리 엄마 완전히 주저앉아요. 안 그래도 지금 몸도 마음도 성한 데가 없는데 더 없어져요. 뭣보다 형은 형 갈 길 가야지 어떻게 여기만 맴돌아요, 여기에만 있어요. 하다못해 이제 주소도 새로 바뀐다는데, 왜 형만 계속 제자리예요.”
“여기가 뭐 어때서! 그리고, 그러는 너는! 이오 너도 새파랗게 어린 게 복학도 안 하고 매일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서. 너나 나나 뭐가 달라!”
“형이랑 나는 다르죠.”
순간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는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달라? 뭐가 그렇게 다른데?” 하는 소담이 형에게 이이오는 잠시 머뭇대다가 말했다.
“나랑 누나는…… 둘 다 이소라의 광팬이거든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 바람에 결국 이이오는 편지 부치러 가는 걸 다음으로 미뤄두었다. 물론 이때의 변수란 소담이 형의 기습 방문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이이오의 발이 안 떨어지게 만든 건 형이 건넨 말이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수분을 충전해야겠다며 좋은데이 로고가 박힌 소주잔에 수돗물을 받아 홀짝거리던 소담이 형은 이소라의 7집이 한창 재생 중인 씨디플레이어 옆, 어디론가 박차고 뛰어가는 어린 이이오의 모습이 담긴 예의 그 사진을 내려다보며 “이 사진, 전에 봤을 때도 똑같이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 네가 아닌 것 같아. 영혼이 쌩쌩하고 팔팔하고 짱짱해 보이는 게 꼭 다른 사람 같아” 했다.
“이 사진을 알아요?” 하는, 음 이탈까지 날 정도로 다급한 이이오의 물음에 소담이 형은 “알지, 옛날에 너희 누나가 보여줬으니까 완전 알지” 했다. 심지어 형은 사진의 피사체인 본인마저도 모르는 어린 이이오의 목적지까지도 꿰고 있었다. 형의 말에 따르면 그 사진은 가족들이 다 같이 숯불갈빗집에서 외식을 한 다음 지금은 폐업한 종로의 어느 LP 가게에서 ‘너와나’ 베스트앨범을 산 다음 북악공원으로 이어지는 어느 길목에서 찍은 것이었다. 누나가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일단 더 궁금한 쪽인 ‘너와나’의 의미에 대해 묻자 형은 “너희 아버지가 당시 「음악캠프」 디제이인 배철수를 따라서 널배너, 하고 발음을 굴리고 어머니가 너바나, 하고 발음하면 네가 혀짤배기소리로 너와나, 너와나, 하고 자꾸만 따라 하곤 했대. 희오는 그런 너를 따라 했고”라고 말했다. ‘너와나’라는 단어만 들려오면 어린 네가 그쪽으로 마구 뛰어가곤 했다고. 그러니까 지금 네가 달려가는 방향에도 아마 희오가 서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오야.”
플레이어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던 씨디가 멈추고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촉촉하게 흐르고 있던 이소라의 목소리도 잦아든 그 순간, 이이오는 이제 막 현관문을 나서려고 신발을 꺾어 신던 소담이 형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네? 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솔직히 나는 이 노래가 좀 그렇다? 사랑이고 나발이고 뭔 놈의 노래가 들으면 들을수록 센티멘털해져서, 고막이 촉촉하다 못해 척척해져서 도저히 못 들어주겠어.”
track 6
고백하자면 나, 밖에서는 소라짱의 ㅅ자도 안 꺼낸다. 비난은 마, 그렇게나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발자국을 포개고 싶을 뿐이니까. 그것 아는가? 가을은 발라드의 계절이고, 애석하게도 소라짱은 발라더보다는 록커에 가깝다는 결론. 누구처럼 초고음을 내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성량이 우렁찬 것도 아니지만 소라짱의 노래에는 빵 폭발하는 구석이 있지. 바깥으로 분출되기보다는 때로는 내성발톱처럼 때로는 화농성 여드름처럼 안쪽으로 지독하게 곪아드는 마이너스의 에너지가 있지.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같은 장르, 같은 필드 위에 서 있었던 셈.
