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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지우 金智雨
1963년 전주 출생. 2000년 제3회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작품으로 「눈길」 「물고기들의 집」 등이 있음. jireesan@hanmir.com
디데이 전날
영감의 디데이를 하루 앞둔 오늘 아침 우리는 부쩍 짜증이 났다. 황영감 솜씨가 도시 예전 같질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영감 하는 걸로 봐선 차려준 밥상도 못 받아먹을 판이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오른쪽 다리를 바퀴 앞에다 슬쩍 밀어넣고 절묘하게 나동그라지던 예전 솜씨는 온데간데도 없었다. 번번이 기막힌 찬스를 놓치고 한발 앞서 뛰어들거나 어물쩡거리다 뒤미처 밀어넣는 식이었다. 그러곤 아이고 내레 죽네, 내레 죽가서, 엄살소리만 되우 요란했다. 한낱 바람잡이에 불과한 나조차도 지극히 불안하고 초조한 마당에 영감과 한 꿰미에 엮여 밤낮없이 돌아가는 칠범씨야 애가 탈 노릇일 것이다. 연습부터 이렇듯 파장이 나는 판에 막상 실전에 부닥쳐 잘해내리라는 보장이 있겠는가를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했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자해공갈이라는 게 눈을 부릅뜨고 긴장을 해도 순간적으로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자칫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어수룩한 꼴이라도 보이는 날이면 뉘 오랏줄에 줄줄이 묶여갈지도 모르는 판이다. 더구나 이미 한 건 벌여둔 일조차 협상이 뜻대로 안되고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 쉬워 꾀병환자 노릇이지 이 더운 여름날에 사대육신 멀쩡한 사내들이 더는 못할 짓이었다. 이래저래 우리는 지치고 맥이 풀려버렸다. 우리가 뱀 허물 벗듯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붕대들이 밝은 햇살 아래 걸렛조각처럼 널브러져 있어 궁상기마저 더했다. 그 참에도 칠범씨만이 여태 미련을 못 버리고 제 성질껏 영감을 다그치며 막판 연습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봤자 하나마나한 허탕짓거리일 것, 저만치 서서 굿이나 보겠다는 시늉으로 나와 경범씨는 그들로부터 멀찌감치 비켜선다.
“자, 보행자 신호 들어왔고, 우회전 차가 저만치서 달려온다, 서울은행을 지나고 파리바게뜨를 지나서 공일일 대리점 앞으로 바짝 붙어온다, 저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온다, 영감 뛰어들 채비하고, 이미터, 일미터, 횡단보도 정지선, 끼익! 운전자 급정거했다, 영감 뛰어들고! 오른쪽 다리 갖다대고! 아따 참말로 미치고 팔딱 뛰겠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영감은 길바닥에 덜퍼덕 누워버렸다. 여지없이 칠범씨의 타박이 또 속사포로 날아갔다.
“요번엔 어째 또 그 모냥이다요? 뭣 땜시 고러고 또 벌러덩 나자빠져버리냔 말요? 참말로 혼자 보긴 아깝고만. 고러고 네활개 치고 뻗어 있응께 뭣 같은 줄 아요? 꼭 깨골딱 하고 숨넘어가는 깨구락지 같소. 영감이 생각해도 우습소? 어째 그요? 이 장사 한두 번 해보요?”
“하, 기것 참, 내레 와 이러디? 전 같닪고서리.”
“그래갖고 퍽이나 잘도 죽겠소. 요번 참엔 죽겠네 말겠네 소리는 일절 하들 말란 말이요. 그냥 죽은 듯이 눠만 있으라 해도 어째 미운 시살배기마냥 징그럽게 말도 안 듣고 그요?”
“아이구나, 내레 또 깜빡했구나 야. 와 이러디 덩말?”
“노망 들랑갑소. 내동 잘하던 짓도 못하고. 어쩌끄나. 인자 가고 싶은 디도 다 갔소.”
“말이래두 기러디 말라우.”
칠범씨의 야죽거림에 안 그래도 오그랑방탱이 같은 영감 얼굴이 대번에 실쭉해졌다.
“글먼 잘해야제. 거기가 그렇게 쉽게 가지는 데다요 어디?”
칠범씨가 내처 놀리고 들자 영감은 표정마저 뚱해졌다. 곁에서 그냥 보자니 장난 반 웃음엣소리 반으로 붙인 불이 자칫 노한 바람을 탈 기세였다.
“칠범씨가 웃자고 하는 소리지, 그 연세에 노망이라니요.”
내가 칠범씨를 역성들며 영감을 말리고 나서자 영감이 뚝뚝하게,
“내레 고거이 서운한 거이 아니구 저가 뭔데 간다 못 간다 하냔 말이디.”
하고 속엣말을 툭 내뱉었다. 칠범씨가 무안했던지,
“영감 성미하고는. 그러니까 내가 노망났다 하제. 사람 말귀도 못 알아먹고.”
하는 것을 경범씨가 눈을 끔벅해 눈치를 주더니, 합죽이가 됩시다 합! 하고는 해죽이 웃었다. 어이가 없는지 칠범씨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 참. 우리가 애기요?”
“그러고저러고 잠깐 쉬었다나 합시다.”
“그럽시다. 안 그래도 하도 떠들어댔더니 목구멍이 컬컬한 참이요.”
우리는 한적한 그늘을 찾아 신축건물 공사장 뒤편에 아무렇게나 퍼져 앉았다. 바람 한줄기 일지 않았다. 아침부터 맹렬한 기세로 더위가 몰려들고 있었다. 우리는 담배조차 기신기신 꺼내 내 불은 내가 붙여물고 네 불은 네가 붙여물었다. 그러고는 노숙을 하던 습성대로 각자 요령껏 알아서 눕거나 기대거나 했다. 말을 하는 것도 주고받는 것도 귀찮아 우리는 각자 담배만 퍼걱퍼걱 피워댔다. 어느덧 거리는 출근하는 차량들로 붐벼나고 있다.
