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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성미산을 아시나요

 

 

이경란 李暻蘭

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 이사. onl-nana@hanmail.net

 

 

성미산에서 일어난 일

 

크기라고 해봐야 4만평도 안되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어른 걸음으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서울시 마포구의 서쪽에 작은 산이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 많이 알려졌지만,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이 산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오래 사신 어르신들과 동사무소에서나 알 뿐이었지요. 그저 불룩 솟아나 있고 나무가 좀 있는 동네 뒷산일 따름입니다. 물론 서울의 여느 뒷산처럼 텃밭을 일구거나 체조하는 사람, 역기를 드는 사람, 달리는 사람, 배드민턴장을 만드는 사람 들이 있지요. 또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쉬기도 했고요. 6,7년 전부터는 주변의 어린이집 아이들이 매일 올라와 놀거나 나무를 살피기도 하고, 아까시꽃이며 며느리밑씻개 같은 풀을 따먹기도 하는 그저 그런 동네 뒷산이 바로 성미산입니다.

그러던 이곳에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그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2001년 7월, 구청에서 공시를 내걸면서부터입니다. 산의 정상부에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배수지를 건설하고, 산 소유주인 한양대학재단은 남쪽 경사면에 아파트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이었지요. 10여년 전 주민들의 의사를 물은 적도 없이 배수지 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했던 방식으로 서울시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재단은 배수지의 추이를 보면서 공사업자를 선정하려고 했지요.

배수지란 정수장과 개별 수요자의 중간지점에 물탱크를 설치하여, 단수가 될 때도 물공급을 하고, 개별 수요자에게 바로 급수함으로써 비위생적인 물탱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주민편의시설입니다. 이때 물을 공급하려면 표고 50~70미터 위치에서 물을 내려보내거나, 아니면 평지에서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동안 서울시는 작은 산 위에 배수지를 만들어왔습니다. 이런 환경파괴적 시설은 ‘수돗물 문제’ 때문에 아무런 저항 없이 많은 동네 뒷산을 파괴하며 만들어졌습니다. 성미산에 오르면 바로 보이는 와우산도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성미산배수지 건설에서 처음으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셈이지요.

개발계획을 접한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막아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고, 서로의 의견을 알게 된 단체들은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를 조직했습니다. 구성원은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부모들과 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생협), 신 체조부 할머니·할아버지, 역도부 아저씨들, 주변의 절과 교회, 그리고 산밑에 있는 성서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었습니다. 그후 2003년까지 3년 동안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참으로 다양한 활동이 벌어졌지요.

