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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카트리나 이후의 미국
빌 매키븐 Bill McKibben
환경문제 전문 저술가. 그의 저서 『자연의 종말』(The End of Nature)은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지구온난화를 다룬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최근 저작으로 『집을 향한 유랑, 미국의 희망적 풍광을 가로지르는 긴 산책』(Wandering Home, A Long Walk Across America’s Most Hopeful Landscape)이 있다. wmckibbe@middlebury.edu
ⓒ Bill McKibben 2005/한국어판 ⓒ(주)창비 2005
*이 글은 The National Institute의 웹진 TomDispatch.com(2005년 9월 6일)에 수록된 “Sucker’s Bets for the New Century: The U.S. after Katrina”를 번역한 것이다―편집자.
잿더미로 무너져내린 마천루의 모습이 하나의 이야기, 즉 세계의 혼돈에서 격리된 미국은 안전한 대륙이라는 이야기의 끝이라면, 지붕이 날아간 채 비에 흠뻑 젖은 슈퍼돔(Superdome)의 사진은 금세기 향후 수십년간 우리 정치를 지배하게 될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그것은 별안간 불안정하고 예측불가능한 곳이 되어버린 지구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허둥지둥하는 미국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지난주 컨벤션쎈터와 고속도로들, 급작스레 악명을 얻게 된 초승달 시(Crescent City,시를 감싸고 도는 미씨씨피강의 모습에서 연유한 뉴올리언즈시의 별칭―옮긴이)의 또다른 현장들을 보면서 “미국 같지 않고”, 꼭 제3세계에서 튀어나온 장면 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것은 거의 정확한 지적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흑인 뉴올리언즈 시민들(전에는 그들의 삶이 대중들에게 전혀 관심거리가 아니었다)은 세계 다른 지역의 빈민들, 그리고 흑인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아사망률과 기대수명, 교육성취도 통계치는 수많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주민들과 흡사하다.
그것은 또한 미래에 대한 불길한 전조라는 점에서도 정확한 지적이다.10년 전 환경문제 연구가 노먼 마이어스(Norman Myers)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집을 잃을 위험에 처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산출한 적이 있었다.그는 중국 해안지방과 인도, 방글라데시, 태평양과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들,나일강 삼각주, 모잠비크 등 피해 가능성이 높은 지역들을 조사하여,2050년에 이르면 1억 5천만명이 해수면 상승으로 집을 잃고 ‘환경난민’(environmental refugees)이 될 공산이 크다고 예견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막 빠져나온 끔찍했던 지난 한 세기에 발생한 정치적 난민 수를 능가하는 것이다.
지구상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버스로 1만 5천명의 사람들을 한 축구경기장에서 다른 경기장으로 옮기는 와중에 발생한 혼돈을 상상하고, 거기다가 10의 네제곱을 해서 이런 혼돈이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 벌어진다고 가정해보라. 그것도 반복해서, 십중팔구 버스도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상상해보라.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인터넷의 수많은 블로그와 웹싸이트에서 뉴올리언즈의 제방이 붕괴한 것은 수치스럽게도 ‘계획’이 부재한 탓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긴 했어도, 훨씬 더 큰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치스럽게도 ‘계획’이 부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후변화라는 문제와, 그리고 지구온난화가 장차 이같은 공포로 가득 찬 미래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울한 사실을 거론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첫번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어떤 허리케인도 지구온난화의 ‘결과’는 아니다. 그런데 카트리나의 공격이 있기 한달 전,MIT 허리케인 전문가 케리 이매뉴얼(Kerry Emmanuel)은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획기적인 논문에서 현재 열대성 폭풍이 불과 수십년 전에 비해 지속기간은 1.5배로 늘어났고 휘몰아치는 바람의 위력도 50%나 증가했음을 보여주었다. 유일하게 타당해 보이는 원인은 폭풍이 발생하는 열대바다의 온도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플로리다를 통과할 때 1급 폭풍이었던 카트리나는 멕시코만의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해수면 위를 지나면서 세력이 극대화되었다. 그후 카트리나는 루이지애나와 미씨씨피를 강타했는데, 미씨씨피는 한때 미국 공화당의 막후실력자이자 에너지 로비스트로서 부시 대통령이 이산화탄소를 오염원으로 취급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도록 하는 데 일조한 헤일리 바버(Haley Barbour)가 주지사로 있는 지역이다.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 미국은 기후변화의 진척속도를 늦추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한 적이 없다. 우리는 선견지명이 있는 과학자들이 최초로 지구온난화를 경고했던 1988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그때 만일 우리가 에너지경제를 개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작했더라도 지구 평균온도의 화씨 1도 상승이라는, 지금 한창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와 여전히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과학자들은 가까운 장래에 정말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금세기가 끝나기 전 지구 온도계의 수은주가 화씨 5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견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한 것보다 다섯 배나 큰 변화이다.
그것은 두번째 문제로 이어진다. 인류문명이 지속된 지난 1만년간 우리는 지구의 기본적인 물리적 안정성에 의존해왔다. 물론 허리케인도 있었고 가뭄, 화산, 지진해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구 전역에 고루 분포되었으며 매우 안정적인 주기로 찾아왔다. 만약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떤 섬에 살았다면 아마 당신도 그 섬에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당신이 밭에 옥수수를 재배했다면 당신의 손자들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승산 없는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 환경난민들에 대한 예견이 진짜로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지난 세기에 우리는 거의 상상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된 인류사회의 변화를 목격했으며, 이 변화는 우리 문명의 전영역에 스트레스를 가했다. 금세기에 우리는 자연세계가 그와 같은 속도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바로 대기중에 갇힌 열이 상승할 때 발생한다. 과잉에너지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표출될 것이다. 더 많은 바람, 더 많은 수증기, 더 많은 비, 그리고 더 많은 해빙 그리고 더 많은 그 무엇과 무엇들……
우리가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뉴올리언즈를 예로 들어보자. 정치가들이 뉴올리언즈가 재건될 것이라고 발표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공식적인 절차인 셈이고, 뉴올리언즈가 재건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번은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카트리나 같은 허리케인이 100년 만에 한번쯤 오는 것이 아니라 10~20년 주기로 찾아온다면, 몇번이나 재건할 수 있을까? 미국이라 해도 그만큼의 돈을 댈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더욱더 빈번하게 찾아올 심각한 혹서가 농업에 끼칠 영향과,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댕기열이나 말라리아 같은 질병들이 사람의 건강에 미칠 영향 등 장차 끊임없이 발생하게 될 문제들 역시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우리의 에너지 씨스템을 화석연료보다 덜 자멸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 ―해마다 그 비용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은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우리의 통치자들은 말과 행동으로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이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그 환상은 이제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카트리나는 새 달력의 원년을, 다시 말해 물리적 세계가 분명하고 안전한 곳에서 순식간에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곳으로 변해버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뉴올리언즈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미국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앞으로 여생을 살아가야 할 지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김영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