부스스한 침묵을 먼저 깬 건 영감이었다. 바지춤을 움켜쥐고, 내레 밭에다가서리 거름 좀 주구 오가서 하고는 영감 키보다 훨씬 더 후리후리한 옥수수밭 사이로 스며들어갔다. 칠범씨가 한동안 차량 움직임을 묵묵히 지켜보더니,
“저놈들 중에 한 놈인디, 나만치로 드럽게 재수없는 놈 한 놈.”
혼잣소리인 양 야살을 떨었다.
“칠범씬 저러고 안 살았소? 저러고 아침 일찍 나가서 벌어먹고 말이요.”
“묵은 얘긴 하들 맙시다. 고러고 살아봤자요. 당신들도 살아봤잖수. 세상은 말이요, 바로 저런 놈이 잘사는 데란 말이요.”
우리는 일제히 윗몸을 일으켜 칠범씨가 가리키는 ‘저런 놈’을 바라보았다. 주행신호를 받고 서서히 움직이는 차량들 틈새로 중형승용차 한 대가 갑작스레 두 개 차선에 걸쳐 끼여들기를 시도하는 통에 나머지 두 개 차선 차량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쭉 밀려 서 있었다. 여기저기서 급하게 울려대는 경적소리가 사뭇 요란해도 아랑곳없이 ‘저런 놈’은 기필코 후진과 직진을 반복하더니 이윽고 제 갈길로 부리나케 달려가버렸다.
“저런 죽일 놈이 있나.”
딱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주먹질하듯 단박에 터져나온 소리가 그랬다.
“내일 아침에 꼭 저런 차나 한 대 걸려야 할 텐데.”
하는 경범씨 말에 칠범씨가,
“넷이서 아주 작살을 내주게? 아따, 그럴라면 형씨 둘이서 망을 아주 단단히 봐줘야 쓰겠소.”
하고 은근히 부채질하자 경범씨가 대번에 흔쾌히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그럽시다. 까짓 망보는 게 어렵겠수?”
그런데 모처럼 의기투합해서 기탄없이 웃고 떠드는 틈새를 타 경범씨가 조심스레 우려를 표명했다.
“이나저나 영감님 사정 봐주려다 까딱하면 줄초상날까 겁나는데요. 우리 일 엮어둔 것도 있는데.”
“줄초상이야 나겠소마는 영감이 어째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오. 아직 하루 더 남았응께 두고 봅시다.”
하는 칠범씨 얼굴빛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영감 일이라면 무조건 영감 역성부터 들고 보는 칠범씨인지라 말을 꺼낸 사람도, 미적미적 대답을 하는 사람도, 중간에서 그 둘을 지켜보는 나도, 서로간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경범씨가 무슨 말인가를 덧붙이려다 칠범씨가 하루만 더 지켜봅시다, 하고 얘기 가닥을 추스르자 그냥 마는 것 같았다. 현재 상황으로선 역시 그 수밖에 없다는 게 우리 모두의 판단이기도 했다.
소변을 보러 갔던 영감은 빈터에 가꿔진 남의 채마밭 구경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생판 남의 밭일지라도 푸성귀들마다 실하게 살이 차고 성긋벙긋 넘실대는 게 오지고 좋아 뵈는 모양이었다. 영감 좋아하는 꼴을 가만히 놔두고 볼 칠범씨가 아니었다.
“영감, 담배도 안 태우고 뭐 하요? 삐쳤소?”
“삐치기는 야 내레 와 삐치기? 좋아 봬서리 그러디 않간?”
“넘의 것 좋아봤자 배나 아프지, 졸 게 뭣이 있다요?”
“내레 고향이 평안남도 평양시 선교리 98번지 보통강 근처 남새밭 아니가서?”
“그요? 그래서 시방 고향 생각하요?”
정말로 고향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영감은 대답이 없었다. 예감이 이상했는지 칠범씨가 공사장 철제빔에 엇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가만?”
“………”
“아따, 쪼까 쳐다보쇼 영감. 그런가만?”
칠범씨의 보챔을 받고서야 영감이 마지못한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기러면 머 하가서?”
“머 하가서는 무슨. 두말 않고 두만강 건너가버리면 그만이지. 안 그요?”
별다른 생각도 없이 몽총히 앉아 있다 불쑥 칠범씨가 뒷짐 지우듯 동의를 구해오자 당혹스러웠다. 평소에도 칠범씨 말이 그 괄괄한 성격만큼이나 익살스럽고 엄벙부렁한 데가 있어 농인가 싶으면 참이고, 참인가 싶으면 농인 때가 많아 말가닥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기러기가 어디 말처럼 쉽간?”
부질없는 소리라는 듯 영감이 해망쩍게 웃었다.
“어려울 건 또 뭐다요? 돈만 있으면 되지. 돈 갖고 안되는 일 있으면 시팔, 한번 나와보라고 하쇼. 지금 세상은 돈 있으면 귀신도 부리는 세상이요.”
“그 말은 맞소.”
경범씨도 나도 그 말엔 즉각 동의를 했다.
“보쇼, 다들 맞다지 않소? 근게로 요참에 잘해야 쓰겠소 안? 제발 깨구락지처럼 나자빠지지 좀 말고.”
“걱정 말라우. 내레 지금은 요래봬두 막상 시작하믄 잘할 거이야 야.”
“퍽도 속도 편하요. 시방 걱정 안하게 생겼소?”
“기보다두 이참에 내레 얼마나 받을 수 있가서?”
“아따, 고거는 나중 일이고. 염불보다 잿밥이라더니 영감이 꼭 그 짝이요. 우리 어쩔까요? 한번 더 연습을 해볼까요 말까요?”
순간 경범씨와 나는 즉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필요성은 느끼나 그리 적절하거나 내키지는 않는 제안이었다. 이젠 출근차량들로 거리가 번잡해진데다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 또한 조심스러웠다. 영감 깜냥에 우리 둘의 눈치가 석연치 않았는지 영감이 먼저 탈탈 털고 나섰다.
“걱정 말래두 기러는구만. 내레 실전 가믄 안 기렇데두.”
“시방 영감 하는 걸로 봐선 딱 잡혀갈 깜이니께 안 그요?”