-2007. 10. 13
track 5
그날 밤 이이오가 애써 쓰고 봉해두었던 편지를 다시 열어 죄다 찢어버린 건 펜팔이라는 행위에 마침표를 찍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다시, 제대로 된 편지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동안에는 이소라를 좋아하는 척한 거였다면 왠지 모르게 이제부터는 진짜로 정말로 진심을 다해 이소라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전까지는 앞뒤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면 이제부터는 조금은 덜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왕 ‘나’ 아닌 ‘너’가 될 거 제대로 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백년 동안 사용되던 지번주소와 갑자기 전면 시행된 도로명주소가 비록 표기상으로는 딴판일지라도 결국엔 같은 곳을 가리키는 것처럼.
이이오는 오래전 엄마가 사다준 카파 운동화를 꿰어 신고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지를 향해 달렸다. 무엇보다 발신자인 225가 종이 위에 “오늘도 잘 있었니?” 하고 쓸 때의 ‘오늘’과 수신자인 이이오가 그 문장을 전해 받았을 때의 ‘오늘’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주라는 시차가 존재했다면, 이제는 그 시차를 좁히고 싶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거리를 0킬로미터로, 0미터로, 0센티미터로, 0밀리미터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고, 막상 목적지에 이르자 이이오는 안전지대를 벗어난 자신의 모습이 급격히 낯설어지면서 역시 괜히 온 건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 살짝만 획을 바꿨을 뿐인데도 친전과 천진으로 그 갈래와 방향과 의미가 나뉘듯, 지금의 용기 없음이 용기 있음으로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희미한 확신을 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이이오의 등 뒤에서 누군가 “너 누구니?” 하고 물어온 건 이이오가 대문 앞에서 한참을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였다.
“저요?”
“그래 너 말이야. 너, 너, 너, 우리 딸 남친이구나?”
“네?”
“아니니? 그럼 누군데 남의 집 앞에서 그렇게 뭐가 마려운 얼굴로 서성거리고 있어?”
“저는…… 이이오인데요. 혹시 225 안에 있나요?”
“응? 방금 전에는 네 이름이 이이오라며.”
“저는 이이오고 걔는 225거든요. 둘이 똑같이 들리긴 해도 엄연히 별개라서요.”
아줌마는 그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문 문턱을 성큼 넘어서고는 “딸, 밖으로 좀 나와봐라!” 하고 외쳤다. 록커를 방불케 할 정도로 커다랗고 우렁찬 소리에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온 건 ‘happening to me again’이라는 문장이 프링틴된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은 여자애였다. 아주아주 찰나이긴 했지만 이이오의 시선이 티셔츠 한가운데에 가 박힌 건 그 꼬부랑글씨의 제일 앞에 있어야 마땅한 주어 부분의 프린팅만 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있었는데 지워졌구나, 하고 전후 사정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만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225로 추정되는 그애는 누군데 갑자기 나를 찾아왔냐고 묻지도 않고 대뜸 “안녕, 만나서 반가워” 했다. 물론 그 말의 수신자인 이이오는 한참을 우물쭈물댈 뿐이었고.
“……이거, 225가 전해달라고 해서요.”
“누가?”
“……225가요.”
“그럼 너는 누군데?”
“저는…… 저도 이이오예요.”
내가 뭘 잘못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참이나 아무런 대꾸가 없던 225는 어느새 손끝으로 쥐었던 부분이 동그랗게 젖어든 그 편지를 손에서 손으로 건네받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편지가 13번지가 아니라 31번지로 잘못 갔대서 찾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네가 직접 왔구나?”
서로 발음이 똑같은 ‘225’와 ‘이이오’ 사이에 대체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물어오지도 않는데다 한달 넘게 답장이 요원하던 이유가 고작 우편배달부의 실수였다는 사실에 다소간 맥이 빠진 이이오는 “그렇구나, 13번지가 아니라 31번지로……” 하고 중얼거렸고, 사당동 13번지와 31번지의 도로명 새주소는 각각 무엇이 되었을지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225는 “잘됐다. 너 나랑 같이 어디 좀 갈 데가 있는데” 하면서 이이오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 ‘갈 데’라는 게 우리 집인 건가? 싶을 정도로 225가 두 발을 교차하며 성큼 나아가는 길은 조금 전 이이오가 달려왔던 동선과 정확히 일치했다. 완전히는 아니고 절반 정도만.
225가 멈춰 선 곳은 이이오가 혼자서 혹은 이희오와 함께 수백수천번 스쳐지나갔을, 누나의 골육종이 ‘재발’하고부터는 두 단어의 뜻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이 너무 미어져 225센티미터보다 훨씬 더 거리를 두곤 했던 그 ‘제발 부탁이니’ 담장이었다.
