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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권준희 『이주, 경계, 꿈』, 생각의힘 2025

사람만이 경계를 넘는 것은 아니다

 

 

박동찬 朴東燦

이주인권 연구활동가,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장

contact_chan@naver.com

 

 

 

2025년은 조선족을 비롯해 중국계 이주민이 전례없이 ‘주목받는’ 한해였다. 언뜻 정권교체로 수습된 듯한 계엄과 내란은 혐오와 적대라는 또다른 모습으로 한국사회를 할퀴고 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조선족이 있다.

그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펴낸 책은 아닐 터이지만 지금의 시의성 때문에 이 책에 눈길 한번 더 보낸 독자들이 분명 많으리라. 『이주, 경계, 꿈』(Borderland Dreams, 2023, 한국어판 고미연 옮김)은 문화인류학자인 권준희의 근면과 성실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로서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연변을 오가며 보고 듣고 생각했던 기록들”(11면)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타 조선족 연구서와는 비견할 수 없을 정성이 담겨 있다.

책은 총 3부 6장으로 구성되었다. 연변이라는 공간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중수교 이후 등장한 ‘코리안 드림’을 둘러싼 주체의 정동을 두터운 서사로 풀어낸다. 조선족의 한국행은 단선적 이주가 아니라 비선형적 시공간을 오가는 삶을 선택하는 행위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떠남과 머묾”(부제 ‘조선족 이주자의 떠남과 머묾, 교차하는 열망에 관하여’)이 교착되어 있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한국에 꽤나 자리를 잡았다 싶은 평자의 조선족 지인들도 돌아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떠나기 위해 머물고, 머물기 위해 떠난다. 당사자조차도 혼돈을 느끼는 그 딜레마와 아이러니를 저자는 몸, 돈, 시간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한국과 연변을 가로지르는 돈의 경로, 젠더화된 한국의 일터와 연변의 가정을 오가는 여성들의 몸, 비자제도에 맞춰 국경을 넘어갔다 넘어와야 하며 ‘기다림’마저도 노동의 일부가 된 이들의 시간성이 저자의 오랜 현지연구를 통해 조명된다.

일제강점기 식민의 산물로서 조선족 공동체가 태동하고, 귀환한 조선족이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에서 ‘외국인노동자’로 기여해왔다는 서사는 흔히 알려져 있다. 거기에 더해 조선족 디아스포라가 통일의 마중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끔 보인다. 그 가운데 이 책의 미덕은 조선족의 과거, 현재, 미래를 분절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대안적 인식틀을 제공하고 있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주, 경계, 꿈’은 과거, 현재, 미래에 조응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다만 저자도 말하듯이 “에스노그라피라는 장르가 지닌 현재성의 문제”(16면)와 맞닿은 아쉬움도 있다. 저자가 연변과 한국을 오가며 기록한 시점과 독자가 책을 통해 조선족을 알아가는 시점 사이에는 10~20년이라는 틈새가 있어 ‘지금 여기’의 조선족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2015년 한국으로 이주한 평자에게도 책 속에 언급된 사례들은 기시감보다는 미시감을 느끼게끔 한다. 한편 조선족의 다양한 결을 고려하자면 이 책에서 시종일관 사용되는 ‘조선족’이라는 통칭은 맞으면서 틀리다. 엄밀히 따지면 ‘연변 조선족’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연변은 지린성(길림성)의 지명으로 중국 내 여타 지역에 비해 조선족의 거주 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조선족자치주로서의 특수한 위치를 부여받은 곳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국사회는 조선족 하면 바로 연변을 호명하고 자칫 모든 조선족이 연변에 모여 살 거란 착각을 만들어내곤 한다.