“잡혀갈 테면 아예 말아야지.”
이거야말로 순전히 찬조출연이지 여기서 몇푼이나 얻어먹는다고 잡혀갈 짓을 해? 하고 경범씨가 계속 고시랑거리자 칠범씨가 의리 좋다는 게 뭐요? 하고 제법 어기차게 경범씨를 나무랐다. 나는 경범씨와 내내 같은 생각이었지만 섣불리 의중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대신 조심스레 병실로의 귀가를 재촉했다.
“우선 병실부터 들어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요새 보상과 직원 눈치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디다.”
“그 인사는 생긴 것도 꼭 쥐새끼처럼 생겨갖고 뭣 땜에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그러고 야단이디야.”
“한들 어쩌겠어요. 우리가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풀어놨던 붕대들도 다시 감고 채비합시다.”
서둘러 채비를 마친 우리는 다시 팔병신, 허리병신이 되어 두달 전에 오십만원씩에 사들인 헌털뱅이차 두 대에 분승하여 분주한 아침 거리를 벗어났다.
텅 빈 병실을 허수아비처럼 지키고 앉았다 우리를 맞은 건 뜻밖에도 병원 사무장이었다. 아침부터 누구한테 된통 당하기라도 했는지 그는 잔뜩 부아가 치밀어 있었다. 톡 불거지고 빼쪽해진 눈에다, 입은 벌렸다 하면 따발총을 쏠 듯한 기세였다. 느낌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무래도 보상과 직원이 급습을 한 게 아닌가 싶어졌다. 우리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부랴부랴 외출복을 벗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 틈에도 칠범씨가 사무장을 두고 넉살좋게 엉너리를 쳤다.
“그런디 사무장님이 뭐 땜시 요러고 아침부터 경복궁 궁지기가 되셨다요?”
“몰라서 물어요? 내가 왜 궁지기 노릇을 해야 하는지. 왜들 그렇게 병실은 비우는 겁니까? 한바탕 개지랄을 하고 갔다구요. 순 나이롱환자들 아니냐고.”
우리는 서로 황망히 눈을 마주쳤다. 역시 보험회사 직원이 기습을 한 것이었다.
“어떤 놈이 그래요? 우리가 나이롱환자라고? 나이롱환자가 이 무더운 여름날 허리수술 받고 팔에 깁스한답디까?”
경범씨가 석고붕대로 휘갑친 팔뚝을 되알지게 밀고 나오자, 칠범씨가 꾀바르게 거들고 나섰다.
“아침운동 쪼깨 하고 왔더니 그새 무슨 사단이 벌어진겨? 아침 기분 드럽고만. 아, 우리사 아프니까 아프다고 했고, 입원하래니까 입원했고, 수술하래니까 했을 뿐인디, 뭔 잡소리여?”
사무장이,“우리야 알죠. 그러니까 병실을 비우더라도 한낮에 잠깐씩만 비우란 말이요. 그것도 까치새끼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지 말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하다가 예순 줄을 넘겨 일흔 줄에 명부 둔 노인까지 있는 마당에 까치새끼들이란 표현이 본인 귀에도 거슬렸는지 말매듭을 못 짓고 겸연쩍게 웃었다.
“아침운동을 하고 왔단께 그요. 운동을 부지런히 해줘야 쉽게 낫는다고 원장선생이 안 그럽디요? 아주 까놓고 말하면 답답시럽기도 하고. 사무장님도 한번 생각해보쇼. 벌써 두달짼디, 일도 못하고, 뭔 재미가 있겠소?”
“그래도 조심하시는 게 낫지. 걔네들이 나이롱환자를 한두 번 겪어봤겠어요? 걔네들은 척하면 삼천리라니까. 통박 굴리는 데는 선수라구. 내가 입원하던 날 안 그럽디까? 합의가 될 때까지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칠 거라고. 나중에 우리 병원까지 덤터기 쓰는 일은 없도록 해주셔야지. 생각해서 원장님이 수술까지 해주셨는데. 그만 식사들 하고 쉬세요.”
사무장이 병실 문을 닫아주고 나가려 하자 칠범씨가, 식사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긴디, 병원밥이 가다밥보다야 백배는 낫지마는, 그야 넘의 살이 섞였을 때 얘기고, 넘의 살이 안 섞이고 풀밭에서 뒹굴라니까 영 맹탕입디다, 이래저래 형편이 어렵다본께 여자고기 맛도 못 보고 사는디, 사모님께 허구한 날 멸치대가리만 진상 말고, 자축인묘진사오미 어쩌고 하는 십이지 고깃살 중에, 다는 말고 몇개씩만 돌려가며 보시 쪼까 하라고 하쇼, 하고 너스레를 떨어 사무장 뒤통수를 여지없이 쳐버렸다. 사무장이 자신은 아는 바가 없다는 듯, 고기반찬이 그리 없어요? 말을 한번 해야겠네, 하더니 머쓱하게 웃고 나가버렸다. 자해 교통사고 칠범인 칠범씨가 이 병원에 단골로 드나들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병원밥을 납품하는 사모님이라는 이가 사무장 안사람이었던 것이다.
칠범씨의 본래 이름은 강형만으로 전라도 어디에서 개인택시 운전을 했다고 한다. 그 개인택시 면허라는 게 무사고 운전, 장기근무 연수로 주어지는 게 원칙이었으나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우선 순위가 따로 있었다. 구청이나 시청 교통과 소속 직원들 중에 퇴직을 하고 나오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없는 놈 억지돈 만들어 밀어넣고 계 탈 순서 기다리듯 이제나저제나 하고 목매고 살던 칠범씨는, 그러나 번번이 그들에게 밀려나곤 했는데, 급작스레 전쟁 터지듯 난데없이 IMF가 터지자 그 순서는 한정없이 밀려나버렸다. 할 수 없이 칠범씨는 시골 노모를 졸라 농사짓고 살던 상답논 열 마지기를 팔고 사채를 얹어 웃돈을 주고 개인택시 면허를 샀다. 그런데 그만 비좁아터진 골목길에서 후진으로 차를 돌려나오려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던 어린애를 덜커덕 치어버렸고 아이는 현장에서 즉사해버렸다. 칠범씨에게 IMF는 그렇게 지랄맞게 왔고, 빚만 잔뜩 짊어진 채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그는 서울 부산 등지를 떠돌다 마침내는 동전 한닢 없는 노숙자가 되었고,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노숙을 하다 경범씨와 나에 앞서 영감을 만나게 되었다.