우선 홍보와 성미산 조사, 서명활동을 벌였지요. 대자보를 붙이거나 전단을 돌리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상수도사업본부 등 관계기관에 항의하고, 환경단체의 도움을 받아 식생조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서명운동에 들어갔어요. 석달 만에 2만여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맡은 구역의 집들을 방문해 서명을 받았고, 젊은 부모들은 토요일마다 지하철역에서 아이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4회에 걸친 ‘성미산 음악회’, 마을축제 등을 열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갔습니다. 활동의 결과 상수도사업본부는 배수지 건설 이후 산을 원래 모습대로 복구해주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고, 서울시 도시계획자문 소위원회는 한양대학재단의 도시계획변경신청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결정을 유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는 3명의 성미산 후보가 출마했습니다. 낙선하기는 했지만 많은 주민들이 선거운동에 참여했고, 당시 선거에 입후보한 거의 모든 후보들에게서 ‘성미산지키기’ 공약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동네주민들이 생활정치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선거 후 조직을 마포구 내 여러 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로 확대하였습니다. 상수도본부와는 협상을 벌이는 한편 힘겨루기가 시작되었어요. 상수도본부는 주민토론회나 찬반토론회를 벌여 형식적으로라도 주민들의 인정을 받아 공사를 진행시키려 했고, 주민들은 부당성을 이야기하고 저지하는 일이 반복되었죠. 그러던 중 2003년 1월 29일 설날 연휴를 앞둔 싯점에서 상수도본부는 성미산의 정상부분 1만평의 나무들을 베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마을주민들은 서울시의 기습벌목에 항의해서 산과 시청 앞에서 집회를 갖는 한편, 산 위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공사 강행을 결정한 서울시는 2월 초부터 포크레인을 앞세워 사업을 진행하려 했고, 주민들은 이를 막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어요. 마침내 3월 13일 서울시의 공사 강행을 막다가 주민들이 다치는 사태까지 벌어졌지요. 그후 서울시장과 마포구청장 면담(주민들의 반대입장이 다수를 차지한다면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대답을 이끌어냄), 4월 성미산 환경파괴 및 성미산배수지 재검토를 위한 2차 주민서명운동 시작, 상수도사업본부에 대한 공청회 제안 등 상황은 급진전했습니다. 5월 17일 ‘성산배수지 공청회’에서는 지역주민 700여명과 전문가들, 상수도사업본부가 격렬한 토론을 벌였어요. 팽팽하게 의견이 맞섰지만, 배수지사업이 결정적으로 성미산을 파괴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릴 수 있는 자리가 되었죠. 그후 진행된 마포구청의 여론조사에서 성산배수지 건설 찬성 45.0%, 반대 45.7%로 팽팽했던 데 비해서, 응답자의 92.6%가 성미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데 공감해, 배수지 건설 찬반여부에 관계없이 성미산의 보존 필요성을 높게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여론조사로 상황은 성미산을 지켜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마침내 2003년 10월 상수도사업본부가 공사유보 결정을 내림으로써 일단 성미산 파괴를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요. 성미산배수지는 향후 물수요가 늘어나면 시행한다는 유보조항이 붙은 상태이고, 한양대학재단은 여전히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며, 주민들에 의한 일상적인 산 파괴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미산의 생태공원화를 준비하고, 이 작은 산에서도 생태학습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숲속학교’를 운영하며, 산의 식생상황과 주민이용실태를 조사하는 모니터링 등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그런 조그만 ‘지키기’를 넘어 ‘살리기’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이제 시작되고 있습니다.

 

 

도시 속의 작은 산이 갖는 의미를 깨닫다

 

성미산지키기는 여러 방면에서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만, ‘작은 산 살리기’라는 의미에서 참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생태를 지킨다는 것이 먼 곳에서가 아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것도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던 이 작은 산에서부터 가능하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성미산이 대도시 서울을 살리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죠. 서울의 녹지율이 26.5%에 달하는 것은 북한산·수락산·불암산·관악산 같은 외곽의 큰 산 때문입니다. 이런 산들과 한강이 서울의 녹지축을 이루는 기본이며, 규모가 커서 녹지율이 상당한 정도로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작은 산들이 의미가 있지요. 큰 산들은 맑은 공기와 신선한 바람을 보내 도시의 공기를 정화시키지요. 그 바람길이 작은 산입니다. 작은 산들은 대개가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있어 평야와 연결되는데, 현재는 도로나 주거지로 다 잘려버렸지만, 점점이 있으면서 주변의 공기흐름을 신선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성미산 근처에 가면 숨쉴 만합니다. 성미산을 지키는 과정에서 자료를 찾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작은 산들이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를 숨쉬게 해주는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죠.

성미산지키기 활동 덕분에 이 작은 산이 생태교육장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태교육을 위해서 멀리 있는 큰 산에 차를 타고 갑니다. 멋진 숲에 들어가 생태학습을 하고 돌아오지만 동네 산에는 한번도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요. 하지만 매일 오르는 뒷산에서 이루어지는 생태학습은 매우 특별합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매일 성미산으로 나들이를 가고 있으며, 생협에서 운영하는 ‘숲속학교’는 매주 아이들과 성미산에서 숲속 체험교육을 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익숙해진 나무가 시간이 가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압니다. 싹이 나오고 줄기가 자라고 열매가 맺히는 전과정을 눈으로 냄새로 몸으로 느낍니다. 성미산에는 아까시만이 아니라 자르면 국수처럼 하얀 게 나오는 국수나무도 있고, 하얀 줄기가 아름다운 사시나무도 있고, 도토리가 나오는 참나무도 있다는 걸 알지요. 그리고 아까시가 산을 망가뜨리기보다는 초여름이면 마음을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향기가 있고, 황폐해져 있던 산을 이나마 살려준 공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존재하는 것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 바로 이 작은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미산의 나무들이 베어졌을 때 이곳을 오르내리던 아이들과 어른들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은 나무가 아프겠다고 말하더군요.

