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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우석훈 『괴물의 탄생』, 개마고원 2008
이해하기 쉬운‘괴물’해체 매뉴얼
김현미 金賢美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hmkim2@yonsei.ac.kr
과도한 은유는 때로 폭력적이다. 『괴물의 탄생』 표지에 서울-한나라당-조선일보의 관계에 대한 복잡한 수리 적분식이 나열된 것을 보며, 이 책 또한 섬세하지 못한 이데올로기적 판단으로 한국경제를 진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이미 『88만원 세대』(레디앙 2007)란 책으로‘세대’가 한국 자본주의 잉여생산의 원천이 되고 있음을 꿰뚫었던 우석훈(禹晳熏)의 조어력을 인정하기에‘괴물’의 은유를 믿어보기로 했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고 나는 이 책이 요즘 한국사회에 필요한 정치경제학 서적의 좋은 예라고 확신한다.
우석훈이 정의한‘괴물’은 다름아닌 현재의 한국경제다.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에서 부동산 구매와 땅 투기가 자산축적을 위한 안전한 길로 실천되며, 중산층 가처분소득의 30%가 사교육을 통한 학벌 획득에 쓰이는 것을 볼 때 확실히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의‘예외국’이다. 이런 예외 상황은 한국 국민경제의 오래된 운용방식의‘과정’이며‘결과’였다. 우석훈의 괴물은 최근 5년간 2~3%로 추정되는 한국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하기 위해 더욱 과도한 경제환원주의와 결합하면서 토목사업과 난개발을 이끌어가는‘반생태적’경제모델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 책은 이러한 괴물의 유전자결합부터 탄생, 성장 그리고 해체 가능성을 보여주는 괴물의‘생애사’(life history)라 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우석훈은 『88만원 세대』 『조직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함께 『괴물의 탄생』으로 한국경제 대안씨리즈 네권을 마무리했다. 『괴물의 탄생』은 가장‘친절한’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석훈은 이 책을‘한국경제론’에 해당하는 한 학기 수업을 하듯 썼다고 한다. 13개로 구성된 장들은 입말을 살린 강의록의 형태로 쓰였다. 1부에서는 국가와 시장경제를 다룬 주요한 경제학 이론을 설명하고, 2부에서는 한국 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를‘괴물’의 탄생으로 명명하며, 3부에서는‘괴물’의 해체를 위해 급히 해결해야 할 대안을 논의한다. 이명박정부가 도래한 이후‘죽을 것 같은’몇달을 보내고 다시 용기 내어 이 책을 마무리했다는 저자는 인간을‘살리는’경제학을 위해‘명랑하게’살아남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때론 격하게, 때로는 냉소와 조롱으로 한국경제를 진단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내용들을 시종일관 독자들에게 말을 걸듯 다독이며 친절하게 설파한다.
우석훈의 분석은‘경제학원론’에 충실하다. 경제의 기본 구성요소인 토지, 시장, 국가라는 3대요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국민경제를 주조해왔는지를 매우 명료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는 인물, 지역감정 혹은 계층에만 치우쳐 한국경제를 바라보거나 몇몇 대기업이 전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종교적인‘통계환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좌파든 우파든 두 진영 모두에서 경제적 돌파구를 찾아내기 위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세력은 없고 모두가 무의미한 이념논쟁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에 대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석훈이 보는 한국경제는 왜‘괴물’이 된 걸까? 국가의 경제구조 틀은 국가와 기업의 오래된 경쟁과 균형을 통해 형성되어왔다. 한국 근대화의‘압축성장’시대에 정부는 대기업을 키우고 그들을 서로 경쟁하도록 조정하며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따라서 기업은 국가영역에 어느정도 종속돼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시대를 거치면서 정부영역이 급격하게 힘을 잃었고, 급기야 이명박정부 이후 기업영역이 모든 것을 장악하게 되었다. 재벌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자 했던 김대중정부 1기까지가 자본에 대해 국가가 통제력을 행사한 마지막 시기라 할 수 있겠다.