얼금뱅이마냥 얼굴이 얽어 있는 영감은 전쟁통에 미군기의 평양 시내 폭격으로 아버지를 잃고 형제들과는 뿔뿔이 흩어져 단독으로 월남한 이산가족이었다. 북에는 폭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어머니와 당시 원산 쪽으로 출가했던 누님 두 분과 인민군으로 소집되어갔던 형님 한 분이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고 했다. 영감이 남쪽으로 내려와 했던 고생은 너무도 극심해서 노숙을 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처지에 앞서 영감의 지난날에 더욱더 가슴 저려했다. 영감은 언젠가 통일만 되면 북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남쪽에다는 땅 한 뙈기 안 사고 고집스럽게 현금만 보유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밤중에 느닷없이 영감이 살던 비닐하우스에 원인 모를 불이 나고 삽시간에 비닐하우스 스무 동을 다 태워버렸다. 한순간에 영감은 알거지가 되어버린 것이다.IMF에 앞서 떠돌이 노숙자가 된 영감은 그 뒤로 달려오는 차에 기술적으로 몸을 부딪고 돈을 갈취하는 이들과 연결되어 푼돈 몇푼에 몸을 내던지는 늙수그레한 자해공갈단원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왔다고 했다. 오다가다 만난 여자와 어찌어찌 해서 살림도 차리고 아들도 하나 두었나본데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아들 얘기만 나오면 일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추측컨대, 아들이 번듯하게 성장하지는 못한 듯싶다.
경범씨와 나는 그들을 우연히 만났다. 서울역 부근 남영동에서 숙명여대 쪽으로 꺾어지는 지하차도 건널목 앞에서였다. 그날 나는 비가 내리고 날도 일찍 저물었던 탓에 일찌감치 노숙장소인 서울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날이 궂어서인지 오가는 행인도 드물고 평소보다는 차들도 헐렁헐렁해 거리가 한산했다. 느닷없이 천지간이 진동하는 듯한 끼익! 소리가 나더니 영감 하나가 급하게 우회전하는 차에 부딪혀 풀썩 쓰러지는 것이었다. 순간 억! 소리가 영감보다도 내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다.실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영감은 신음소리도 못 내고 빗길에 나부라졌다. 아무래도 다리 하나가 차바퀴 밑에 깔린 듯했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던 운전자가 황망히 뛰어나오고 맞은편 도로에서 사내 하나가 벽력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마구 엇질러 건너왔다. 고급 승용차인 에쿠스에서 내린 운전자는 뜻밖에도 스포츠형 머리에 작업복 차림인 청년이었다. 청년은 영감을 얼른 둘러업지도, 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려가지도 못하고 반 넋이 나가, 역시 반 넋이 나간 듯한 사내 곁에서 부질없이 “할아버지 괜찮아요? 할아버지 괜찮아요?” 소리만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영감은 축 늘어진 채 신음소리조차 없어 얼핏 죽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운전자야 워낙 놀라고 경황이 없어 그렇다 쳐도 영감의 동행으로 여겨지는 사내마저 영감을 재빨리 병원으로 데려갈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그 숨넘어가는 판에 한가롭게, 그러나 몹시 거칠고 조급하게 운전자만 다그쳐대고 있었다. 둘 다 지각이 없어도 원 저렇게도 없을까 싶어 화가 다 치밀어올랐다. 멀뚱하게 서서 구경만 할 게 아니라 나라도 나서서 일의 순서를 바로 잡아줘야겠다 싶을 때, 멋모르고 지나던 행인 중의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가 경범씨였다.
“저러다 사람 잡겠네. 누가 빨리 택시 좀 잡아와요.”
그런 찰나 시체처럼 나부라져 있던 영감이 밭은 숨을 토해내며 살며시 눈을 떴다. 순간 구경꾼들이 죽지는 않았다고 뜻 모를 박수를 쳤다. 청년은 울고 있었다. 푸슬푸슬 울고 있었다.영감이 청년을 찬찬히 올려다봤다. 그때 난데없이 운전자의 작업복 안에서 휴대폰이 발광을 했다. 운전자가 휴대폰을 귀에 채 갖다대기도 전에 핏발서린 소리가 마구잡이로 터져나왔다.
“너 이 새끼, 차 빨리 안 가져와? 오분 이내로 안 가져오면 너 오늘 뒈질 줄 알어. 알았어 새꺄?”
그리고 휴대폰은 일방적으로 끊어져버렸다. 청년이 빗물에 흥건히 젖은 팔뚝으로 눈가를 훔쳤다. 비에 찰싹 달라붙은 면 티셔츠 상의 뒤판에 새겨진 글자. 한영 카센터. 그제서야 우리는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청년은 수리를 맡겼던 손님의 차를 갖다주는 중에 사고가 난 것이었다. 구경꾼들이 쯧쯧 혀를 찼다. 내가 청년이라도 뛰다 죽을 노릇일 것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영감이 누구의 부축도 없이 불쑥 상체를 일으켰다.
“야야 청년이레, 내레 일없어야 야. 기러구 섰디 말구 날래 가보라마. 날래.”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었다. 청년이,“그래도 어떻게……” 하고 우물쭈물 망설이고만 서 있자, 영감이 영감 바로 앞에 서 있던 경범씨와 나, 우리 둘을 가리키며,
“내레 나중에 딴소리 안하가서. 저분덜이레 네레 증인이 되주믄 되갔디?”