산을 지키기 위해 오르면서 어른이든 아이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산에 올라가면 보이지 않지만, 성미산에 올라보면 ‘저기가 우리집이고 저기는 친구집이네, 아, 우리 학교가 저기 있다’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한강도 보이고, 북한산과 백련산, 남산, 63빌딩도 보이지요. 대부분의 도시사람들은 스스로 뜨내기라고 생각하기에 차를 타고 다니면서 길과 방향은 알지만 마을 전체의 모습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산에 오르면 어디가 어딘지 모르지요. 그러다 자기가 아는 곳들이 나오면 그곳과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을 연결시켜보면서 눈이 반짝반짝해집니다. 자기가 가본 안산이 저기 있고, 남산은 더 멀리 떨어져 있고, 한강이 생각보다 가깝고…… 거기에 성미산과 주변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면 더 좋아하지요. 성미산은 북한산과 연결된 산이고, 과거의 홍제천과 지금 흐르는 곳은 다르다는 이야기, 작은 개천에 다리가 많아서 서교동과 동교동이라고 이름붙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마을에 애착을 느끼지요. 작은 산 살리기를 하면서 큰 산에서는 얻을 수 없는 많을 것을 배울 수 있었답니다.

 

 

마을만들기의 상징을 얻다

 

성미산지키기 활동의 가장 큰 성과는 지역의 상징을 얻었다는 것이겠죠. 사람들은 성미산이 가슴속에 자리잡는 과정에서 익명의 도시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 산다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일이 터지기 전부터 성미산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중 하나가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생협입니다. 동네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이사를 오자 매일 산을 오르내리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가슴속에는 성미산과 마을이 자리잡혀갔지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부터 이제는 이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몇년 동안 정들어온 사람들과 같이 ‘그럼 이곳을 고향으로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좋은 마을로 만들어서 살자’고 마음먹으면서 생협을 만들었지요. 물론 쉽지 않았어요. 소수가 아니라 마을주민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마을축제도 벌이고 강좌를 열기도 했지만 그리 잘되지는 않았습니다. 체조하는 모임이나 역도부 등의 성미산 운동단체도 그렇고, 성미향우회도 그러하듯이 성미산지키기에 참여한 많은 단체들도 다들 나름대로의 역사를 지니긴 했지만, 각자 따로따로였죠.

성미산지키기를 하면서 그전에는 마을일을 함께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산에서 집회하고, 시청 앞에서 시위하고, 전단지를 나눠주고,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음악회에서 함께 노래부르고, 나무도 심었죠. 어느새 만나면 의견을 주고받고, 마주하면 웃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성미산 자락의 성산동·연남동·망원동·서교동·중동·합정동 사람들은 ‘성미산 마을 사람들’로 불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마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무용담처럼 성미산지키기 일을 기억하겠지요.

또 많은 성과들이 부수적으로 나왔습니다. 우선 성미산을 살리는 방법의 하나로서 생태조사와 생태교육을 시작했지요. 어른들은 ‘자연체험안내자교육’을 통해서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고, 아이들은 매주 열리는 ‘숲속학교’에서 숲을 느끼고 있습니다. 모니터링도 시작되었지요. 조금씩 성미산을 생태적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좀더 넓은 틀에서 접근하자는 생각에서 마포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마포연대’ 설립으로 이어졌죠. 거기에다 성미산지키기 활동을 지속적으로 촬영하면서 새로운 언론매체를 가지려는 움직임도 있고요. 산에서 농성하면서 친해진 아빠들이 주도해 믿고 맡길 수 있는 카쎈터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성미산 차병원협동조합’으로 결실을 맺기도 했네요. 음악회를 우리 손으로 해보자는 마음에서 독자적인 마을밴드와 풍물패도 생겨났지요. 그리고 2004년의 마을축제는 월드컵공원에서 사회복지관이나 서부청년회와 같은 지역 사회단체들과 함께하는 자리로 확대되었습니다. 모두 성미산지키기를 통해 만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성미산지키기를 하면서 마포 서부지역은 마을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지만, 무언가 흥겨운 움직임들이 이곳저곳에서 꿈틀대고 있습니다. 한번 놀러들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