2004년 11월 노무현정부가‘한국형 뉴딜’을 발표하면서 부동산과 토목공사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선포하는데, 그것이 본격적으로 괴물을 탄생시킨 계기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균형발전’이란 좋은 모토는 지방의 부동산 및 농지값을 폭등시키면서 서울과 지방의 토호세력을 강화했다. 흥미롭게도 전국토의 60%를 소유하게 된 서울과 지방의 토호세력은 극히 최근에 형성된 자산가계급이다. 2만달러 성장을 이루고자 했던 노무현정부는 소위‘좌편향’이라는 외연적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반생태적이고‘삼성’의존적이었으며 그 결과 사회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2005년 이후 본격적으로 탄생한 괴물은‘토목형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이명박정부 시기에 들어서 더욱 맹렬해졌다. 새 정부는 건설자본의 이익에 맞춰 사실상 제1부문인 공공자본을 해체하고 제2부문인 시장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기업이 국가를 움직이는 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정부는 노무현정부의‘토건국가’를 더욱 적나라하게 계승하고 있을 뿐이다.
우석훈은 괴물을 제대로 해체하지 않을 경우 파시즘의 도래가 자명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한국의 파시즘은 건설자본과 성장주의라는 두 축에 의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대안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억압되고 정치지도자와 2~3%의 경제엘리뜨가 나머지 국민들을‘끌고 가는’상황을 일컫는다. 이같은 괴물을 시급히 해체하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결국 중남미식 저성장 비효율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남미식‘8자형’경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경제모델을 적극 수용하여 사회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주거공간, 교육기관, 시장 등 모든 부문에서 상류층과 하류층이 완전히 분리되는 경제형태다. 지방, 여성, 청년, 저학력, 소기업 등‘약한 고리’를 가진 사람들의 삶은 극도로 고통스러워지고, 다단계나 로또산업 같은 소위‘비공식’경제만이 이들을 유혹한다.
나는 우석훈의 논리에 설득되어 사태의 시급성에 공포를 느꼈다. 우석훈이 제안하는 괴물 해체법은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지식-문화형 국민경제’로 전환하는 일이다. 어쩌면 이미 진부한 경제해법처럼 들리지만 마냥 현란하고 공허한 외침만은 아닌 듯하다. 그는‘감성을 가진 경제학자’의 기본에 충실하여 제3부문을 경제주체로 만들어내는 방안을 제시한다. 제3부문은 생활협동조합, 생산자들의 네트워크, 소상인연합, 사회적 기업 등을 포함한 개념으로 시장논리 외의 다른 가치들, 즉 상호공존, 종교적 신념, 소통, 호혜 들에 따라 운영되는 경제조직을 뜻한다. 이 조직은 자치와 다양성을 중요시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휴식과 노동안정성을 보장하는 경제형태이기 때문에‘숙련도’와‘창의성’을 보장한다. 실제로 국가와 대기업에 기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제3부문이 강한 나라들은 1990년대 세계를 강타한 신자유주의 환란 속에서도 안전했다.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한국경제는 이제 무자비한‘변태적’괴물이 되었고, 우리는 그 괴물에 먹힐 것인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지를 놓고‘위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서울, 토건, 경쟁 중심 경제는 분명 한계점에 도달해 모든 생명체를 고통스러운 무기력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에서 평생‘철거’와‘증축’만을 보며 살아온 우리 인생이 가엾지 않은가? 죽음과 파괴의 삶에서 생명존중 경제,‘살아 있는’경제로의 이동이 시급하다.
이에 우석훈이 제안한‘위대한 선택’의 답은 가치의 전환이다. 호혜, 이해, 소통 등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과 그런 가치에 기반을 둔 사회경제적 형태와 조직을 만들어내는 일이 분명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바닥을 치는 경쟁’에 대한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한국사회에서 전체 경제만큼이나 괴물 같은 개인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괴물을 탄생시킨 것은 탐욕과 찬탈을 정상적인 인간의 욕구로 찬미해온 현대 한국의 문화수준이다. 슬픈 것은, 우리 대부분이 경제가 곧 좋아지리라는 최면에 걸려 여전히 괴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아쉬운 것은 우석훈은‘국산’괴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1997년 IMF경제위기나 2008년 여름 갑자기 불어닥친 금융경제의 환란은 시작이 어디고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글로벌 투기경제라는 괴물의 탄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석훈의 다음 프로젝트는 좀더 도전적이고 심란한 경제-문화논리를 동원해 풀어야 할 난제일 듯하다.