해서 졸지에 그날 현장 증인으로 그들을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영감을 쫓아 그날로 남산 힐튼호텔 아래 한 평짜리 쪽방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경범씨와 내가 그들의 정체를 온전히 안 것은 그 뒤로도 열흘인가 더 지나서였다.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노숙을 하던 나와 경범씨가 영감네 쪽방으로 옮겨간 지 얼마 안되어 둘 다 된통 앓아눕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기존의 여인숙을 반 평 내지 한 평으로 다닥다닥 쪼개고 쪼개어 얇은 베니어합판에 값싼 비닐벽지를 붙여 만든 쪽방은 햇볕 한줌 스며들지 않고 바람 한 줄기 깃들이지 않아 늘 침침하고 큼큼한 냄새에 찌들어 있었으며 바닥은 눅눅하고 습기가 찼다. 우리는 밤이면 잠을 자는 게 아니라 관 속에 들어가 송장처럼 갇혀 있다 아침이면 관 뚜껑을 열고 허겁지겁 기어나왔다. 무심코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와 밝은 햇살 한줌에 새삼 새로움을 느꼈을 때 경범씨와 나는 지독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여름날처럼 푸근한 사월에 때아닌 독감이었다. 그 무렵 영감과 칠범씨는 어디론가 멀리 일을 나가고 우리는 그 관 속 같은 쪽방에서마저 밀려날 처지에 놓였다. 무단결근으로 인해 그동안 다니던 공공근로 일자리마저 떨궈진 탓에 돈이 바닥나버린 까닭이었다. 일수를 찍어주듯 그날그날 쪽방비를 내야 겨우 하룻밤의 잠자리를 제공받는 게 우리가 가진 신용의 전부였다. 경범씨와 나는 쪽방을 나와 다시 서울역 지하보도로 옮겨갔다. 그러던 어느날 영감과 칠범씨가 우리를 찾아왔다. 그새 우리는 반쪽이 되어 있었다. 그날 우리는 몸보신을 위해 그들을 따라 남대문시장으로 순댓국과 돼지껍데기볶음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처음엔 무척 낯설고 황당했지만 점차로 입맛이 당기는 제안을 하나 받았다. 우리는 기꺼이 그리고 황감히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단 하나뿐인 목숨을 담보로 목숨보다 귀한 돈을 사는 자해공갈단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팔병신, 다리병신, 허리병신이 되어 뼈다귀 해장국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간 우리는 하마터면 혼겁을 할 뻔했다. 지랄맞게도 하필이면 보험회사 직원이 게 있을 게 뭐란 말인가. 환자복을 입은 병신들 넷이 쭈르르 들어서는 통에 그가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설사 우리가 먼저 그를 발견했다 할지라도 병신들 넷이 냅다 뛰어 도망칠 순 없지 않겠는가. 우리도 피식이 웃으며 팔병신은 팔병신마냥, 다리병신은 다리병신마냥, 허리병신은 허리병신마냥, 겨우 고개나 까딱해서 아는 체를 했다. 경범씨가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재수 한번 더럽게 없구만, 하고 푸념을 해서 우리끼리 통하는 눈빛으로 소리없는 웃음을 나누었다. 우리는 병신들답게 일부러 세월아 네월아 하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병신들답게 가끔 번차례로 신음소리도 한번씩 내질렀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신발을 벗은 뒤가 더 위태롭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껏 남들 앞에서 병신으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어 어떻게 먹어야 병신답게 먹는 건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팔병신이야 그냥 자리잡고 앉아 다른 한 팔로 먹으면 될 것 같고 다리병신도 비스듬히 뻗장다리를 하고 앉아 먹으면 될 것 같지만, 허리병신들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방바닥에 내려앉을 땐, 또 밥을 먹을 땐? 허리병신은 나와 칠범씨 둘이었다.
“아따, 허리를 다쳐논께 옹색스러 죽겠고만. 요러고 맨바닥에 앉아 먹어야 하는 딘 줄 알았으면 안 왔을 텐디 무단시 따라왔고만. 기왕지사 따라 왔응께 한술 뜨긴 떠야 할 텐디 어떻게 앉아야 쓸까.”
하고 칠범씨가 죽는 소리를 쳤다. 작자는 우리들이 하는 양만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작자를 옆구리에 끼고 앉은 게 찜찜하고 어색하긴 했으나 어쨌든 우리는 무사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작자가 약삭빠르게 말을 붙여왔다.
“병원 밥이 입맛에 안 맞으시지요?”
순간 칠범씨가 눈을 끔뻑했다. 우리는 칠범씨가 던지는 무언의 말을 금세 알아차렸다.‘보험사 직원과는 될 수 있는 한 말을 하지 마라. 무조건 잘 모른다고만 해라, 그리고 볼 때마다 아프다고만 해라. 창구는 나 하나로 단일화하자.’ 칠범씨 눈치마따나 창구는 칠범씨 하나로 단일화하고 우리는 일절 모르쇠로 곁에서 적당히 아구구 소리나 연출해주면 될 성싶었다.
“형씨라면 허구한 날 백반만 먹겠소? 가끔 갈비탕도 먹고 하지. 그런데 아침에는 뭔 일로 댕겨갔다요? 우리 운동 나간 새에 댕겨간 모양이던디?”
“병세가 좀 어떤가 살펴도 드리고 안부도 여쭐 겸 그랬지요. 그래 요새들 어떠세요? 두달 넘어 곧 석달 차 들어서는데요.”
“아이고, 말도 마쇼. 아직도 그냥 죽겠어요. 이러다 평생 병신 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어요. 남자는 뭐니뭐니 해도 허리가 젤 아니겠어요? 허리병신 되불면 인생 끝장 봐버린 거 아니겠어요? 안 그요?”
칠범씨 말엔 그저 웃기나 하고 작자는 이번엔 다리병신인 영감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어르신, 아직도 걷기가 많이 불편하세요? 웬만하시면 퇴원하셔서 통원치료를 받으시지요.”
“내레 아직두 다리가 얼마나 아픈데 기러누?”
“그러세요? 그럼 어르신도 석달 다 꼬박 채워 나가시겠다? 박사장님은 허리 좀 어떠세요? 박사장님도 석달 다 채워야 합의를 해주실 건가요? 최사장님도 그러신가요?”
경범씨와 나는 가타부타 대꾸를 안했다.
