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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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鄭喜成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詩를 찾아서』 등이 있음. jhs3491@hanmir.com

 

 

 

해창리

 

 

언젠가 여기를 지난 적이 있다

나에겐 이곳이 생태로서가 아니라

풍경으로 먼저 온다

 

낯익은 이 아름다운 바닷가를 지나다가

장승들이 서 있는 갯가에 차를 세웠다

물막이 공사가 거의 끝난 해창리

바닷물은 저만치 밀려나 있다

이제 수평선은 지평선이 되려 한다

 

새로 산 디지털 카메라로

물 마른 갯벌을 찍다가

문득 장승에 붙어 있는 따개비를 보았다

여기까지 물이 들어왔었겠지

 

칠면초라던가

짠물을 먹고 자란다는

채송화 모양으로 생긴

풀이 아직은 살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될 것이다

이 바닷가에 더이상 어린 게가 기어다니지 않으리라

 

장승 앞에 그대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던

해질녘의 이 아름다운 시간도

따개비도

칠면초도

그렇다,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고 말 것이다

 

 

 

언덕 위의 집

 

 

이 집 주인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문을 낮게 낸 것일까

무심코 열고 들어서다

이마받이하고 눈물이 핑 돌다

낮게 더 낮게

키를 낮춰 변기에 앉으니

수평선이 눈썹에 와 걸린다

한때 김명수 시인이 내려와 산 적이 있다는

포항 바닷가 해돋이 마을

물이 들면 언제고 떠나갈

한 척의 배 같은

하얀 집

내가 처음 이 바다 앞에 섰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눈썹에 걸린 수평선이

출렁거릴 따름이었다

이 집 주인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다 창을 낸 것일까

머물다 기약없이 가야 할 자들이

엉덩이 까고 몸 낮춰 앉아

진득이 세상을 내다보게 함일까

 

*민박집 명함에 쓰인 이 글귀는 누구의 시구일까?

 

 

 

안부

 

 

민족통일대축전 평양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젊은 시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북의 오영재 시인이 안부를 묻더라고

 

생전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눈을 감고, 수식어가 필요없는

그의 순박한 모습을 생각했다

 

나는 기교를 부리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