조선족은 대개 중국에서 동북 3성으로 불리는 랴오닝성(요녕성), 지린성(길림성), 헤이룽장성(흑룡강성) 곳곳에 분포해 살고 있다. 상대적으로 밀집한 연변을 집거(集居)지역으로 부르는 대신 나머지 지역은 흩어져 산다는 의미로 산재(散在)지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언뜻 느슨해 보이는 이 구분은 단순히 제도와 정책의 상이를 넘어서 외부 관찰자에게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 지역감정 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한국과의 상호작용을 살핌에 있어서 조선족의 중국 내 출신지는 간과 못할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1992년 한중수교 후 재외동포의 고국 왕래가 제도화되지 못한 시점에 3개월 친척방문 비자를 통해 한국에 입국할 수 있는 요행은 산재지역 조선족에게 더 많이 주어졌다. 이유인즉슨 연변지역 조선족의 절대다수가 이북 함경도 출신인 데 반해 산재지역 조선족은 경상도·충청도·전라도 등 남한에 뿌리를 둔 경우가 많아서였다. 결국 이것은 초청장을 써줄 친인척의 유무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내부 변수는 이 책을 비롯해 그동안 축적되어온 조선족 연구에서 그다지 고려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책을 통해 일면을 경험한 독자들이 그것을 ‘조선족’으로 뭉뚱그려 환원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점이 있다. 책은 “한국어는 조선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76면)고 서술한다. 「청년경찰」(2017), 「범죄도시」(2017) 등 그간 한국의 대중미디어가 조선족을 소비하는 방법은 일관적이었고 잔혹한 범죄자 캐릭터는 하나의 클리셰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악당을 조선족과 연결짓는 장치로 꾸준히 등장하는 게 바로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말투이다. 즉 이질스러운 ‘한국어’를 통해 조선족을 구분하고 타자화한다. 그런 점에서 조선족이 사용하는 언어를 ‘한국어’와 동일시하는 게 바람직한지 생각해봄직하다. 중국 내에서 ‘조선족’이 어떤 멸칭이 아니라 ‘한국(한반도·조선반도)계 중국인’에 대한 공식호명인 것처럼, 조선족이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같은 면) 생각하는 언어도 ‘조선어’라는 공식명칭이 있다. 조선어는 가정에서, 또 조선족학교에서 ‘조선어문’ 교과서를 통해 학습된다. 문법적인 측면을 따지더라도 조선어는 이북의 문화어에 가깝지 결코 한국어가 아니다.

여건상 저자의 영문 원저를 일독하지 못했지만 ‘한국어’는 ‘Korean’에 대한 당연한 번역 수순을 밟은 것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조선족을 비롯한 재외동포,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제의 온전한 이해는 ‘Korea’ 또는 ‘Korean’에 대한 해석이 복수로 존재하고, 최종적인 해석권이 당사자 주체에게도 주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참고로 최근에는 조선족을 ‘Korean Chinese’ 대신 중국어 병음 그대로 ‘Chaoxianzu’(차오셴쭈)로 표기하는 경우도 간간이 눈에 띈다. 조선족 공동체의 특수성을 고려한 용어가 번역과정에서 선택되었다면 “조선족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12면)라는 질문도 더 다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고삐 풀린 ‘혐중’은 사람과 사물의 자리를 도치시킨다. 국가는 물론 중국과 관련된 모든 사물이 의인화되어 혐오의 표적이 되는가 하면 사람은 존재와 목소리를 소거당한 채 한없이 납작해진다. 『이주, 경계, 꿈』은 그렇게 납작해진 사람의 형상을 복원하는 작업이며, 생생한 조선족의 삶과 애환을 만날 수 있는 양서이다. 그리고 활자세계를 넘어 일상 가운데 그들과 진짜 대면하기 위한 가이드북이자 사전학습이다. 혐오의 시대를 어떻게 건너야 할지가 시대의 화두다. 뻔하고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만나고 연결되어야 한다. 후학으로서 저자 권준희의 필력과 연구력은 물론이거니와 12년간 연변을 오가며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했던 마주침과 관계맺기의 기술까지도 본받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