“우리도 병원생활이 지긋지긋한디 후딱 낫기만 함사 제발 있으락 해도 안 있죠. 근디 저러고 다들 아프다는디, 글먼 치료를 받지 말고 나가란 소리다요? 보험법으로도 삼개월은 보장이 되어 있는디 고러고 섭섭하게 말씀하시면 안되지라.”
“그러면 일단 합의부터 보시고 치료를 받으시면 어떻겠어요?”
“고러고는 안되지라. 합의를 봐줬다 하면 그때버텀 환자는 나가리 되고 보험사 맘대로만 할라고 할 틴디, 누가 고러고 밑지는 장사를 할라고 하겠소? 고러고 말도 안되는 말씀을 하실라거든 우리끼리 편한 밥 쪼까 먹게 그만 가보쇼.”
칠범씨는 아예 작자를 내쫓아버렸다.
“지랄한다고 쫓아댕겨? 우리가 석달을 다 채우겠다는디 지가 어쩌겠다고? 아니할 말로 지 돈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즈그 회삿돈 좀 먹겠다는디, 먹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놈을 지가 무슨 수로 막겠다고? 봐하니 애새끼 한둘은 넉넉히 두었겠고만, 눈치껏 붙어먹을 중도 알아야지. 저 작자 마누라도 호강하고 살기는 애저녁에 글렀고만.”
칠범씨 말부시질에 슬몃 웃어주긴 했으나 나는 작자가 씨익 웃고 나간 게 왠지 꺼림칙했다.
“저 작자, 혹시 뭔가를 눈치챈 건 아닐까요? 유난히 들랑거리고 캐고 든다 싶은데.”
“지가 그래봤자지. 아, 사고가 합법적인 디서, 합법적으로 났는디, 지가 암만 캐본들 뭣이 나오간디? 우리만 입 딱 다물고 있으면 귀신도 모를 거요.”
그러나 칠범씨의 장담과 달리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과 두려움에 밥맛을 잃고 숟가락을 놓아야 했다.
남대문시장 순댓국밥집에서 그날로 사인일조를 이룬 우리는 칠범씨의 진두지휘 아래 곧바로 교통상해사고를 위장한 도합 이억짜리 보험사기 작업에 착수했다. 사업이 성공했을 때 우리는 각자 오천만원씩을 나눠갖는다는 조건이었다. 오천만원이면, 칠범씨는 빚의 절반을 갚고 어떡해서라도 다시 택시를 몰아볼 수 있는, 경범씨는 코스닥에 등록이 되기도 전에 부도가 나버린 사업체를 다시 어찌어찌 살려서 경제사범으로 부정수표단속법에 쫓기는 신세에서 해방될 수도 있는, 금융기관에서 명퇴를 당한 뒤 명퇴금과 집을 저당잡혀 경험 없이 벌인 사업에서 실패하고 아내와 딸마저 식당 종업원으로 외가로 뿔뿔이 흩어지게 한 내가 어쩌면 그들을 다시 불러모을 수 있는, 그리고 굳게 입을 다문 채 용처를 밝히지 않는 영감조차도 간절히 소망해 마지않는, 너무도 절박하고 가슴 저리는 액수였다.
우리는 즉각 면허가 없는 영감과 면허가 취소된 칠범씨 대신 나와 경범씨 명의로 노후된 중고차 두 대를 헐값에 사들였다. 그리고 자동차 딜러를 통해 소개받은 보험모집인을 통해 자동차보험과 상해보험과 손해보험에 가입을 했는데 보험사기극을 은폐하기 위해 과거 직업이 확실했던 경범씨와 나를 집중적으로 피보험자로 정하는 위장술을 썼다. 그리고 한달에 팔십만원씩이나 납입해야 하는 보험납입금을 마련하기 위해 두달 동안 아홉 건에 이르는 자잘한 교통사고를 저질렀으며 단 한건도 실패하지 않았다. 아홉 건의 고의사고를 통해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고 용기와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갈수록 의기충천해졌다.
최초 보험납입일로부터 두달이 지난 6월 6일.
마침내 우리는 계획대로 거사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날은 평일에 비해 보험금이 두 배로 뛰는 법정 공휴일이었다. 우리는 한적한 주택가 삼거리 일방통행 도로 길목을 배회하며 역주행하는 차를 노렸다. 경범씨가 운전대를 잡고 칠범씨와 영감이 조수석과 뒷좌석에 나눠 앉았다. 나는 길 건너편에서 역주행하는 차를 발견하는 즉시 신호를 넣는 바람잡이 역을 맡았다. 그러나 사고가 남과 동시에 재빨리 달려와 콩켸팥켸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슬쩍 뒷좌석에 올라타 본디부터 한 일행이었던 것처럼 상대 운전자를 감쪽같이 속이는 민첩성까지 요구되는 역할이었다. 한낮을 비켜난 시간, 드디어 나는 자가용 한 대가 저만치서 역주행으로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가슴이 펄떡펄떡 뛰었다. 별안간에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깟 땀쯤에 아랑곳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중얼중얼 주문을 넣었다. 가까이! 조금만 더 가까이! 그리고 역주행 차량이 일방통행 표지판을 발견하고 아차! 싶은 상황, 그러나 후진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오히려 가속을 붙여 재빨리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번쩍, 팔을 치켜올렸다. 동시에 이제나저제나 내 수신호가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우리편 차에 급시동이 걸렸다.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 급가속으로 좌회전을 하자마자 숨가쁘게 달려오는 역주행 차에 그대로 운전석 옆구리가 작살나버렸다. 우리편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우리는 사전 각본대로 팔병신, 다리병신, 허리병신이 되었다. 사고에 비해 워낙 부상이 경미해 애초에는 잠깐 입원해서 반짝 쉬었다 나가는 2주 정도밖에 진단이 안 떨어졌으나 정형외과 사무장의 눈치빠른 협조에 의해 우리는 째고 꿰매고 섬유붕대로 휘갑치는 공사를 거쳐 소기의 목적을 무사히 달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복잡다단한 계획의 시발점에 불과했다. 우리는 이억원의 보험금을 위해 무려 열두 개의 보험사와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 한숨씩 낮잠을 자고 난 우리는 해가 설풋이 기울기를 기다려 뭇 시선들을 피해 잡풀이 우거진 공지로 차를 몰고 나갔다. 영감과 다시 한번 손발을 맞춰보기 위해서였다.
