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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철훈 鄭喆熏
1959년 전남 광주 출생. 1997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살고 싶은 아침』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 등이 있음. chjung@kmib.co.kr
耳鳴
어느 날이든 지하철을 타면
매미소리 쨍한 순간이 있다
소리가 너무 많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찰나
첫차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졸음이 물결치는 새벽 다섯시 어름
엉기성기 꾸려넣은 그들의 찢어진 가방에는
망치와 흙손과 도시락이 빼꼼 얼굴을 내밀고
어제 일터에서 묻혀온 시멘트가 말라붙은 채
오늘은 더 멀리 가야 하는 사람들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사이사이
멍하니 허공에 띄운 시선과
입가에 침을 흘리며 꾸벅꾸벅 조는 잠에 뒤섞여
이명으로 돌아다니는 매미울음
아무리 대낮이라도
막 도착한 정거장이 명동이거나
서울역이거나 사당쯤이라면
사람들 우르르 구두굽소리로 흩어지고
갑자기 객차는 텅 비어 있다
가는 사람이야 가는 사랑쯤으로 떠나보내고
푹푹 먼지 날리는 길쭉한 의자에 걸터앉으면
고막을 찢는 매앵맹 매미울음
흐느끼는 통곡도 자지러지는 울음도 아닌
비어 있는가 하면 꽉 채워진 매앵맹 매앵맹
고막이 없는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리가 없는데 소리에 들려
온몸에 귀가 돋은 바람처럼 실룩실룩
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和答
야, 민기야 이것 좀 봐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났네, 버릴까 했는데
꽃이 피고 이파리에도 윤기가 도네
베란다에 나간 아내가
지난 봄 길거리 좌판에서 사온
천원짜리 화분을 바라보는지
아침부터 화들짝한다
죽은 화분에서 꽃이 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말은 생각나지 않고
그 말을 들어본 적 없을 화분이
플라스틱 검은 화분이
그 말을 내게 돌려주고 있다
그래, 화답을 해야지 무슨 말이든
이제 갓 피어난 작은 꽃망울들에게
사람의 말로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얼굴에 화들짝 경련이 인다
목수를 엿듣다
노동판이니까
나는 육십 넘은 노인을
형이라 부른다
그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쬐끄만 존재니까
처음에는 살아보자던 가락이 있었지만
노동판에 우릴 내놓은 우리는
그 가락을 모른다
형과, 육십칠세 먹은 형과
사십오세 내가 그래서 형제가 된다
형, 일당이 얼마요?
다 내 잘못이다 처음에
내가 잘했어야 하는 건데
형, 우리가 일당과 동격이었구려
어차피 통짜로 짜는 거야, 통을 짜서
윈도우를 짜서 통으로 짜악,
벽에 붙이는 거야
우리는 결국 노동판의 효과를 노린다
그려, 맞는 야그여
천장에서 떨어져나온
형과 나의 존재
노동판이니까
비가 와서 노동은 스멀스멀
형과 나를 웃긴다
그날 비가 와서 노동의 반응을
우리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배꼽을 잡고 그날을 웃는다
노동판이니까
우리는 쬐끄만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