225는 곧장 담장 앞에 쭈그려 앉더니 제 옆의 흙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어서 너도 앉으라고 했다. 많이 쳐줘봐야 고등학생 정도로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왜 자꾸 연장자처럼 굴지? 싶긴 했으나 이이오는 약간 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이이오는 원래의 자신답게 상대와 거리를 두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대신 몸에 힘을 느슨하게 빼고 뒤통수를 담벼락의 ‘제발’ 부분에 기대어 앉았다.
“너, 이 뒤에 원래 어떤 문장이 적혀 있었는지 알아?”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이이오와 똑같은 자세로 담벼락에 뒤통수를 기대앉은 225가 물었다.
“나야 모르지.”
이이오가 금이 간 벽돌처럼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고, 225는 실은 나도 잘 몰라, 하고 다소 맥 빠지는 대답을 해오더니 “아니, 실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 하고 잽싸게 말을 바꿨다.
그리고 단 몇초 사이에 ‘잘 모름’이 ‘조금 알 것 같음’으로 전환되던 바로 그 순간, 이이오는 지금 자신이 누군가의 조금 먼 옆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음을, 225센티미터의 거리를 두고 있지 않음을, 두 사람의 발과 발 사이 거리가 기껏해야 한뼘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 주변의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말이야, 맨 처음에는 그 뒤에 ‘꽃을 꺾어가주세요’라는 문장을 적었대. 원래 이 담벼락에 수국이 잔뜩 피어 있었거든. 암투병하다 죽은 집주인 아줌마의 딸이 제일 좋아하던 꽃이 수국이었고. 그런데 아줌마가 한때 KBS 공채 개그맨 최종 면접까지 갈 정도로 웃긴 사람이어서 그런지, 다음 날 멀쩡한 정신으로 다시 보니까 그 문장이 너무 시시해 보이더래. 그래서 이왕 쓰는 거,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머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황당한 문장을 쓰면 어떨까 싶었대. 말하자면 이런 거야. 제발 부탁이니 롯데리아 불고기버거에서 불고기를 쏙 빼주세요. 제발 부탁이니 사당행 열차를 타고 해운대 앞바다로 와주세요. 제발 부탁이니 내 손목시계에서 3부터 4까지를 훔쳐가주세요. 제발 부탁이니 아무도 떠나보내지 않는 송가(送歌)를 엉망진창인 립싱크로 불러주세요. 제발 부탁이니 내게…… 사랑 없는 프로포즈를 해주세요.”
“프로포즈?”
“응, 그리고 얼마 뒤에 진짜로 프로포즈를 받아서 여길 완전히 떴다나 뭐라나.”
이이오가 진짜 아니지? 거짓말이지? 하고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캐묻는 동안 225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흠, 흠, 하고 목을 풀더니 다짜고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곡이 끝나면 또다른 곡을 부르고 그 곡이 끝나면 또다른 곡을 부르면서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맞지 않는 이소라의 명곡들을 줄줄이 소환해냈다. 팬이 돼가지고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이라는 가사를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사랑이 가야 하는 곳’으로 잘못 부르기도 했다.
마침내 노래를 끝마친 225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탁탁 털며 물었고, 이이오는 가긴 또 어딜 가느냐는 얼굴로 그런 225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같이 프로포즈에 가기로 약속했잖아. 정확히는 두번째 프로포즈지만.”
track 4
오늘도 세상이 나를 속이는 것인가? 좀 아까 별밤에 출연한 이소라 모창의 달인이라는 작자는 당장 그 칭호를 내려놓으시길.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내가 발로 불러도 더 잘 부를 것 같은 느낌? 물론 발에는 입도 성대도 없지만, 느낌 아니까! 누구든 소라짱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지만 소라짱처럼 부를 수 있는 건 오직 소라짱밖에 없어. 카피하려고 해봐야 바로 티가 나. 웃긴 건, 그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이 뼈아픈 리듬을 멈출 수 없다는 것. 나처럼 소라짱 흉내를 못 내는 사람은 이 광활하고 드넓은 그라운드 위에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것.