영감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지 않겠나 싶다가도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는 병실에서 벌떡증을 일으켰다. 보험사 직원이 새벽같이 급습을 한 것이나 열두 개나 되는 보험사 중 어느 한 곳과도 보상협상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와중에 영감을 위해 또다시 뭔가를 벌여야 한다는 것이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무척 위태롭게 느껴지고 썩 내키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영감을 제외한 우리 셋 중 그 어느 누구도 중도에 그만두자는 소리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것은 네댓 달을 함께 생활하며 맺어진 영감에 대한 우리의 의리이기도 했거니와 영감의 가슴속에 한으로 맺혀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존중이기도 했다. 영감이 우리에게 자신의 신상에 대해 밝힌 얘기는 그가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이산가족이라는 게 고작이었으나 간간이 그의 넋두리를 통해 흘려들은 바에 의하면 그가 기필코 이번 일을 성사시키려는 데에는 영감 나름의 깊은 속내가 따로 있는 듯했다. 영감의 마지막이자 단 하나뿐인 소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나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쯤이 아닐까,라고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다. 언젠가 칠범씨에게 중국 두만강에서 북한으로 월경하는 데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중국동포를 통해 북쪽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물었다고 한다. 한국 쪽의 알선책이 누군지, 어디를 통하면 가능한지, 경비는 얼마나 드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그의 소원이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것쯤이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감의 깊은 속내까지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남쪽에 하나 있다는 아들 얘기와 더불어 그 부분만큼은 한사코 입을 열지 않는 까닭이었다. 다만 뭔지는 몰라도 너무도 애절하고 간절하다는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도저히 영감을 모른 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나 영감은 어쩌면 마지막 예행연습이기 십상일 저녁 연습에서조차 나아진 기미가 전혀 엿보이질 않았다. 외려 아이구 내레 죽네, 내레 죽가서 하던 엄살소리조차 거둬버리고 단숨에 숨이 멎어버린 시신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런 표정 없이 아주 고요하고 평안하게 누워 있기까지 했다. 정말 영감이 죽어버린 거나 아닌지 더럭 겁이 날 정도였다. 영감이 부스스 눈을 뜨고 반나마 몸을 일으켰을 때 우리는 안도의 숨을 다 내쉬었다.
“길바닥에 눠 있으니끼니 참 펜안하다 야. 내 집처럼 따습기두 하구 말이야 야.”
“아따, 죽어버린 줄 알았소. 사람 좀 에지간히 놀래키쇼. 연습은 개떡같이 하면서 뭣이가 편안하다고 길바닥이 어떻고저떻고 한다요. 길바닥이야 불볕에 달궈졌응께 응당 따땃할밖에 더 있겠소.”
“기렇게 장승처럼 섰디들 말구 한번 누워들 보라우 야. 누구 보는 사람두 없디 않가서? 내일 일은 내레 알아서 할 테니끼니 걱정들 말구서리. 눠들 보라니끼니 기런다 야. 얼마나 펜안한 줄 아네?”
“길바닥이 뭣이가 편하다고 저러고 보채쌓는지 모르겠구만.”
칠범씨가 말로는 그러면서도 슬며시 엉덩이를 길바닥으로 내려놓더니,
“아따, 한증하는 것처럼 따땃하기는 하구만. 한번 누워도 볼까이? 정말 편할란가.”
하며, 내친 김에,라는 듯이 영감 곁에 넉장거리를 하고 누워버렸다.
“정말로,편하긴 편하구만. 하늘도 뵈고 좋다. 아따, 하늘이 저러고 생겼구만. 구름도 저러고 생겼고.”
칠범씨 너스레에 경범씨도 나도 조무래기 악동처럼 에라 모르겠다 하곤 따라 누워버렸다. 잔 돌멩이들이 간혹 등에 배기기는 해도 영감 말마따나 생각 밖으로 따뜻하고 편안했다. 눕자마자 둘이서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정말 편하네,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좋소들?”
“예. 좋네요.”
“경범씨도 좋소?”
“예. 좋은데요. 하늘도 뵈고.”
“벌써 길바닥이레 좋으믄 안되디.”
“아따, 좋다고 꼬신 사람이 누군디 그런디야?”
슬몃슬몃 눈이 감기려 했다. 눈을 감기만 하면 그대로 잠이 들 것 같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정말 잠속으로 솔솔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셋처럼 어디 한 귀퉁이쯤은 잠속으로 빠져든 줄 알았던 영감이 느닷없이 뚱딴지같은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내레 말이야, 아들놈 앞으루 생명보험 하나레 넣어둔 거이 있디 안간?나 죽으믄 그거 갖구 먹구살라구 말이야 야.”
그러나 뜬금없이 꺼낸 말치고는 너무도 심상해서 우리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들어넘겼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보험 하나쯤 들어놓은 거야 별다르게 특별할 것도 없지 않은가. 칠범씨가 말부조 삼아, 그랬소? 잘했소,라고 몇마디 가볍게 응수해주었을 뿐이다.
“내레 한가지 부탁 좀 하자 야. 내레 내일 말이야, 오늘처럼 또 엉성하게 굴거든 말이야, 누가 C에 섰다가 아무두 모르게 슬쩍 좀 밀어뜨려주디 않가서?”
그 말도 우리는 그냥 심상하게 흘려들었다. 영감이 난데없이 부탁이라고까지 하는 통에 뭔가 하고 귀를 기울이기는 했으나 웃자고 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영감 말소리에 깜빡 졸았다 깨었다를 반복하고 있던 찰나이기도 했다.
“아따, 안 그래도 그럴 참이요. 걱정 마쇼. 인자는 겁부터 나는 모양이구만.”
칠범씨의 심통어린 대꾸조차 건성으로 흘려들으며 우리는 다시금 잠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영감 혼자서 뭐라고 구시렁대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다 말다 했다.