-2007. 1. 23
track 3
2011년 6월 1일, 225가 쓴 사연이 뽑혀 어찌어찌 방청권은 손에 넣었지만 막상 녹화가 진행되는 금나래아트홀까지 가는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일단 사당역에서 4호선 낙성대 방향 열차를 탄 뒤 신도림에서 내려 다시 신창행 1호선 열차로 갈아타고 금천구청역에 다다르는 여정부터가 험난했다. 멀쩡히 잘 가는가 싶다가도 이이오는 중간중간 멈춰 섰고 이따금 맞아, 역시 아닌 것 같아, 하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어느 화장실에나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같은 문구 하나쯤은 붙어 있다지만 그날 이이오의 발자국이 새겨진 수많은 자리에는 그 어떤 아름다움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독차지한 공중화장실에서 금나래아트홀 쪽으로 시원하게 오줌을 눈 뒤, 이이오는 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그날 담장 앞에서 “그거 알아? 사실 나의 첫 펜팔 상대는 너이면서 네가 아니기도 해” 하고 말하던 225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아니면 대체 누구냐고 묻자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225의 환하고 앳되고 얄미울 정도로 천진한 이목구비를.
그러니까 225가 처음으로 “225, 만나서 반가워”로 시작하는 편지를 부친 건 누나가 12차 항암을 받기 불과 몇달 전이었다. 알럽소라 까페채팅방에서 우연히 말을 섞은 두 사람은 그걸 계기로 둘도 없는 펜팔 친구가 되었고, 서로를 서로의 발 사이즈로, 225로 부르게 된 거였다. 피 한방울 안 섞이긴 했지만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이희오가 이이오보다 한발 먼저 “안녕 225, 나도 만나서 반가워”라는 첫인사를 꾹꾹 눌러 적은 거였다. 그리고 그 문장이 4년이라는 시차를 가뿐히 뛰어넘어 지금 여기 이이오에게까지 다다른 거였다.
약속 장소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이이오가 무게중심을 잃으며 기우뚱 멈춰 선 건 우선 이제껏 한번도 보지 못했던 소담이 형의 걸음걸이가 생각나서였다. 어젯밤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 225와 헤어진 뒤 집에는 안 들어가고 사당역 인근을 서성이는데 공교롭게도 어떤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모텔로 들어서는 형을 목격한 거였다. 자꾸 제자리만 맴돌지 말고 다른 데로 가라고 하긴 했지만 막상 다른 여자와, 누나랑 다르게 키도 크고 다리도 일자로 쭉 뻗은 여자 사람과 함께 삐까번쩍한 모텔 문턱을 넘는 형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게다가 밤 11시가 넘었으니 대실도 아니고 숙박일 텐데, 숙박의 경우 대실과는 차원이 다르게 긴 시간이 주어질 텐데, 새파랗게 멍든 밤과 시시콜콜한 새벽과 이중 암막커튼 사이에 낀 빛처럼 희붐한 아침과 나른하게 아물어가는 낮까지 모두 풀세트로 주어질 텐데, 그 시간 속에 몸을 맡긴 형의 마음을 상상하다보면 좀처럼 발길이 안 떨어졌다.
또다른 이유는 훨씬 더 간단하면서도 복잡했다. 그건 만약 오늘의 만남이 성사될 경우 자신과 225 사이에는 그 어떤 중간자도 끼어들 수 없음을, 225라는 고유한 단독자로부터 225센티미터는커녕 단 1밀리미터도 벗어날 수 없음을 예감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우연이었는지는 몰라도 누나가 아직 발매되지도 않은 이소라 7집 앨범의 세부사항을 속속들이 꿰고 있던 것처럼 이이오 또한 자신의 미래를, 평소답지 않게 누군가와 나란히 꼭 맞닿고 맞붙고 맞서고 싶어서 안달인 자신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같았더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이고 너인지,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만 물음표를 던졌다면 이제는 ‘나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너인지’로 질문 자체가 바뀌어버렸다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금나래아트홀이 아니라 부산을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널널하게 여유를 두고 출발했음에도 이이오는 그만 약속에 한참 늦어버리고 말았다.
인생이 끝없는 갈림길의 연속이라면, 시간이 흘러 지번주소가 도로명주소로 완전히 대체되고 난 후에도 이이오는 만약 그때 내가 다른 길을 갔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곤 했다. 만약 누나의 21차 항암이 끝난 걸 기념한답시고 다 같이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지 않았더라면, 갔더라도 그날 누나가 자기 대신 왼쪽에, 오른쪽 뒷좌석이 아니라 왼쪽 뒷좌석에 앉았더라면, 그래서 차라리 내가 그렇게 됐더라면…… 하는 생각의 샛길을 끊임없이 걸어들어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2011년 6월 1일, 그날 이이오와 225가 함께 통과한 시간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생각을 조금도, 단 1밀리미터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런 후회도 자책도 원망도 바람도, 좋아지거나 나빠질 일말의 가능성조차도 남겨두지 않았던 그날을 딱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랬다.
너와 내가 이소라 없는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를 처음으로 함께 보러 간 날.
track 2
저 멀리서 육박해오는 사랑이 일러준 사실 혹은 진실 하나. 어쩌면 끝이 난다는 건 멈춘다기보다 옮겨가는 것에 가까운 거 같아. 여기서는 운동장 제일 안쪽 8번 트랙을 달리는 선수처럼 있다가 저기서는 레코드판 가장 바깥쪽 1번 트랙을 달리는 턴테이블 바늘처럼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 당장 여기에 내가 없더라도, 나는 없는 게 아니라 저기에 있을 뿐이야. 그 어떤 경계도 한계도 없이, 너와 나 사이 구석구석을 한걸음 한걸음 누비고 있을 뿐이야. 느낌 알지?
-2007. 12. 18
track 1
하늘이 유독 높고 파랗던 그날 이이오와 225는 이소라를 보지 못했다. 스태프에게 사정을 해서 중간에나마 입장을 하긴 했는데 무대에는 이소라가 아닌 윤종신이 핀조명을 받으며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오늘 초대 게스트가 윤종신이구나, 이소라는 잠깐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갔나보구나, 생각하기도 잠시, 옆자리에 앉은 커플이 “진짜 존나 웃기네. 이소라는 없고 윤종신만 있는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네. 윤종신은 아직 첫번째 프로포즈도 뗀 적이 없는데” 하고 말하는 걸 듣고는 상황이 아예 딴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소라가 모종의 이유로 당일 펑크를 냈고, 윤종신이 그 대체자로 급하게 투입된 거였다.
브라운관에서 픽셀의 배열로 체현된 이소라가 아니라 눈앞에서 진짜로 생생하게 현현하는 이소라를 영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철저히 배반당한 뒤, 금천구청역에서 1호선 광운대행 열차를 탄 다음 신도림역에서 내려 다시 대림 방향 2호선 열차로 갈아타고 사당역에 이르기까지 둘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러다 4번 출구 밖으로 나섰을 때에야 225가 “오늘은 아무래도 날이 아니었나봐” 하면서 장막처럼 덮여 있던 침묵을 걷어냈다.
“난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안 괜찮은 거 빼고 다 괜찮아. 그냥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결국 이렇게 되려고 그랬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혹시, 아주아주 혹시 말이야. 누가 오늘 제발 부탁이니 담장에 ‘이소라 없는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를 보러 가게 해주세요’라고 적은 건 아니었을까, 하는.”
“에, 뭐야 그게.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225가 배를 부여잡고 웃었고 이이오는 그런 225를 따라 웃는 대신 자못 진중한 얼굴로 “아니, 우리 누나 같은 사람이라면 쓸 수도 있어” 하고 말했다.
당연하게도 ‘제발 부탁이니’ 담장에는 ‘제발 부탁이니’ 외의 아무런 문장도 적혀 있지 않았다. 225는 봐봐, 내 말이 맞지? 하고 말하는 동시에 털썩 주저앉더니 땅바닥을 손으로 쓰다듬듯 두드리며 “여기 앉아봐” 했다. 이이오가 전처럼 담벼락에 몸을 기대어 앉자 아니 그렇게 말고! 하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아씨! 그럼 어떻게 앉으라는 건데.”
“이렇게, 벽을 등지고 앉는 게 아니라, 내 등을 등지고.”
“이렇게?”
“그래, 그렇게.”
조금 뒤 대체 왜 이러고 있어야 되냐는 이이오의 물음에 225는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가 하며 “너 이게 뭔지 알아?” 했다. 거기에는 정말로 이게 뭔지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결연함이 깃들어 있었기에 이이오는 약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뭐 하자는 건데?” 하고 웅얼거렸다.
“진짜 모르겠어? 자, 봐봐.”
225가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수그렸다가 쳐들며 말했다.
“이렇게 등만 붙이고 앉으면 카파고, 이렇게 뒤통수까지 딱 붙이고 있으면 나빠야.”
“나빠?”