“길바닥이레 참 펜안하구만 기래. 내레 돌아갈 자리라서 기런지 말이야 야……”
뱃속이 부글거린다는 핑계로 영감이 저녁밥을 걸렀다. 며칠이나 갈지는 몰라도 아침에 칠범씨가 병원 사무장에게 너울가지 좋게 넌덕을 떤 보람이 있어 바닷고기며 육고기도 상에 오르고 밥 반찬이 제법 쏠쏠해도 영감은 화장실이나 들락거리며 배나 쓸고 다닐 뿐이었다. 그쯤 되고 보니 우리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떡해서라도 끼니만큼은 거르지 않고 악착같이 챙겨먹는 영감이 아니었던가. 워낙 급습에 능한 보상과 직원 나부랭이가 언제 또 급습을 할지 몰라 우리는 번차례로 병실을 지키며 덜렁덜렁 영감 뒤를 쫓아다녔다. 장장 두달여나 되는 지루한 병원생활 동안 별다르게 소일거리가 없는 우리에게는 그것도 하나의 재밋거리였다. 그런데 영감 하는 짓을 봐하니 배탈은 아닌 듯싶었다. 우리들이 줄곧 쫓아다니는지라 바지춤을 부여잡고 황급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기는 하는데 들락거리기만 할 뿐, 물똥을 싸거나 설사를 쏟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부글거리는 뱃속을 드세게 밀고 나오는 배변소리가 도시 나질 않았다. 수셋물을 내리는 소리도 없었다. 시간도 그랬다. 우리가 장난질하듯 화장실 밖에서 똑딱똑딱 똑딱소리 몇번이면 그만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은지 칠범씨가 영감 뒤를 재고 섰다 가만가만 되짚어 가보더니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나왔다. 그러고는 혼잣말처럼 시부저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웬 못 보던 몽둥이가 다 있네. 사무장이 갖다놨을까? 근디 그 양반이 뭣 하러? 뭔 할 짓이 없어서?”
그때, 소일거리 삼아 병원 1층 안내데스크에서 9시 저녁뉴스를 보고 있던 경범씨가 별안간에 경악을 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 우리는 우리가 갖가지 병신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계단을 쿵당쿵당 뛰어내려갔다.
“뭔 일이여?” 하고 보니 경범씨가 경악을 할 만도 했다.‘친인척을 포함한 5인조 보험사기단 적발’이라는 자막글자와 함께 점퍼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허리를 납신 구부린 사내들 셋과 여자들 둘이 텔레비전 화면에 막 클로즈업되고 있는 찰나였던 것이다. 우리와 범행수법은 달랐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이내 평정을 되찾은 듯 칠범씨가,“고것 하나 감쪽같이 해치우지 못하고” 하고 혀를 차다 다른 병실 환자들이 꼴들 좋다 하며 비아냥거리자 그만 머쓱해서 서둘러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당분간 조심해야겠다는 소리를 눈치껏 주고받으며 따라올라갔다. 놀라긴 되게 놀랐는지 얼굴색이 노래진 경범씨가 시늉으로만 걸쳐두었던 팔뚝의 붕대를 차근하게 되감기 시작했다. 칠범씨도 헐렁하게 두르고 있던 섬유붕대를 꼼꼼하게 되짚어 감더니 배부른 임산부마냥 허리를 손으로 받치고 괜히 병실 복도를 어정어정했다.
그런 그를 병실 침상에서 찬찬히 바라보고 앉았던 영감이 정말 다리병신이기라도 한 양 다리를 질질 끌며 칠범씨 곁으로 다가서더니 얼른 그의 팔을 낚아채가지고 화장실 뒤편 베란다로 갔다. 난데없는 영감의 행동에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별일이야 있겠는가 싶어 나 역시도 허리에 대충 감아두었던 붕대를 풀어 다시 친친 감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리를 죽인다고 죽인 칠범씨가 기겁이라도 한 듯 느닷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서둘러 붕대 매듭을 짓고 가만가만 화장실로 스며들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 짓을 한단 말이다요.”
“괜찮다구 기래도 기러네. 내레 본래 왼팔잡이야 야. 남들처럼 오른팔잡이가 아니라두 기러네. 오른팔 하나 병신 된들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야 야. 눈 딱 감고 단매에 한번만 쳐달라는데두 기러누만. 내레 내일 죽지두 병신두 못 되믄 어떻게 되간네?”
“그래도 그렇지. 그 짓을 어떻게 하냔 말이요. 영감 인제 본께 참 독한 양반이요.”
“안 기러면 그놈의 자식을 내레 어떻게 하가서? 낼모레믄 출감인데 말이야 야.”
“무슨 말이다요? 글먼 아드님이 지금 교도소에 있소?”
대답 대신 영감이 담배 갖구 나온 거 있네? 하자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둘이 나란히 한 대씩 피워무는지 조용해졌다. 이윽고 담배 한 대 참 정도의 여유가 생긴 칠범씨가 영감을 조근조근 설득하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어떻게 몽둥이로 내리칠 수 있단 말이요. 내일 잘하면 되지.”
그런데도 영감은 막무가내였다. 어처구니가 없는 생떼를 쓰다시피 했다.
“네레 안 도와주믄 내레 내일 덩말 길바닥에서리 죽어버리가서.”
그러자 칠범씨가 격앙이 된 듯,
“뭐요? 글먼 그럴 생각으로 연습도 고러고 개판친 거다요? 돌았구만, 돌았어. 영감이 돈에 눈이 멀어 돌았어. 나는 안 들은 걸로 할라요. 그만 들어갑시다.”
하고 냅다 몇마디 쏘아붙이더니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버렸다. 그런 칠범씨의 등뒤에서 영감의 소리 죽인 악다구니가 숨가쁘게 쏟아졌다.
“칠범이 자네가 기러믄 내레 내일 죽는 길밖에 없어야 야. 이보라우 칠범이. 내레 말 좀 더 들어보라우 야. 내레 죽는 꼴을 보가서? 내레 좀 도와달라우 야. 이보라우 칠범이, 이보라우 칠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