“그래 나빠. 옛날에 225가 나한테 쓴 편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 자기는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간대도 카파보다는 나빠 운동화를 신고 싶다고. 암만 짝퉁이래도 자긴 그 로고에, 정 없게시리 등짝만 붙이고 앉은 게 아니라 뒤통수까지 오붓하게 만나 있는 모습에 훨씬 더 마음이 간다고. 세상에 사이 없는 사이 같은 건 없다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은 그런 사이도 괜찮은 것 같다고. 사실 방청게시판에 사연도 이 얘기로 쓴 거야. 누나 마음을 어찌나 잘 아는지 살면서 한번도 카파 운동화를 양보한 적 없는 동생이랑 같이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그래서 말인데……”
“……”
“우리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까?”
track 13
그날 조금만 더 그러고 있으며 알게 된 사실은 살아생전 누나의 소원이 이소라의 워스트앨범 발매라는 거였다. 인기 많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한 노래만 추리고 추려서 낸 베스트앨범이 아니라,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까, 조금 엉망진창이거나 아주 엉망진창이어도 되니까 이소라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자신의 발자취를 꾹꾹 눌러 담은 워스트앨범을 내주는 거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온몸을 점령했던 암세포들이 씻은 듯 사라지고 완전관해 진단을 받고 나면, 그렇게 20세(여) 골육종 환자의 삶에서 그냥 이희오의 삶으로 돌아가고 나면, 아니,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온갖 아픔의 흔적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새출발한 이희오의 삶을 마주하고 나면, 그때 두 발로 직접 그 워스트한 노래들을 라이브로 들으러 가는 거였다.
그런데 머지않다는 건 뭐지? 먼 훗날 시간이 흘러 결국 자신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셈인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가 종영하고, 티브이 속에서 이소라가 “머지않아 저의 세번째 프로포즈로 만나 뵐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라는 클로징멘트를 던졌을 때 이이오는 ‘머지않다’는 것이 무엇이었고,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했다. 걸으면서도 생각했고 달리면서도 생각했고 걷는 둥 마는 둥 달리는 둥 마는 둥 한자리에 가만히 오랫동안 붙박여 있으면서도 생각했다. 하루는 생일 미역은 가위로 자르는 게 아니라며 손수 하나하나 미역을 손질하던 엄마에게 “엄마, 머지않다는 게 뭐예요?” 하고 묻기도 했다.
“멀지 않다는 기지.”
“그러면 멀지 않다는 건요? 가깝다는 거예요?”
“가깝지는 아인디, 또 그렇게 막 멀지도 않다아이가. 그런 걸 머지않았다카는 기지.”
“그럼 그게 그거 아닌가?”
“이오 니도 살아보면 다 안다. 그게 그기 아이고 뭐가 그긴지.”
정말로 사랑은 그곳에 있었을까? 살면서 점점 세상과의 사이가 나빠지는 건 물론 자기 자신마저도 돌이킬 수 없이 나빠진 것만 같다고, 걸음을 내디딜수록 점점 더 나쁨의 연속으로 향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이오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라는 노랫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곳이 멀든 가깝든 머지않았든 사랑이 언제나 그곳에 있길 바라는 건 사랑에 한번도 발 디뎌본 적 없는 뜨내기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행여나 그곳에 사랑이 없더라도, 번지수를 잘못 찾았더라도 그 사랑 없음마저도 결국 사랑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무엇보다 오래전 누군가 바꿔 부른 노래 가사처럼, 언젠가 어느 때인가 두 발 달린 사랑이 불현듯 이곳을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렇기에 이이오는 언제 어디서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나간 뒤에도 “여기 사랑이 있네!” 하고 일단 무작정 소리친 다음 뒷일을 미래의 사랑에게 맡겨두었다. 귀퉁이에 ‘천진’이라고 적힌 봉투 속 편지지 마지막 줄에 오래전 누나가 “225, 앞으로도 내 동생 뒤 좀 잘 봐주고!”라는 문장을 너무 나쁘게 그리고 흥겹게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썼던 것처럼.
결코 단순하다고 치부할 수 없는 일련의 해프닝 끝에 225와 뒤통수를 맞댄 그날 밤, 이이오는 집까지 시룽새룽 걷다 멈춰 서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해칠 수 없는 군함처럼 둔중하고 무용한 자신의 두 발과 그 사이를 내려다보며 너와나,라고 중얼거려보았다. 그건 225와 이이오의 발음을 모두 더한대도 끝끝내 내뱉을 수 없는, 가장 뜨거운 순간 초에서 초로 옮겨간 생일 촛불처럼 한뼘만 더 오래가기를 바란들 너무 빨리 멀어져가버리는 환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